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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32 > 얻어먹고 삽니다 / 강길웅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10-18 조회수1,018 추천수16 반대(0) 신고

              


                       얻어먹고 삽니다


   나는 본래 뭘 많이 먹지도 않으며 또 좋은 음식을 먹으려고 애도 쓰지 않는다. 1년 365일 내내 콩나물국만 끓여 줘도 좋아하며 가끔 두부찌개만 얹어 준다면 그보다 더 욕심내고 싶은 음식도 없다. 일주일 단식을 몇 번 하고 나서는 습관이 많이 달라지게 되었다.


   단식을 하고 나면 세상의 모든 음식이 맛있게 된다. 멸치 한 마리가 그렇게 맛있는 고기(?)라는 것도 단식을 통해서 알았으며 또 시어 빠진 깍두기 하나가 그렇게 귀한 맛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배가 고플 땐 세상에 맛없는 음식이 없으며 싸고 흔한 것으로도 얼마든지 행복한 식탁을 만들곤 한다.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사제관 주방에 반찬값을 주는 것에 대해 아주 인색하기로 유명하다. 본래 교구에서 지침으로 정해 준 금액이 월 30만 원 이상일 때도 절대로 10만 원 이상은 주지 않았으며 주방에서 부족하다고 투정을 하면 반찬을 두 가지로 줄이라고 되레 큰소리를 치기도 했다.


   나중에 보좌신부를 받으면서 15만 원으로 올렸다가 도시본당에 가서는 다시 20만 원까지 인상하였는데 그것도 교구 지침에 비하면 반값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네 번째 보좌를 받으면서 드디어 30만 원으로 올렸으며 나중에 강론으로 돈을 좀 번 후에는 큰 맘 먹고 50만 원을 줬는데, 그때는 보좌신부의 식비까지 내가 계산을 했다.


   그러나 말이 50만 원이지 나에게 딸린 식구가 따로 넷이 더 있었기 때문에 모두 합쳐 7식구의 생활비로 결코 넉넉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생활비는 사실 먹는 것뿐만도 아닌데 나는 악착같이 절약하라고 아줌마를 계속 다그쳤다. 맘먹고 아껴 쓰려면 얼마든지 아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내 주방에서뿐만 아니라 신자들로부터 대접을 받을 때도 항상 간소한 식탁을 강조한다. 김치찌개 하나면 만족할 것을 다 먹지도 못할 고급 요리가 넘치게 장만된 것을 볼 때면 늘 마음에 부담이 생기며 그걸 또 다 드시라고 강요(?)할 때면 곤혹스럽기가 그지없다.


   그래서 난 외식을 안 했으며 신부가 뭘 좋아한다 하면 사람들이 또 그걸 대접하기 위해 줄을 서는 것을 보고는 참으로 돈 아까운 생각을 많이 했다. 물론 나도 누군가를 대접할 때는 과감(?)하게 지출하기도 하지만, 검소한 식탁보다 더 풍성한(?) 것이 없는 것이다.


   돈이라는 것이 그랬다. 누굴 도와준다든지 또는 아주 꼭 필요한 일에 쓴다면 보람도 있고 기쁨도 있지만, 단지 먹고 마시는 일에 많은 것을 지출하게 되면 그땐 보통 아까운 것이 아니다. 나는 그런 문제에서는 아주 철저해서 절대로 돈을 아무렇게나 쓰지 않는다.


   도시에서는 한 달 생활비로 50만 원씩 지출하다가 1997년 2월에 소록도로 부임하고 나서는 상황이 많이 바뀌게 되었다. 첫째로 내게 딸린 식구 세 사람이 학교 관계로 광주에서 계속 거주해야 하기 때문에 추가 부담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 이를테면 내겐 비상사태(?)로 주방 주부식비를 대폭 삭감해야 할 판이었다.


   소록도 성당의 주방 아줌마는 바로 성당 앞에 사는데 젊은 사람이지만 마음이 아주 착했다. 그러나 아무리 착해도 생활비를 많이 요구하면 어쩌나 싶어, 도대체 얼마를 주면 좋겠느냐고 의중을 슬쩍 타진해 봤다. 만일에 저쪽에서 저렇게 나가면 이쪽에서는 이렇게 나가려고, 나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돈 얘기를 꺼내자 젊은 아줌마가 부끄러워하면서 조금만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금이 도대체 얼마인지 언뜻 계산이 되지 않아, “조금이 얼마냐?”라고 다시 묻자 자매가 한 5만 원만 달라는 것이었다. 단돈 5만 원! 그러나 차마 5만 원을 줄 수가 없어서 10만 원을 줬는데 저 돈이 과연 며칠이 갈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도록 주방 아줌마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어째 돈 달라는 말을 안 하느냐고 묻자 아줌마는, 아직도 돈이 많이 남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한 달 내내 10만 원을 다 못 썼다는 것인데 식구가 비록 줄기는 했지만 그래도 너무 의외였다.


   그러나 아직 안심할 일은 아니었다. 이제 처음 살아 보는 아줌마가 언제 무슨 핑계로 돈을 요구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나중에 하도 답답해서 왜 두 달이 넘도록 생활비를 달라고 안 하느냐고 하자 아줌마 말이, 아직도 3만 원이 남았다는 것 이었다!


   세상에! 그래도 명색이 세 식구인데, 세 사람이 두 달 동안 부지런히 먹은 주방 생활비가 고작 7만 원이라니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미안한 얘기지만, 돈 갖다 줘서 싫다고 하는 여자는 보기 힘든데 이 여자는 웬일인지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내심으로는 여간 흐뭇한 게 아니었다.


   그 후로는 한 달 생활비로 5만 원을 넘긴 달이 별로 없었다. 10만 원을 주고 나면 정말 몇 달이 지나서야 “신부님 돈 없어요” 하면서 간신히 청구를 하곤 했는데 그런 것을 보면 참으로 묘했다. 아니, 어쩌면 하늘이 내 신세(?)를 그렇게 돌봐 주신 것인지도 모른다 여겨 감사드리고 있다.


   사실 10만 원으로 세 식구가 석 달을 산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소록도에서는 어쩌면 가능한 일이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나환우들에게 지급되는 부식들은 환우 자신들이 다 처리를 못하기 때문에 그 일부를 신자들이 성직자나 수도자에게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실 그분들에게 지급된 부식을 먹어서는 안된다. 나쁘게 보면 착취요 또 수탈이다. 그러나 그분들에게는 그게 또 성직자나 수도자에 대한 인사요 정성이기 때문에 당신들이 잡수는 것보다도 우리가 먹는 것을 더 좋아하신다. 제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통사정을 해도 그분들의 사랑은 또 그것이 아니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나환우들에게 지급되는 부식이 상당히 좋게 나온다. 고기나 해물 종류도 여러 가지 되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걸 다 드시지 못하며 또 몸이 성치 못하니까 어떤 때는 반찬 만드는 것이 힘들고 귀찮아서라도 그것을 그냥 성직자나 수도자에게 넘기는 것이다.


   수녀님들이야 솜씨가 좋으시기 때문에 환우들로부터 받은 고기나 채소를 맛있게 요리를 하여 다시 환우들에게 되돌려 드리고 있지만 나는 그럴 형편도 아니어서 어쩌다 환우들을 사제관에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하지만 사제관 냉장고엔 그분들이 주신 부식으로 넘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나는 또 텃밭 가꾸는 것을 좋아해서 연중 채소를 자급해 먹는다. 배추, 무는 물론 시금치, 파, 상추, 고추, 감자, 오이, 호박 등 다양하게 채소를 재배하는데 땅을 파서 퇴비를 깔고 씨를 뿌리는 일을 마치 취미생활이나 되는 것처럼 나는 좋아 한다. 그러니 부식비가 많이 들지 않는다 


   좌우간 생활비를 대폭 줄여야겠다는 소록도에서의 포부(?)는 공연한 기우였다. 주부식비는 더 이상 줄일 것도 없고 또 현재로서는 늘어날 전망도 보이지 않는다. 한 달에 세 사람이 십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살고 있다니, 우리는 아마 작은 기적을 이루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도시 사람들이 가끔 날보고 소록도에서 어떻게 사느냐고 묻는다. 물론 질문한 뜻은 그게 아니지만 나는 항상 동문서답을 한다.


   “얻어먹고 삽니다!”


- 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 중에서/강길웅 요한 신부 (소록도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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