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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34 > 6월의 바다를 보며 / 강길웅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10-25 조회수1,082 추천수9 반대(0) 신고

                     

 

 

                        6월의 바다를 보며

                           

   내가 물을 무서워하는 것은 오로지 수영을 못하기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 물가에서 경험이 없기 때문에 물장구칠 줄을 몰랐으며 커서도 섬마을 선생 7년을 했는데도 수영을 배우지 못했다. 그렇다고 전연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머리를 물속에 처박고 전력을 다해 휘저으면 5미터쯤은 자신이 있었다.


   부제 때였다. 여름 산간학교 기간에 중고등학생과 함께 바다에 갔다가 그들이 수영할 때 나는 실력도 실력인지라 슬그머니 해안선을 돌아 그들이 안 보는 아주 으슥한 곳에 자리를 잡고는 수영복도 아닌 팬티만 입고 무턱대고 바위에서 뛰어내렸는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나는 언제나 물속에 들어가면 돌아오는 것부터 생각을 했다. 발끝으로 깊이를 재 본 다음에 한 3미터쯤 전진했다가는 다시 3미터를 돌아오는 그 거리를 항상 정확하게 지키곤 했다. 그런데 그 날은 깊이도 모르고 바위에서 뛰어내렸기 때문에 들어가자마자 돌아오는데 그것이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좌우에 다른 바위들이 있었지만 게까지 헤엄쳐 가기에는 무려 20미터의 거리가 넘었다. 그래서 그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고 어떻게 해서든지 이쪽 절벽 바위를 붙잡아야 하는데 그놈의 파도가 사람을 붙잡고는 영 놓지를 않았다. 두 번의 시도가 무위로 끝나자 나는 겁이 덜컥 났다.


   절벽 바위에는 굴 껍질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는데 손가락에서는 이미 피가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것은 생사가 달린 문제였기 때문에 손가락이 혹 잘려 나간다 해도 살 수만 있다면 어떤 것도 감수할 수 있었다!


   파도라는 것이 그랬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밀려와서 사람을 붙잡고 물  속으로 끌고 갔지만 그러나 그 일정한 간격이  가끔은 무너져서 밀려오던 파도가 중간에 상쇄되어 밀려오는 속도의 박자가 약간 느슨해질 때가 생긴 것이다. 바로 그때 나는 사력을 다해 바위를 잡고 절벽 위로 기어오를 수가 있었다.


   참으로 하늘이 도우신 일이었다. 아니면 정말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소리 한 번 못 지르고 죽을 뻔했었다. 그때의 그 안도감과 그 기막힌 스릴은 그 이전에도 없었고 그 이 후에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후로는 물을 더욱 무서워하게 되었는데 나는 정말 물과는 인연이 아주 먼 사람이다.


   그런데 작년 여름이었다. 전주교구에서 장애자들을 위해 봉사 하시는 외국 신부님이 오셨는데 그분은 발에 물갈퀴를 달고는 하루 종일 바다 위에 떠서 유영을 하시는데 이것은 사람의 수영이 아니라 차라리 물고기였다! 그만큼 물  속에서 자유로우셨는데, 내게는 너무도 신기한 일이었다.


   그분이 한번은, 사람들이 바다에 빠져 죽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왜냐하면 아무리 빠지려 해도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닷물과 사람 몸의 관계라는 것이다. 이 말씀이 내게는 대단한 충격이었지만 또한 그만큼 자존심이 다치는 문제이기도 했다. 그래서 사생결단으로 내가 다시 물속에 뛰어 들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 알았다. 그것은, 내가 너무 겁을 먹은 나머지 물에서 숨을 고르게 쉬지 않는다는 것이요, 또 하나는 내가 물에서 너무 서두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조정하여 조금씩 연습을 해 보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깊은 바다에 나가 30분, 1시간을 떠서 수영해도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된 것이다.


   작년에는 8월이 넘어 9월 말까지 수영을 했는데 함께 계신 외국수녀님들은 10월 말까지도 계속 수영을 하셨다. 전에는 물이 내 가슴 높이만 차도 겁이 덜컥 났는데 요즘은 수십 미터의 수심에서도 전연 겁이 없이 내가 떠다니는 것을 보고는 세상 참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을 한다.


   소록도에서는 보통 6월부터 수영을 시작해서 9월 말까지 계속한다. 그러니까 넉 달은 족히 수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내가 수영을 하러 예까지 온 것은 아니지만 경치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살며 하루에 한 번쯤 수영을 즐기는 것은 덤으로 주어지는 하느님의 은총이 아니겠는가.


   사람들이 너나없이 시도도 해 보지 않고 그냥 처음부터 겁먹고 포기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특히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일에 대하여는 더욱 그렇다. 자신의 결함을 발견하여 조금만 방법을 고치면 될 것을 사람들은 노력도 않고 그저 자신의 신세만 한탄한다.


   자기 방식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 안 되면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보아라”(요한 21,6)

 

    일이 잘 안 풀릴 때 한번쯤은 기억해야 한다.

http://my.catholic.or.kr/vegabond


- 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 중에서/강길웅 요한 신부 (소록도 본당 주임)

 

                                   

                                                          주님을 따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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