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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교주일저녁에 함께 하는 묵상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10-22 조회수952 추천수6 반대(0) 신고
 

  그때에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지금은 하느님 품으로 먼저 가신 대전교구의 백남익 몬시뇰이 1966년 천안본당(현재 천안 오룡동)의 주임신부님과 천안 복자여자 중‧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였을 때 일화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지금은 천안에 16개 본당이지만 그 당시 천안본당 하나뿐이었던 시절입니다. 백남익(디오니시오)몬시뇰은 1948년에 로마로 유학을 떠나신 최초의 한국 신학생으로 로마에서 53년에 서품을 받고, 유학하여 법학박사학위를 받고 교황청의 행정관으로 재임하였고 사제생활 54년 중 33년 동안 외국에서 ‘국제거지’칭호를 받으면서 전후 한국교회를 위해서 헌신하신 분입니다.

 

  백남익 몬시뇰은 유학을 떠난 지 16년 만인 1964년에 귀국해서 맡은 천안본당에 한 초등학교에 근무하던 여선생이 비신자 동료와 결혼한다고 인사를 왔습니다. 신부님은 신랑을 초대하여서 최소한 관면혼배라도 받으라고 권유하고 오랜 설득 끝에 동의를 받아내었습니다.  결혼식은 대전에서 추운 겨울 1월 중순 토요일 오후 1시에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하고 신혼여행지 온양을 가려면 천안을 거쳐서 가야 하니까 천안 성당에서 들려서 오후 5시쯤 관면혼배를 받고 온양으로 신혼여행을 갔으면 좋겠다고 신부님과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결혼 식 날은 아침부터 하루 종일 눈이 내리기 시작하였는데 신부님과 신혼부부의 학교 교감선생님과 함께 관면혼배를 주기 위해서 애타게 기다렸지만 저녁 7시가 되도록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를 이상히 여긴 신부님은 확인해 본 결과 결혼식을 끝내고 신혼여행지인 온양으로 출발 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 때 신부님은 이들 부부가 온양의 어느 여관에 머물지 모르기 때문에 온양의 모든 여관에 시회전화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전화는 자석식 전화를 사용하였고 간혹 전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주 귀족대접을 받을 때였고, 전화교환원들이 일일이 전화를 연결해줄 때였기 때문에 시외전화 조차 걸기도 어려울 때였습니다.

 

 신부님은 두 시간 동안이나 전화를 걸은 결과 서른세 번째의 통화에서 한 여관에 그런 부부가 조금 전에 도착하였다.’는 소식을 들고 그들에게 전화를 바꿔달라고 하여  “내가 지금 관면혼배를 주러 온양에 갈 터이니 동침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는 통행금지가 있었던 때였고, 신부님은 차가 없었는데 평소 발이 넓어서 천안의 검찰지청장, 군수, 경찰서장에게 전화를 걸어 차를 빌려달라고 부탁하여 통행금지에 걸리지도 않는 경찰서장의 차를 운전사까지 대동하여 당당히 구한 것입니다.

 

그 날 밤 펑펑 쏟아진 눈을 재치며 그들에게 죽음을 무릅쓰고 신부님과 교감선생님은 20분이면 도착할 것을 엉금엉금 기어 두 시간 넘게 걸려서 밤 11시 경에 여관에 도착하니 길어 너무 미끄러워서 신부님과 약속을 무시하고 온양으로 왔다고 벌을 서고 있는 그들은 바짝 얼어서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관에서 관면혼배를 주고, 신랑신부에게 결혼 선물이라고 그 당시에 너무나 귀한 프랑스제 포도주도 한 병 주고, 축의금까지 챙겨 주고, 다시 천안에 오니까 새벽 3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부님은 교감선생님과 같이 많은 얘기를 나누며 밤을 꼬박 새우신채 주일 새벽 미사를 드리셨다고 합니다.

 

 비신자인 신랑은 신혼 첫날밤을 그렇게 보내면서 많은 생각에 잠을 설쳤습니다 도대체 관면혼배가 무엇이고 천주교가 무엇인데 그렇게 어려움을 무릅쓰고 자신들을 찾아 혼인식을 주시고자 찾아오셨을까?  그후, 열심히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고 아주 모범적인 신자로 살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본당에서 교리를 가르치고, 승진하여 장학사가 되고 교장이 되어서도 복음을 전하는 데 아주 최선을 다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을 증언하였습니다. 선종하기 전까지 복음 선교에 앞장섰던 그분을 전교의 달에 생각합니다.

 

   백남익 몬시뇰께서 선종하신지 금년 11월 2일이 2주기가 됩니다. 한 영혼의 구원을 구하고자 목숨을 내어 놓으신 희생과 사랑의 삶을 실천하신 신부님을 생각하니 머리가 숙여집니다. 주님께서 몬시뇰께 천상낙원의 기쁨을 주심과 같이 저희도 받아 주실 것을 청하면서, 신부님의 선교 열정과 항상 주님과 함께 사셨던 삶을 기리면서 그 삶을 닮고 싶습니다.

 

  저희에게 세상 끝까지 복음을 선포하고 세상 모든 사람을 당신의 제자로 삼으라고 하신 주님, 저희가 복음 선교에 나태하였사오나 항상 당신께서 저희와 같이 계시겠다고 하신 말씀에 용기를 얻고 복음 선교에 앞장 설 수 있도록 성령으로 축복하여 주시고 용기와 지혜를 허락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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