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행복하여라'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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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복순 | 작성일2006-10-31 | 조회수614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행복하여라(마태 5, 1-12)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이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니.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이들! 그들이 위로를 받으리니. 행복하여라, 온유한 이들! 그들이 땅을 차지하리니.
성 아우구스티노의 신학에 따르면, 원죄는 세 가지 결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둘째는 잘못된 곳에서 행복을 찾고 있는 탐욕이고, 셋째는 비록 행복이 찾아지는 곳을 알면서도 그것을 추구하지 못하는 나약함이다. 이것이 원죄 이후의 인간의 상태이고 조건이라는 것이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찾아 나서지만 잘못된 곳 즉 탐욕을 쫓아가고 있으며 비록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을 알면서도 우리의 의지가 나약하기 때문에 작심 삼일이라는 말이 있듯이 자주 넘어진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행복을 인간에게 되찾아 주러 오셨다.
오늘 복음을 보면 우리가 행복으로 가는 길이 어떤 길인지를 제시하셨고 그리고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면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는가를 가르쳐 주셨다. 즉 오늘 복음은 행복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모르는 인간에게 행복을 찾아주는 약도로서 행복의 대헌장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한번 예수님이 제시해주신 행복의 비결을 배우고 그렇게 생활하도록 노력하자. 예수님이 제시해주신 행복의 비결은 즉 행복에 이르는 길은 여덟 개의 길이 있다. 그 중에 어느 한가지 길만이라도 제대로 간다면 행복에 이를 것이다. 왜냐하면 여덟가지 길은 서로 통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첫째,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이들! 이란 말은 한 마디로 예수님의 자서전과도 같은 말이다. 즉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의 얼굴을 보여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하신 분이시다. 마음이 가난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실 수 있었다.
"그분은 부요하셨지만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분이 가난해지심으로써 여러분은 오히려 부요하게 되었습니다."(코전 8,9)
그래서 바오로는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으로 간직하십시오.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tu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필립 2,5-7) 마음이 가난한 이들이란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여섯째, 마음이 깨끗한 이들이란 현실의 진리를 밝히신다. 즉 이 세상 종말에 가면 현재의 것들은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해답이다. 마지막 날에 승리하는 자는 마음이 깨끗한 이들이다. 그들만이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더러운 것은 아무것도 그 도성으로 들어 가지 몫하고 흉칙한 짓과 거짓을 일삼은 자도 결코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 도성에 들어갈 수 있는 자는 다만 어린 양의 생명의 책에 이름이 올라 있는 사람들뿐입니다."(묵시 21, 27)
일곱 번째,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란 자기 신원에 맞는 생활을 하라는 것이다. 즉 하느님의 자녀라면 하느님의 자녀로서 해야할 일을 실천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것은 이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다. 사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평화를 가져다 주러 오셨다. 이 세상이 주는 평화가 아닌 하느님이 주시는 평화는 폭력적인 방법으로가 아닌 사랑의 방법이다. 따라서 사랑으로 평화를 건설하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자녀들이다.
산 위에서 가르쳐주신 산상설교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요약한 것이다. 즉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어떤 생활이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신 것이다.
칸트에 의하면 행복한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행복을 누리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행복을 직접 목적으로 삼지 말고 행복을 누릴 만한 자격이 있는 행동을 하고 또 그러한 인간이 되라는 것이다. 행복의 길은 행복에 해당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요,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일이다.
-유광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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