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소유한다는 것과 체험한다는 것. 류해욱 신부님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6-10-24 조회수622 추천수4 반대(0) 신고

  소유한다는 것과 체험한다는 것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탐욕을 경계하라고 하십니다.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고 하시면서 어느 부유한 사람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얼마 전에 제가 번역하여 낸 [할아버지의 기도]는 사실 원본에서 반만 추려서 한 것이었습니다. 출판사측이 나머지를 번역해 달라고 요청하여 다시 시작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어제 번역한 내용이 오늘 복음 말씀에 대한 주석처럼 느껴져서 나눕니다.


  오래 전이었다. 나는 친한 친구의 어린 아들과 친하게 되었다. 나는 그 아이와 장난감 자동차 놀이를 즐겨했다. 그 아이는 겨우 두 대의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한 대는 바퀴가 찌그러진 것이었다. 우리는 각자 한 대씩 가지고 이 창턱에서 저 창턱까지 달리다가 정차를 시키고 다시 경주를 벌리면서 우리가 상상 안에서 붙여준 온갖 이름의 길을 달리곤 했다. 어떤 때에는 내가 바퀴가 찌그러진 자동차로 달렸고, 어떤 때에는 그 아이가 그 자동차로 달렸다. 우리는 굉장히 재미있게 그 놀이를 했고 나는 정말 그 아이를 좋아했다. 아이의 이름은 캐니였다.

  당시 큰 바퀴가 달린 작은 장난감 자동차가 다섯, 여섯 살 난 아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아이들은 여러 종류의 이 장난감 자동차를 수집하였다. 캐니도 바퀴 큰 여러 장난감 자동차들을 갖고 싶어 했다. 나는 캐니에게 그런 장난감 자동차들을 사주고 싶었지만 어떻게 캐니 부모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그렇게 해 줄 수 있는지 뾰족한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캐니의 아빠는 예술가면서 전도사이고 엄마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아이 엄마는 손재주가 뛰어나서 무엇이든지 그녀의 손에 들어가면 예술품이 되어 나왔다. 그들은 영적으로 부유하게 살았지만 물질적으로는 가난해서 아이에게 장난감을 사줄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당시 어느 한 자동차 석유회사가 기름을 가득 채워서 넣으면 큰 바퀴가 달린 장난감 자동차를 사은품으로 주고 있었다. 나는 나름대로 머리를 썼다. 병원의 동료 의사들과 간호사들을 설득해서 그 회사의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장난감 자동차를 받아서 내게 달라고 부탁했다. 20명 정도 명단을 만들어서 각자에게 온갖 종류의 다른 장난감 자동차를 받아오도록 했다. 소방차, 포르쉐, 폭스바겐, 리무진 등이었다. 같은 것이 겹쳐서 두 개 이상이 되지 않도록 했다. 한 달이 지나지 않아서 나는 당시 만들어진 모든 종류의 바퀴 큰 장난감 자동차들을 수집할 수 있었다. 나는 커다란 상자에 그 장난감 자동차들을 넣어서 캐니에게 선물했다. 캐니의 집은 거실의 창틀마다 장난감 자동차로 가득했다. 그런데 의외로 그 후 캐니는 더 이상 장난감 자동차 놀이를 하지 않았다. 나는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캐니에게 왜 이제 더 이상 장난감 자동차를 좋아하지 않는지 물었다. 그는 살짝 고개를 돌리고 난처한 목소리로 말했다.

  “레이첼 선생님, 저는 이제 이 많은 차들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 이후, 나는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지 생각해 보고 내가 오랫동안 사랑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갖지 않도록 주의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사랑하기에는 너무 많은 바퀴 큰 장난감 자동차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그들을 공허하게 만들 수 있다. 암에 걸린 후에야 비로소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어느 여인이 자기는 암을 앓기 전에는 늘 공허하게 느꼈다면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저는 점점 더 많은 물건들을 사들였지요. 온갖 신문과 잡지들을 구독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지요. 그런데 더 많이 물건을 사고 더 많은 사람들을 사귀고 만날수록 실제로 체험은 더 적기 때문에 상황은 점점 악화되었지요. 더 공허하게 느낀 거예요. 항상 내가 충분히 지니지 못했기 때문에 공허하다고 생각했으니 저는 얼마나 바보였는지 몰라요.”

  그녀에게 변화가 일어난 것은 목욕하고 나왔을 때 입는 가운이 계기였다. 암 수술을 받기 위해서 입원하러 갈 때 그녀는 여러 개의 가운 중의 하나를 가지고 갔다. 그녀는 매일 아침 샤워를 하고 나오면 새로 산 고급 가운을 입고 그 가운이 주는 감촉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색상이 얼마나 화려한지를 보면서 뿌듯한 느낌을 지녔지만 그 순간 잠시 뿐이었다. 그런데 병원에 입원해 있던 어느 날 그녀는 가운을 입으면서 자기가 이렇게 가운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감정이 벅차올랐다고 한다. 그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레이첼 선생님, 좀 우습게 들리시겠지만 그 날 저는 제가 가운을 입을 수 있는 처지가 얼마나 다행한 일이고 감사했는지 몰라요. 사실 그날 입었던 화장복은 새 것도 아니었답니다.”

  그녀는 항암치료를 다 마친 후에 자택 차고에서 하는 중고품 염가 판매를 통해 지니고 있던 물건을 거의 다 처분했다. 그녀는 웃으면서 자기 친구들은 제가 항암치료를 받더니 정신이 좀 이상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고 난 후에 그녀는 새롭게 인생을 되찾았다고 한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옷장이 무엇이 들어있는지, 서랍 안에는 무엇이 있는지, 서가에 어떤 책들이 꽂혀 있는지 몰랐어요. 전화번호부 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 중에 반 이상이 실제로는 모르는 사람들이었지요. 저에게 엽서 한 장 보낸 적도 없는 사람들 말입니다. 이제 물건도 훨씬 적어지고 만나는 사람도 적어지니까 오히려 제 안에 있던 텅 빈 공허한 느낌이 없어졌어요. 소유하는 것과 체험하는 것은 아주 다른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소유는 결코 만족할 줄 모르거든요.”

  우리는 상담실 안으로 저녁 햇살이 비치면서 바닥에 있는 양탄자에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을 바라보면서 고요 속에서 함께 앉아 있었다. 갑자기 그녀가 고개를 들더니 말했다.

  “아마 우리는 정말 사랑할 수 있는 그만큼만 소유하면 그것으로 충분할 거예요.”


  두 개의 장남감이 있을 때는 자동차 놀이를 하면서 즐거워했었는데 많은 자동차를 갖게 되니까 어떤 차를 사랑해야 하는지, 어떤 차를 가지고 놀아야 할지 모르는 캐니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줍니다. 소유는 마치 단 설탕물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마시수록 더 갈증을 느껴 더 마시게 되지요.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부자의 문제는 지닌 것을 나누지 않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어떤 것도 자기 것이 아닌 잠시 맡겨진 것이라고 생각하면 참 마음이 편하지요. 목숨마저도 우리 것은 아니지요. 그래서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가만히 들어보면, “오늘 밤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고 하셨지요. ‘되찾아 갈 것이다.’  하느님께서 맡기셨다가 하느님께서 되찾아 가시니 우리로서야 어찌 할 말이 있겠습니까?


오늘도 눈오는 밤 그날 생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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