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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0월 29일 야곱의 우물- 마르 10,46-52 묵상/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6-10-29 조회수675 추천수2 반대(0) 신고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예리코에 들어갔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많은 군중과 더불어 예리코를 떠나실 때에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많은 이가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너라” 하셨다. 사람들이 그를 부르며, “용기를 내어 일어나게. 예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네” 하고 말하였다.

 

그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갔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눈먼 이가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하였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그가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

(마르 10,46-­52)

◆매일 시간을 정해놓고 열심히 기도하던 한 사제가 기도를 하던 중, 갑자기 “그래, 네 소원이 무엇이냐?”라는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너무 놀라 죽었다는 우화가 있습니다. 타성적이고 형식적인 신앙을 가리키는 이야기겠지만 나는 이 우화를 읽은 후 과연 내 소원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봤습니다.

 

기도 제목을 말하라고 한다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소원을 한마디로 말하라면 선뜻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나의 바람으로 울창한 숲을 나와 숲 전체를 한눈에 보았더니 내 소원은 ‘행복’이었습니다. 그분의 사랑 안에서 좀 힘이 들더라도 감사와 기쁨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행복한 삶이었습니다. 나는 이 소원을 분명하게 붙잡고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졌습니다.

 

자신의 소원이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것이 이루어지길 바랄 수 있겠습니까? 솔로몬은 ‘지혜’라는 분명한 소원을 가지고 있었기에 응답을 받았건만 우리는 벳자타 못가의 38년 된 병자처럼 병이 낫고 싶은 진짜 소원은 접어두고 물이 움직일 때 연못에 들어가지 못하는 현실만 탓하며 안타깝게 살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인터넷 뉴스를 통해 텔레비전 드라마 중견작가인 조소혜씨의 죽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간암 말기로 사망하기 전 그녀는 “나에게는 간암 말기 선고를 듣는 것보다 저조한 시청률에 대한 이야기가 더 괴로웠다”고 했답니다. 도대체 그녀가 말하는 그 ‘시청률’이 무엇이기에 자신의 몸을 죽이고 있는 암보다 더 힘들었을까요? 그녀는 ‘암’ 이전에 그 ‘시청률’에 매여 이미 죽은 것입니다.

 

드라마 작가를 꿈꾸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도 남을 중견작가인 그녀가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원했다면 자신이 잡고 있는 그 ‘시청률’이라는 줄을 놓을 줄 알아야 했습니다. 조소혜씨뿐만 아니라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부터 늘어나고 줄어드는 신자들 때문에 행복해지기도 하고 불행해지기도 하니 생각하면 우리 모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부끄럽고 어리석게 살아가고 있는지요!

 

세상의 모든 것은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주신 것이며, 우리 목숨까지도 이 땅에서 사용하고 나면 그분께 도로 돌려드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라면 죽음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최명숙 목사(군산 베데스다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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