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수도 없이 우리 곁을 지나가신 분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6-10-24 조회수619 추천수3 반대(0) 신고

 

<수도 없이 우리 곁을 지나가신 분>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루가 12,37.38)


  유대인들은 이민족들의 침범이 잦았습니다. 그들의 습격을 막기 위해 밤에 경비를 철통같이 서야했습니다. 그래서 밤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부르고, 그 이름도 보초가 망보는 것에 맞추어 불렀습니다. 우리가 일경, 이경, 삼경하고 부르는 시각도 유대인들은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보초시간(phylake)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 phylake’는 어둔 밤이 끝나고 새 날이 오는 '마지막 때'라는 의미가 강했습니다.

  이 구절에서 주인이 ‘중간 보초시간’에 오시든, ‘마지막 보초시간’에 오시든 상관없이 돌아오시면 맞아들이고 지시하시는 대로 따르기 위해서 모든 준비를 하고 있는 종의 자세를 그리고 있습니다.

  띠를 두르고 있는 모습은 탈출기 12,11절에서 과월절 음식을 먹을 때 보이는 자세입니다. 조상들이 이집트를 탈출하기 전날 밤에 흠 없는 어린양을 잡아 온 식솔들이 함께 먹고 떠났듯이 후손들도 하느님의 은총을 기억하기 위해 과월절 기념을 치루는 모습입니다. 언제라도 지체 없이 주님께서 지시하시는 곳으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조상들이 길 떠나는 것처럼 종들도 즉시 길 떠날 자세를 갖춘 모습입니다.

 

  혼인잔치에서 돌아온 주인은 집에 돌아왔을 때 모든 준비를 갖추고 기다리는 종을 보면 기뻐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주인이 직접 종들에게 수고했다는 의미로 길 떠날 준비 차림새를 갖춘 채 종들이 먹을 식사 시중을 들 것입니다.

  그 식사는 마지막 식사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종들은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주인과 함께 더 좋은 곳, 하느님께서 가리켜 보이신 곳으로 떠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떠날 준비를 못한 종은 아마 그 나라에 들어갈 기회를 영영 놓치고 말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어느 수련원 원장 신부님께서 신앙상담을 잘해주시기로 소문이 났더랍니다. 그런데 그분께서는 너무 소박하시고 바지런하셨답니다.

  어느 가을날 낙엽이 수북이 쌓여있던 날, 원장 신부님께서는 평소처럼 허술한 작업복 차림으로 낙엽을 열심히 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손님이 지나가다 묻습니다. “청소부 아저씨. 원장신부님은 어디 가면 만날 수 있나요?”, “예. 저쪽 건물 2층 복도 끝에 있습니다.”하고 친절히 가르쳐 주시고는 열심히 예정된 작업을 끝내시고 그 손님을 맞았답니다.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 있던 손님은 아까 낙엽 쓸던 그 청소부가 원장신부님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얼굴을 들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어떤 모습으로 찾아오실지 모르는 예수님께서 수도 없이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셨을 것이라는 원장신부님의 충고 말씀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지나가던 세 손님을 누구인지도 모른 채 지극 정성으로 모셨습니다. 그리고 그 세 분에게서 사라가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축복의 말을 듣습니다. 그는 언젠가 주님께서 지나가시리라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모든 준비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참으로 방문하셨을 때 실수하지 않고 모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약속의 아들인 이사악을 낳을 수 있었습니다.


  떠날 채비를 갖춘 자는 언제나 몸과 마음이 가볍습니다. 그는 미련이라는 족쇄를 차고 있지 않습니다. 주인이 무슨 명령을 내리더라도 따를 자세가 되어 있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시중드시며 주시는 마지막 “일용할 양식(artos epiousios)”을 함께 먹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도 수없이 기도하던 '주님의 기도'가 실현될 것입니다.

 

*추신; 군대에 다녀 오신 남자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보초의 임무가 매우 중요합니다. 군대 구호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졸면 죽는다.",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받아도 경계근무에 실수한 지휘관은 용서 받지 못한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