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부드럽다. 하느님은 늘 부드럽게 우리를 도구삼아 당신의 일을 하신다. 아무것도 지니지 말고 길을 떠나라는 복음 말씀은 우리에게 용감함으로 무장하라는 것이 아니다. 오롯이 하느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길을 떠나라는 말이다. 이 신뢰하는 마음에는 용감함도 포함될 듯하다. 그렇다고 강함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부족한 가운데 하느님의 일을 하게 된다. 완전한 상태란 어디에도 없다. 이런 부족한 상태에서 하느님의 일을 하다 보면 왠지 불안함과 두려움이 생긴다.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단지 용감함으로만 이해한다면 우리는 우리 안의 불안함과 두려움을 무시할지도 모른다. 이런 경우 용감함은 만용이 된다. 거기서 폭력이 발생한다. 무엇보다도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자신에게 폭력을 가하게 된다. 자신에게 폭력을 가한 사람은 타인한테도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폭력을 행사하면서까지 당신의 일을 하도록 초대하지 않으신다.
하느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단지 용감함만을 하느님께 바쳐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과 불안, 심지어 두려움조차도 하느님께 바쳐드린다. 신비롭게도 하느님은 이런 우리의 약함을 통해서 당신의 일을 하신다. 하느님은 우리가 강할 때는 우리에게 오지 못할 만큼 약한 분이시다. 그러나 우리가 상처 입고 약해졌을 때 비로소 그 약함 안에 자리잡고 당신이 원하시는 곳으로 이끄신다. 하느님은 약한 우리를 도구로 삼아 일하신다.
김정대 신부(예수회·인천 `삶이 보이는 창` 운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