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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6-10-19 조회수920 추천수9 반대(0) 신고
2006년 10월 19일 연중 제28주간 목요일

 

 

 

 

Woe to you who build the memorials of the prophets
whom your fathers killed.
(Lk 11.47)

첨부이미지 

 

제1독서 에페소서 1,1-10

 

복음 루카 11,47-54

 

어제는 저와 친한 어떤 신부님께서 성지를 방문하셨습니다. 이유는 요즘 자전거 타는 재미에 흠뻑 빠졌다고 저와 함께 자전거를 타겠다는 것입니다. 저야 워낙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흔쾌히 허락을 했고 바로 어제 한 시간 이상 함께 탔습니다. 그런데 자전거를 함께 타자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제 자전거를 탐내는 것이었어요. 언젠가 자전거를 바꾸게 되면 제 자전거를 달라는 것이지요. 그리고는 빨리 바꾸라고 강압을 넣는 것입니다.

사실 저의 선배 신부님이십니다. 따라서 선배가 후배에게 무엇을 주면 모를까, 선배가 후배의 것을 뺐어가는 경우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지만 이 신부님께서는 잘 뺐어 가십니다. 얄미울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신부님을 잘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 모습을 이해합니다. 왜냐하면 이 신부님께서는 자신을 위해서는 투자를 하지 않고 항상 남을 먼저 생각하시는 분이거든요. 강의료를 받으면 그 모든 것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줍니다. 또한 자신의 활동비 중에서도 반 이상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어떤 강의를 해서 강의료로 60만원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요즘 자전거에 관심이 있다 보니 솔직히 좋은 자전거를 사고 싶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욕심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면서 곧바로 어려운 공동체에 다 주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생활을 하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부족한 부분은 선, 후배 신부를 찾아서 해결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생활하시는 분을 어떻게 얄밉게 보겠습니까? 오히려 남을 위해서 열심히 사시는 그 모습에 감사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제 자신을 많이 반성하게 됩니다. 남보다는 나의 이익을 먼저 생각했던 모습들. 그래서 항상 나의 기준으로 남을 판단하고 단죄하였던 못된 나의 모습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을 혼내고 계십니다. 이들을 혼내시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서로 좋게 이야기할 수도 있을 텐데, 왜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인 이들의 심사를 뒤틀게 만들어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드셨을까요?

바로 그들의 이기적인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남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했던 모습들, 그래서 자신의 기준으로만 남을 판단하고 단죄하는 이기적인 모습에 예수님께서는 화가 나셨던 것이지요. 그래서 자신의 죽음을 결정지을 수도 있는 그들이지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의 모습에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깜짝 놀랍니다. 이런 내 모습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리고 그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앞선 신부님의 모습에서 찾게 됩니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그래서 모든 것에 자유로운 그 모습에서 말입니다.

남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떠올려 보세요. 너무나 많습니다.



콩알보다는 강해져라('플러스 아침묵상' 중에서)



이 세상에서 콩 장사하는 사람이 제일 행복하다는 유대인 속담이 있다. 왜냐하면 콩 상인은 콩을 못 팔면 어쩌나 하고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날콩을 파지 못하면 갈아서 콩국을 만들어 행인들에게 팔면 된다. 콩국도 다 팔지 못하면 두부를 만들면 된다. 두부파는 것에도 성공하지 못하면 말려서 간두부를 만들면 된다. 그것도 성공하지 못하면 간두부를 소금에 절여 삭힌 두부를 만들 수도 있다. 콩을 팔지 못했을 경우의 두번째 선택은 콩을 발아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며칠 후 콩이 더할 나위없이 훌륭하게 자라 콩나물 장사를 해도 된다. 콩나물을 다 팔지 못하면 그것을 더 키워서 콩 줄기를 내다 팔면 된다. 콩 줄기를 팔지 못하면 그것을 키워서 화분에 옮겨 심은 다음 분재로 팔면 된다. 화분을 다 팔지 못하면 다시 땅에 이식하여 더 자라게 하면 몇 개월 뒤 그것은 새로운 콩으로 자랄 것이다. 얼마나 타산에 맞는 계획인가? 상상해보라. 콩 하나가 수백 개의 씨를 틔운 콩밭으로 변해 있는 장면을.

세상을 살다보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십중팔구다. 그러나 어떤 이는 낭패를 보아도 굴하지 않고 유대인 콩 상인처럼 생활의 기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한 알의 콩이 한순간에 팔리지 않는다 해도, 그 뒤에는 무수한 기회가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최소한 한 알의 콩보다는 더 강인해져야 하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인생에서 만나는 많은 기회들을 능동적으로 바꾸어가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생존의 방법과 삶의 지혜를 터득해가는 것이다. 사는 동안 기회는 항상 따라온다. 길이 막혔다고 포기하지 말고 새로운 길을 모색할수 있는 안목과 용기를 갖자.

 

 

Woe to you, scholars of the law!
You have taken away the key of knowledge.
You yourselves did not enter and you stopped those trying to enter.”

(Lk 11.52)

     

Memories - Ralf Bach

 


너의 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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