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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37 > ‘고통’이라는 용서의 약 ㅣ강길웅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10-30 조회수1,159 추천수11 반대(0) 신고

                

 

 

                ‘고통’이라는 용서의 약

                             

   사람은 왜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특히 선한 이들이 받고 있는 고통의 의미는 무엇이며 또 악인들이 누리고 있는 일종의 특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십여 년 전의 일이다. 신부가 되기 바로 전부터 몸이 좀 이상하게 아픈 것이 도무지 낫질 않아 1년 동안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아 헤맸지만 병명조차 알아내지 못했다. 몇 년 후에는 그것이 광주에만 있는 풍토병으로 ‘유사열병’이라는 해괴한 이름의 진단을 받았는데, 좌우간 그 병은 감기 증세를 동반하면서 여름에도 발이 시리고 코에는 마스크를 걸어야 하는 아주 괴이한 병이었다.


   몸은 아프고 병명은 나오지 않고 그렇다고 아픈 몸으로 본당에서 사목할 수는 없어서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성 라자로 마을’에서 두 달 이상 정양을 하게 되었다. 그때 이경재 원장신부님은 미국에 장기간 출장 중 이었고 나는 또 한국가톨릭 나 사업가 연합회의 일에 약간 관여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인연으로 신부님의 빈자리를 요양하면서 지켜 드렸던 것이다.


   본래 성 라자로 마을은 경치가 좋은 곳이다. 자연경관도 수려하지만 그에 걸맞게 성당과 일반주택들도 뛰어난 설계로 건립되어 있어서 별장 중의 별장처럼 멋이 있었으며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래서 마을을 찾는 이마다 그 풍광명미를 감탄했으며 TV방송사들도 앞 다투어 촬영을 자주 하는 곳이다.


   하루는 서울에 있는 모 종교단체가 사과 두 박스를 들고는 마을의 나환우들을 위문하기 위해 방문한 일이 있었다. 처음에 그들은 순수한 사랑과 봉사정신으로 환우들을 만나보며 마을을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너무도 훌륭한 마을의 경개 때문에 서로 탄성을 지르면서 누군가가 불쑥 이런 말을 했다.


   “문둥이들이 살기에는 너무도 아깝다!”

   그것은 참으로 뜻밖의 돌출발언 이었다. 그러나 본인들은 별 느낌 없이 서로 킬킬거리며 그 말에 동의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 주위에는 할머니 나환우들이 나물을 다듬고 있다가 그 소리를 듣고는 흠칫 놀라면서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그 날의 방문은 환자들 위문이 아니라 분명히 행패였으며 무자비한 폭력이었다.


   이런 걸 보면, 건강한 사람들은 대체로 고통 받는 자들의 아픔을 잘 모르는 것 같다. 건강한 자기들 수준에서만 느끼고 판단하기 때문에 약한 자들이 자신들의 아픔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지는 전혀 개의치를 않는다. 사람은 그래서 아파 봐야 아픔을 알고 굶어 봐야 굶주린 자를 알게 되는 모양이다.


   그 날 방문객들이 떠난 뒤에 ‘문둥이(?)’사건 문제가 환우들 전체를 어수선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결국은 아픈 자들이 짊어져야할 일종의 숙명의 십자가로 알고 그것마저도 하느님의 은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자기들의 치료방법 이였으며 또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지혜였다.


   “건강한 자들의 잘못도 우리 죄로 알고 하느님께 속죄합시다.”

   누군가가 그렇게 제의 했을 때 그 말은 어찌 보면 순 억지였다. 건강한 자들의 잘못이 어디 환자들의 탓이고  또 그들의 잘못을 왜 약자가 대신 짊어져야 하는가. 좌우간 그 날은 그 말 한마디에 모두가 숙연한 자세로 이성을 회복했는데 환우들은 그 날부터 방문객을 두려워했다. 그들은 사실 과일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과거에도 그 비슷한 사건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걸 보면 세상은 고통 받는 자들을 제대로 돕지 못하는 것 같다. 기껏해야 돈 몇 푼 던져주는 격인데, 그것은 사랑이나 봉사라 하기보다는 일종의 자기 과시오 선전일 뿐인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세상을 돕는 것은 건강한 자들이 아니다.


   세상은 사실, 있는 자들과 건강한 자들에 의해 계속 파괴되어 왔다. 자연을 훼손하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도 그들이며, 사치다 낭비다 해서 방탕한 생활로 윤리 도덕을 깨뜨리는 주범들도 역시 그들이다. 그런데 이 망조가 든 세상을 건질 수 있는 유일한 희망과 에너지가 바로 약자들의 고통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사람의 육신에 고통은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고통은 그 자체로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에 인간의 육신에 고통이 없다면, 아마도 인간의 수명은 10년을 넘길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세상에 고통이 없다면 인류역사가 미래를 향해서 전진 할 수 없는 것이다. 망해도 벌써 멸망되었다는 것이다.


   구약성서에 보면 옛날 사람들은 고통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오늘날에도 마찬가지지만). 고통은 그저 악이요 벌이요 저주일 뿐이었다. 그래서 선한 이들이 왜 고통 받는지를 그들은 알아듣지 못했으며, 단순하게 하느님의 선과 정의가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고 절규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세상은 모순이요 인생은 고역이었다. 


   그러나 인생은 고역이 아니고 세상은 또 모순도 아니다. 물론 악인들이 자주 떵떵거리는 힘을 갖고 위세를 떨치며 세상을 짓밟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선인은 늘 악인에게 당하면서 애매한 고통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몸부림치는 억울함도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세상자체가 모순이 될 수는 없으며 악이 승리자요 선이 패배자는 더더욱 아닌 것이다.


   오래 전 시골에서 선생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어떤 남자가 집에 아들이 둘이나 있는데도 또 밖에 나가서 아들을 하나 더 낳아 가지고 돌아왔다. 이 때문에 집안에 큰 문제가 생겼다. 그러나 부인은 군말 없이 다른 여자가 낳아 준 아이를 자기 자식처럼 열심히 키웠다. 그런데 이놈이 커 가면서 또 말썽이라 부인의 속을 많이 끓게 했다. 그리고 결국 마흔 살이라는 아까운 나이에 부인은 암으로 죽고 말았다.


   그걸 보고 많은 사람들이 혀를 차며 ‘복도 없는 부인’이라고 아까워했었다. 그러나 사실은 복이 있는 여자였다. 그녀는 악한 세상을 참으로 선하게 살 줄 알았던 아름다운 여자였다. 병든 세상을 살 줄 아는 지혜로운 여자였으며 또 비뚤어진 세상을 올바르게 살 줄 아는 멋진 여자였다.


   자. 여기서 죄는 누가 지었으며 고통은 누가 받고 있는가. 물론 죄는 남자가 지었으며 고통은 여자가 대신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실 자체만으로는 대단히 불공평한 일이요 억울할 것이다. 그런데 그 사건을 속으로 깊이 들어가서 살펴보면, 죄인이 파괴시키는 세상을 성인의 고통으로 치유시켜 준다는 것이다. 좀 애매한 말 같지만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보지 못한다. 순전히 외양만 보고 ‘이것이 진실이다’, ‘저것이 행복이다’하고 논하고 있지만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은 내면 깊숙이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억울하게 당해보고 또 눈물을 흘리며 고통을 체험하기 전에는 세상 자체가 지니고 있는 소중한 의미와 가치를 이해하지 못한다.


   소록도는 참으로 아름다운 섬이다. 면적은 150만평에 불과하지만 울창한 소나무 숲과 백사장이 일품이며, 그리고 주위의 섬들과 어우러져 경관이 아주 빼어난 곳이다. 특히 환우들이 가꾼 중앙공원은 나무 하나하나가 다 뛰어난 예술품으로, 육신은 비록 흉하게 손상되었지만 그러나 나환우들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영혼이 예쁘게 새겨져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 아름다운 경치를 건강한 자들이 찾아와서 오염시키고 훼손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소록도의 상징인 사슴을 날강도처럼 들어와서 잡아먹는 것도 그들이요, 방문을 빙자하여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는 것도 역시 그들이다. 그런데 또 당연한(?)것은, 그 뒤를 우리 나환우들이 따라가면서 쓸고 닦고 줍고 한다는 것이다.


   오물을  버리는 ‘강자’는 무엇이며, 또 그것을 뒤따라가며 줍는‘약자’는 무엇인가. 뿐만 아니라 때리는‘악’은 무엇이며 얻어맞는‘선’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상은 죄악이 창궐해도 그래서 용서받으며 전진하는 것이다!


- 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 중에서/강길웅 요한 신부 (소록도 본당 주임)

 

                                   

                                     불의가 세상을 덮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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