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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13) <화이트 하우스>로 간 순이씨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6-10-26 조회수666 추천수5 반대(0) 신고

 

                                                                  글쓴이 : 심명희(약사)

 

북적대던 환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적막한 병원 중앙로비,

순이씨가 싱글벙글한 얼굴로 텔레비젼 삼매경에 빠져있다.

어린이 연속극에 몰입 중인 순이씨의 시청이 끝나야 비로소 병원로비의 조명등이 꺼지고 문이 잠긴다.

 

순이씨는 작년에 정년퇴직한 이 병원의 특별직원이다.

정신 연령이 5살 아이 수준인 순이씨는 60년 전, 태어나자마자 병원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에 맡겨졌다.

 

정신지체 때문에 정규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그녀는 병원이 놀이터였고 학교였고, 성인이 되어서는 직장이 되었다.

평생을 병원 안에서만 살았으니 병원이 집이고 의사 간호사 환자 방문객은 그녀의 가족이었다.

 

오후 다섯 시,

저녁 식사시간이면 마냥 즐겁기만 한 순이씨의 싱글벙글 웃는 얼굴이 주방에서 나온다. 직원들에게 반갑다고 뜻 모를 인사말을 건네는 그녀에게 원장님이 한마디 물을라치면 동문서답으로 응수해서 한바탕 웃음을 제조해낸다.

그녀는 하루의 긴장을 풀어주는 묘약으로, 이 병원의 보물로 알게 모르게 자리 잡고 있었다.

 

작년 봄, 순이씨는 퇴직선물로 작은 보금자리를 병원으로부터 받았다.

평생동안  병원의 지하식당 주방 안에서 숙식을 했던 그녀에게 집이 생긴 것이다.

직원들은 그 집을 '화이트 하우스' 라고 부른다.

병원 뒷산 언덕에 있는 화이트 하우스까지는 느린 걸음으로 가자면 20분 거리다.

 

어린이집을 지나서 전공의, 간호사 숙소를 돌아 의사와 직원들의 아파트 단지를 통과해서 비탈길을 10 여분 오르면 무성하게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하얀 조립식 건물이 눈에 띈다.

 

하지만 정년퇴직의 의미를 이해할 리가 없는 순이씨의 하루일과는 그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여전히 7시 30분 영양과 직원들의 출근시간에 맞춰 어김없이 주방에 와 있다.

 

그런 순이씨에게 퇴직 후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사실 순이씨의 유일무이한 문화생활(?)은 텔레비젼이었는데 순이씨가 좋아하는 어린이 연속극과 만화영화가 퇴근시간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그전 같으면 퇴근시간과 동시에 주방 안에 있는 텔레비젼으로 달려갔지만 이제 주방은 새 주인을 맞이한 터라 퇴근 후에 중앙로비를 서성거리는 그녀의 모습이 눈에 자주 띄었다.

 

"왜 집에 가지 않느냐?" 고 물으면 씩 웃기만 할 뿐이다.

로비의 텔레비젼이 켜져 있는 날이면 그녀의 퇴근은 늦어졌고 꺼져있으면 우두커니 앉아있다 한참 후에야 사라지곤 했다.

 

오후 다섯 시부터 근무인 내가 순이씨를 만나는 곳은 투약창구를 사이에 둔 로비다.

어느 날 우연히 로비 쪽으로 시선을 향하다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으며 다가왔다.

'헤픈 웃음' 과 '어설픈 모습' 으로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무엇을 꺼냈다.

막 쪄낸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감자였다.

큼직하고 울퉁불퉁한 손으로 감자를 반으로 뚝 자르더니 투약구 사이로 건넨다.

 

감자의 답으로 씹어먹는 비타민C를 주었다.

약도 과자도 아닌 새콤달콤한 맛에 반해 순이씨는 퇴근하면 약제실 안으로 나를 찾아왔다. 그러나 정작 순이씨가 반한 것은 비타빈C가 아니었다.

순이씨는 내가 가진 소형 텔레비젼에 반했던 것이다.

 

나는 순이씨의 화이트 하우스가 궁금해졌다.

순이씨를 앞세워 그녀의 작고 소박한 방안을 구경했다.

60평생 그녀가 가지고 있었던 재산은 낡은 옷 몇 벌과 이불뿐이었다.

 

화이트 하우스까지 오는 길목엔 아름답게 가꿔놓은 넓은 정원, 직원 가족들의 오붓한 모습들이 있었는데.......  .

사람들은 순이씨가 화이트 하우스에서 행복하리라 예상하고 축하했지만 그녀의 집이 되기에는 무언가가 빠져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퇴근하면 즉시 화이트 하우스로 돌아가라는 직원들의 속모를 충고가 답답했을 순이씨의 가슴이 내 가슴이 되어가던 어느 날, 약제실로 들어오는 그녀의 손에 내 소형 텔레비젼을 들려주었다.

 

"가져가도 좋다."

는 내 말에 순이씨는 얼씨구나 좋다며 육중한 몸을 잽싸게 날려 화이트 하우스로 떠나버렸다.

아마 순이씨가 정년퇴직한 이후 가장 일찍 퇴근한 날이었을 것이다.

 

이제 순이씨를 로비에서도 약제실에서도 만날 수 없다.

화이트 하우스,

그녀의 집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간식이 그리워지는 시간엔 순이씨가 보고 싶어진다.

가끔, 주방에서 가져다주는 따끈따근한 감자, 옥수수 때문만은 아니다.

낡은 소형 텔레비젼 한 대로 그렇게 행복해하는 ,

보기 드문 맑은 마음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 숨어서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심명희씨는 봉사가 몸에 밴 사람이다.

    그는 사랑의 실천에 틀과 제도와 조직보다는 사람과의 인격적 관계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

 

                    ㅡ출처 : 가톨릭 다이제스트ㅡ

 

                                      *******

 

이 글을 읽으면서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다섯 살짜리의 지능을 가진 60살 먹은 순이씨가 애처로우면서도 어찌 생각하면 참 행복할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평생 고민도 없고 남 속이는 술수도 모르고 다섯 살 아이의 순수하고 맑은 마음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며 살았으니 죄도 짓지 않았을 것이고.....

인간의 지능이 높으면 높을수록 고민도 많아지고 생각은 영리하게 굴리니 머리속은 오히려 복잡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세상 물정 모르고 사는 단순한 사람에게 그 병원은 얼마나 큰 보호자로서 일생을 감싸주고 보호해 주었는지 고맙고, 그곳 사람들의 따뜻한 인간관계로 인해 그녀는 큰 위험 없이 60년을 살아올 수 있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순이씨는 비록 정상적인 인간으로서의 사고(思考)를 하며  살지는 못했을지 몰라도 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눈길속에서 행복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어린이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은 다섯 살짜리 마음을 가진 순이씨를 60년 동안 은총으로 보살펴주시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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