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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진주 / 정채봉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10-23 조회수703 추천수8 반대(0) 신고
                 

 

                        진주/정채봉


   넓고 넓은 바닷가에 조개마을이 있었어.

   조개마을에는 바지락과 다슬기와 고동이 많이 살았단다.

   그러나 백합은 단 한 집 밖에 없었어.

   그래서 백합은 제 몸매를 은근히 뽐내면서 지냈지.


   태풍이 불어와 바다를 아주 심하게 할퀴고 간 뒤였지.

   깊은 바다 산호초 마을에서 진주조개 하나가 떠밀려 올라왔단다.

   조개들은 다투어 구경을 갔지.

   허나 진주조개는 그저 평범한 조개일 뿐이었어.

   오히려 겉모양을 말한다면 백합한테 훨씬 못 미쳤어.

   바지락이 말을 걸었어.

   "진주씨앗을 좀 얻을 수 있어?"

   진주조개는 고개를 저었어.

   "우리의 진주는 씨로 옮겨지는 게 아냐."

   "그럼 어떻게 해야 값진 보석을 가질 수 있지?"

   "진짜로 사랑을 하면~!"

   이번에는 다슬기가 나서서 진주조개한테 물었어.

   "진주를 가지면 어때? 몸도 마음도 편안하고 좋아?"

   "아니야. 몸은 아주 아파. 견디기 어려울 만큼."

   "그런데 뭐 하러 가져? 그것 때문에 도리어 아파지는데‥"

   조개들은 피식피식 웃으며 뿔뿔이 흩어졌어.


   백합만이 남았지.

   백합이 물었어.


   "진주를 가지고 사는 것과 가지지 않고 사는 게 어떻게 달라?"

   "그것은 사는 의미에 관계되는 거야. 진주를 가지지 않으면

   지금 당장은 편하지. 주어진 시간에 먹고 즐기며 살면 그만이니까."


   "진주를 가졌을 때는?"

   "희망을 가졌다는 뜻도 돼. 언제 어디서 죽음이 나타나더라도 두렵지

   않아. 죽음이란 그전 껍질과 살이 없어지는 것일 뿐 진주란 보석은 영원히

   빛나면서 살게 되는 것이거든."


   그날부터였지.

   백합한테서 말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은.

   나들이 하는 시간도 줄었어.

   대신 해당화 그늘 밑에 앉아서 명상하는 시간이 길어져 갔단다.

   백합은 흰 구름이 지고 피는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진짜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했어.


   어느 날이었어.

   백합은 바지락을 공격하는 불가사리를 보았단다.

   이럴 때는 자기 몸을 먼저 숨기는 게 모든 조개들의 습관이었지.

   그러나 이날의 백합은 달랐어.

   뜨거움이 가슴에서 치솟자 냅다 불가사리의 머리통을 물고 늘어졌단다.


   한참 후에야 백합은 정신을 차렸어.

   눈을 떠보니 늙은 뼈 고동이 상처를 꿰매고 있었어.

   "넌 아주 훌륭했단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으니까. 그런데

   이번 일  로 모래 한 알이 네 심장 깊숙이 박혀버린걸 알아두어라."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요?"

   "십중팔구는 죽게 되지. 그러나 하늘이 돕는다면 진주가 되기도 하지."


   백합은 엎드려 울며 기도했단다.

   "저는 죄 많은 조개입니다. 내 기쁨을 나누어 가질 줄 몰랐으며

   남이 아픔을 덜어줄 줄 몰랐습니다.

   내안의 교만과 질투와 욕심이 악마임을 미처 알지 못하였으며

   물 한 모금, 바람 한 자락의 작은 것에 감사할 줄 몰랐어요.

   이제 저는 남은 날을 오직 참회하며 살고자 하오니

   이 세상을 떠날 때 눈물 한 방울 남기는 것을 허락하소서."


                        - 뱃속아기와 나누는 사랑의 대화 , 태담 중에서 / 정채봉

                                             천주님을 좋아하는 사람들
                   
     
Canon .. Orgel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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