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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는 행복합니다' / 배영희 엘리사벳.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06-11-01 조회수562 추천수4 반대(0) 신고

천상의 음성이었다.

그대는 자신이 지금 얼마나 사치스런 절망에 빠져있는가.
자신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이 세상에는 없을 것이라는 착각으로

찾아온 이들에게 온화하지만 준열한, 나직하지만 강렬한 꾸짖음을 주는 음성이 있다.

 

그녀의 꾸짖음은 입바른 도덕률도 아니요, 목소리 큰 훈계도 아니다.

입가에 감도는 다정스런 미소요, 자신의 삶을 육화시킨 시 한 편,

'나는 행복합니다'를 들려주는 것이 전부다.

부드러운 그녀의 미소와 맑은 목소리는 그 어떤 삶의 지혜보다 밝고 맑아 보인다.
번민과 절망을 딛고 선, 삶과 죽음을 초월한 인간 승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19801023.
그날, 당신이 가지고 있는 추억의 앨범에는 어떤 일들이 기록돼 있는가
.
도도한 강처럼 흐르는 시간속에 모래알처럼 많은 사연들
. 배영희씨는 이날 어두움과 만났다.
자신의 삶이 더는 추락할 수 없는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
느닷없이 찾아온 실명!  배영희씨는 그날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78년 화곡여중을 졸업할 당시 영희씨의 몸은 심상찮은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온 몸에 힘이 빠지고 나른해졌으며 잔병치레가 잦아졌다.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하여 영희씨는 고등학교에 진학을 할 수 없었다
.
2
년간 학업을 중단하는 동안 아름다운 소녀의 꿈을 키워가는 주위 친구들의 등하교 길을

먼 발치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어제 진 태양은 오늘 다시 떠올랐지만 영희씨에게는 그 태양이 다시 떠오르지 않았다.

따뜻한 햇살로 대지를 보듬는 태양을 영희씨는 볼 수가 없었다.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보이지 않았다. 희뿌옇던 잔상 마저 없어지고

이제는 눈 앞에 있었던 모든 풍경들이 지워졌다.

조금만 움직여도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에 빠졌다.

 

하룻밤 사이에 찾아온 실명.

갑작스럽게 닥친 결핵성 뇌막염이 영희씨의 빛을 빼앗아가 버린 것이다.
어젯밤 환하게 웃으며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던 친구의 모습이

영희씨가 본 세상의 마지막 풍경이었다.

 

85년 ... 영희씨는 며칠전부터 걷는 것이 힘들고

손끝 감촉이 무뎌지는 것을 느끼고는 있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칼로 자신의 손등을 그어대도 아픈 줄을 모르게 됐다.

전신마비의 증세가 찾아오는 전주곡이었다.

 

손목처럼 가느다란 다리. 앙상한 뼈만 삐죽한 가슴.

뇌성마비의 발바라(영희씨의 친구)가 떠먹여주는 밥으로 영희씨는

그녀의 아름다운 삶을 늘려가고 있다.

그 보답으로 영희씨는 발바라에게

그녀의 맑은 영혼으로부터 스며나오는 아름다운 시를 들려준다.

 

여리디 여린 나이 열 아홉 살의 소녀가

자신의 실명을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좌절과 절망에 몸을 떨던 영희씨가 자신의 실명을 인정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낙관할 줄 아는 그녀의 결 고운 마음씨와

무엇을 본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허상을 느낀다는 것이 아닌

가슴 속으로부터 바라볼줄 알아야 한다는

'마음의 눈'을 뜨게 된 때문이었다.

 

한결같은 모습으로 살던 엘리사벳은

시처럼 아름다운 당신의 생애를 1999년 12월로 마감하고

세상에 뿌린 사랑의 향기를 안고 주님 품에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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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 배영희 엘리사벳 >

 

 

    나는 행복합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고

아무 것도 아는 것 없고

건강조차 없는 작은 몸이지만

나는 행복합니다

 

세상에서 지을 수 있는

죄악 피해갈 수 있도록

이 몸 묶어 주시고

외롭지 않도록

당신 느낌 주시니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세 가지

남은 것은 천상을 위해서만

쓰여질 것입니다

 

그래도 소담스레 웃을 수 있는 여유는

그런 사랑에 쓰여진 때문입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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