◆전례 형식에 집착하다 보면 전례를 통한 하느님 사랑의 신비를 놓칠 수 있다. 부제서품을 앞두고 호주에서 지내던 어느날 예수회 어느 성당에서 미사참례를 했다. 이탈리아 출신들이 많은 공동체라 그런지 평일미사인데도 제법 많은 사람이 왔다. 주로 연세가 지긋한 여성들이었지만 간혹 젊은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그 중 서너 살 정도의 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도 있었다. 미사가 시작되고 신부님이 강론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한 아이가 아장아장 걸어 중앙으로 나오더니 제단 아래 꾸며진 장식 앞에서 신기한 듯 쳐다보며 그 앞에서 뒹굴며 놀았다. 아이의 엄마는 당황스러워했고 또 여러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려고 부리나케 달려나왔다.
그런데 강론 중이던 신부님은 오히려 편안한 말로 그 엄마에게 말했다. “나는 괜찮습니다. 나는 아이에게 전혀 방해받지 않습니다. 그냥 두세요.” 그 신부님은 아이 엄마에게 면박을 주는 것이 아니라 어색한 분위기를 사랑으로 감싸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나는 그날 신부님의 넉넉한 마음을 통해서 하느님의 넉넉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전례에 엄숙함만 있고 이런 사랑이 없다면 전례 안에서 무엇을 상상하고 배울까? 바쁘게 미사참례를 하고 생업에 나가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절박함을 무시하고 단지 겉으로 드러난 옷차림만 보고 신앙심이 없다고 판단하지는 않는가? 엄숙함이라는 형식도 중요하겠지만 본질인 하느님 사랑의 신비를 볼 수 있는 형식도 매우 중요하다.
김정대 신부(예수회·인천 `삶이 보이는 창` 운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