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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천상병 시인의 '하느님 말씀을 들었나이다'
작성자송규철 쪽지 캡슐 작성일2006-11-01 조회수710 추천수2 반대(0) 신고


 

굿뉴스 게시판에서  천상병 詩 '국화꽃'이 돌에 새겨진 사진(윗 그림)을 보게 되었습니다.

 

문안을 작성하다가 가을에는 국화꽃이라는 시를 인용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사진에서는 시를 잘 읽을 수가 없어서 시의 본문을 찾으려 검색하였습니다.

사이트에서 천상병 시인의 작품 모음과 해설을 읽게 되었습니다

 

먼저 '하느님 말씀 들었나이다'詩를 감상하고

천상병 시인의 출생과 성장 해설편 읽어 가다

마지막 줄에서 그만 '아~ "

 

천상병 시인은 생전에 지상에서 하느님을 뵈옵고, 하느님  사랑으로 태어난

영혼만이 하실 수 있는 '참 자아'의 고백일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어떻게 1950년에 천상병詩人에게 이런 일이 일어 날 수가 있는가?

  

개인신앙안에

 

천상병 시인의 '하느님 말씀을 들었나이다' 시를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느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시인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느님...

마치 구약의 호세야, 이사야 예언자처럼  시인또한 우리시대의 예언자라는...

 

'국화꽃'시 사진을 생각하고 희미한 돌의 싯귀를 찾아 보다가 국문학 사이트에서

 '하느님'의 생생한 목소리를 천상병 시인을 통해 듣게 되었는지?

 묵상해 봅니다.

 저에게는 ' 가톨릭 성가 29번' 내 옆에 계시옴을 깨닫게 하소서 의미로 다가옵니다.

' 가톨릭 성가 29번'

 1) 주 예수 따르기로 나 약속했으니 내 친구 되신 주여 늘 함께 하소서 주 함께 계시오면

     나 든든하옵고 주 나를 이끄시면 바른길 가리다
   2) 이 세상 온갖 유혹 내 맘을 흔들고 내 모든 원수들이 늘 괴롭히오니 주 나를 돌아보사

       내 방패 되시고 내 옆에 계시옴을 깨닫게 하소서
     3) 저 영광 빛나는 곳 주 내게 보이니 그 아름다운 곳을 늘 사모합니다 주 예수 섬기기로

          나 약속했으니 끝까지 따라가게 용기를 주소서

 천상병 시인의 시를 읽고 놀란 마음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비록 혼란 스럽지만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하느님의 현존과 미사성제의 신비를 ... 고백합니다. 아멘

 

호세아,아모스,이사야... 구약의 예언자처럼

시인도 그러한 소명을 '시'로 노래하셨나 봅니다.

 

이사야 : 벼랑 끝에 서 있는 조국의 현실 앞에서 이사야는

            인간적 지혜 대신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강조했습니다.

호세아: 혼인서약과 부부간의 사랑으로 하느님과의 관계와

           그분의 사랑을 상징적으로 나타냈습니다.

나는 행복

(幸福)합니다

 

 

 

                    천상병

 

 

 

나는 아주 가난해도

그래도 행복(幸福)합니다.

아내가 돈을 버니까!


늙은이 오십세살이니

부지런한 게 싫어지고

그저 드러누워서

KBS 제1FM방송의

고전음악을 듣는 것이

최고(最高)의 즐거움이오. 그래서 행복(幸福).


텔레비젼의 희극(喜劇)을 보면

되려 화가 나니

무슨 지랑병(炳)이오?


세상은 그저

웃음이래야 하는데

나에겐 내일도 없고

걱정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데

어찌 어기겠어요?


행복은 충족입니다.

나 이상의 충족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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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말씀 들었나이다.

 

                       천상병

 

 

 

 

 

1950년 10월 5일 정오경

 

나는 종로 2가

 

안국동쪽을 꺽고 있었습니다.

 

길꺽는 모퉁이에

 

한그루 가로수가 있었는데,

 

그 밑을 지나는 순간

 

하늘에서


 

낮으막하나,

 

그래도 또렷한 우리말로

 

'명상은 않되!'하는

 

말씀이 들리시더니

 

또 일분 후에

 

'팔팔까지 살다가, 그리고 더'라는

 

말씀이 들렸습니다.


 

하느님 말씀이 틀림없습니다.

 

2천년만의 하느님 말씀입니다.


 

저는 몸둘 바를 모르고

 

그냥 길바닥에 주저 앉아

 

한참 명상에 잠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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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복

 

                        천상병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대학을 다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

 

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

 

이쁜 아내니

 

여자 생각도 없고

 

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집도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

 

하느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천상병 시인의 작품중에서  윗 3작품을 읽어 보니

 

교황 요한 바오로2세의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 울지말고 기도합시다’말씀이 함께

 느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詩를 읽다가 천상병 詩人의 가슴에 '예수님'을  담은 것 같았습니다.

   '하느님 말씀을 들었나이다' 詩를 읽을 때는 '하느님'을 만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복' 詩를 읽을 때는  '하느님'께 항구한 믿음을 간직한 詩人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 말씀을 들었나이다' 詩 귀절에서 '팔팔까지 살다가, 그리고 더'라는

싯귀에서 시인이 표현하신 것에  무슨 의미가 담겨있는가? 생각했습니다.

 

혹 시인이 언제 돌아 가셨나 하고 아래 (예증 그림)에서 출생과 성장칸을 보니 

맨 위에 [천상병(千祥炳 1930. 1.29 ~ 1993. 4.28)]을 읽으면서1993년에

돌아가셨는데 '팔팔까지 살다가, 그리고 더'라는 의미가 의아하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작은 글씨가 하도 많어서 무심코 훌쩍 읽어가다가 

 

그만 '아~~~'

 

아니~ 이럴 수가 있는가? 탄성이라고 해야할 지? 경탄이라고 해야 할지?

종교사이트해설도 아니 란에서 뜻하지 않게  즉 국문학 해설란에 징표처럼

설명할 줄이야? ...

 

 

예증: 작은 글씨 본문

 출처;천상병(千祥炳 1930. 1.29 ~ 1993. 4.28)/차/작가/현대문학/국어/일반상식

제2시집이자 시선집인 [주막에서](민음사, 1979), 제3시집 [천상병은 천상 시인

이다](오상사, 1984), 천상병 문학선집 [구름 ... 시인 천상병의 시는 티없이

맑고 깨끗한 서정을 바탕으로

한 신고전주의 경향의 시를 주로 썼으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 ...
user.chollian.net/~bioman/ilban/guker/guksa/hyun/jakga/chensangbyung.htm - 50k -

 

 윗 그림 (예증: 작은 글씨 본문 내용중에서)에서  '팔팔까지 살다가, 그리고 더'

라는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춘천 의료원에 입원하여

의사로부터 가망이 없다는 진단을 통고받았으나 기적적으로 회생(1988)함.


1993. 4.28 지병인 간경변증으로 별세.

 

 

천상병 시인께서 찬탄하신

'하느님 말씀이 틀림없습니다. 2천년만의 하느님 말씀입니다.'

위 싯귀는

아무리 생각해도

'하느님 말씀이 틀림없습니다. 2천년만의 하느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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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인용 그림의 본문을 확대하여 옮겨 봅니다.

 


예증: 작은 글씨 본문 내용중에서

[...]시인에 대한 [출생 및 성장]해설에서

그의 첫 시집이자 유고(遺稿)시집인

[새(조광 1970.12)]가 문우들에 의해 발간함으로써 살아있는 사람의

유고시집이 발간되는 일화를 남김. 술을 너무 좋아해 술을 친구 삼아

독신으로 오랜 유랑생활을 하였으며 가난과 무직, 주벽, 무절제한 생활로

반평생을 보내면서 세속의 관행을 무시한 기이한 행동으로 수 많은 일화를

남기면서 ‘문단의 마지막 순수시인’ 또는 ‘문단의 마지막 기인(奇人)’으로

불림. 43세 때 친구 목순복의 누이동생인 목순옥(睦順玉)과 결혼(1972).


결혼 후 부인이 생계를 책임짐으로써 다소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있었으며, 지병으로 죽기 전까지 부인의 지극한 보살핌에 힘입어

왕성한 창작활동을 보임.간경화증으로 춘천의료원에 입원하여

의사로부터 가망이 없다는 진단을 통고받았으나 기적적으로 회생(1988)함.


1993. 4.28 지병인 간경변증으로 별세.

 

   

인용문:

" 숨이 멎는 고통 속에서도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 울지말고

기도합시다’라는 말씀 듣고 울었습니다…이제 당신의 길고 오랜 침묵은

‘더 넓고 깊게 사랑하라’는 커다란 외침으로 들립니다…당신을 통하여 우리는

모든 이가 하나 되는 하늘나라를 이미 앞당겨서 바라보는 행복을 누립니다.”

 

(이해인 수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1주기 추모시 ‘오오, 잊을 수 없는 교황님’ 중)

(자료 검색과 편집 / 작성 s.사도요한  2006년 10-31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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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4일 토요일 )새벽미사에서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영성체를 하러 의자사이를 옆으로 조심스럽게 걸어 갈 때 '위로부터' 내려오는

소리없는 '들음'이 저에게 내려온 것입니다.

'작고 약하기 때문이다'그 '들음'을 듣고 신부님의 손에 드신 성작을 향하여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머리숙여 신부님 앞에 왼손을 위로 영성체를 받으려

하는데 떨림과 잔잔한 물결이 쳤습니다.

성체를 영하고 저에게는 영적체험을 존재 깊숙히 간직한 자리가 있습니다.

감실 앞 자리입니다.

침묵기도를 드리는데 '너는 착한 사람...' 작은 글자가 보이는 듯하여

속으로 주님께서 '너는 착한 척 하는 사람...'라고 보여 주신 것을

의도적으로 '착한 사람'이라고 본 것 일거야 하고 성찰해 보았습니다.

그 순간이 잠깐 지나고

다시 ' 착한 .. 양...'글자가 보였습니다.

자신을 들여다 보고 있는데 침묵으로 들어가며

온몸에 잔잔히 전율이 올라 왔습니다. 잠시 가라 앉더니

주님 '현존'이 부드로운 손길로 오시자 제 마음은 차 오르듯이 느껴지며

 '성령의 위로'를 체험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1코린 1,27).

 

금년에 본당 미사봉헌중에   부활시기 체험 이후 다시  '미사성제'안에

함께 하여 주시는 위로자 성령을 체험 하였습니다.

 

'작고 약하기에...' 더 사랑해 주시고 찾아 주시는 주님의 사랑앞에

두눈을 타고 내려오는 뜨거운 눈물을 닦을 손수건이 없어 양손으로

씯어 내린 세수?를 하였습니다.(끝)

 

 

미사성제안에 성체를 영하고 찾아오시는 성령의 위로안에 개인적 신앙안에

내면으로 받은 느낌을 아래의 인용글로 더 보충해 봅니다. 

(11월4일 토요일 새벽미사에서 영적체험하고 귀가하여 눈에 띠는 1년전 보던

먼지 쌓인 책중에서  아래 책을  잠깐 무심코 열어 보니 바로 미사성제안에

받은 은총에  '딱' 와닿은 문귀가 있어 적어봅니다.)

 

[...]

하느님께서는 예수를 통해 우리 인간을 아주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하신다.

그리스어"charis"(카리스)는 본디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 주는 행동과 태도를

의미한다. 그리고 "charis"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기쁨을 가져다주시는

은총과 선물을 지칭하기도 한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형용 할 수 없는 기쁨을 마련하신다.

그 기쁨은 아무도 우리에게서 앗아 갈 수 없는 기쁨이다.

 

그리고 예수를 통해서 우리에게 다정한 사랑을 보여 주신다.

 

동시에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하느님의 성실과 신의를 체험할 수 있다.

 

요한은 신의라는 뜻의 히브리어를 그리스어 "aletheia"(알레태이아 = 진리)로

옮겼다.

 

진리란 본디 그리스어로, 실재를 가리고 있는 휘장을 벗겨 내는 것을 뜻한다.

 

그 실재는 신적 실재를 의미한다. 우리 인간존재의 본질을 어둡게 하는 휘장은

예수를 통해서 벗겨졌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우리가 진정 누구인지를

깨닫는다.  우리는 그분을 통해서 우리의 원천적 모습을 깨닫는다.

 

불자들은 "진리가 있다"고 말한다. 진리는 단순히 현존하다. 진리는 조정할 수

없는 실재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눈을 여시어,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있는

그대로 깨닫고, 그 세상과 모든 사람 안에서 신적 실재를 깨닫도록 하신다.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얼굴을 반사하고 있다 . 우리가 모든 것 위에 놓여

있는 휘장을 걷어 낸다면 하느님께서는 피조물 안에서 당신 자신을 밝혀

주신다. 관상의 신비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우리의 생명이 달려 있다.

 

"일찍이 아무도 하느님을 보지 못했다. 아버지 안에 계신 외아드님, 하느님

이신 그분이 알려 주셨다"(요한1,18)

이 환희에서 찬미가는 그 정점에 이른다. 우리 인간 가운데 아무도 하느님을

볼 수 없다. 모세도 하느님을 진정 보았던 것이 아니라 그분의 뒷모습만을

보았을 뿐이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을 정말로 보셨던 유일한 분이시다.

그분은 친히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아버지의 품 안에 계시다.

그분은 아버지와 아주 가까운 관계에 계시다. 그분은 우리에게 하느님을

계시하셨고, 하느님을 볼 수 있게 하셨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을 바라본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을 통해서 아버지와 아주 친밀한

관계에 이르게 되었다. 곧 예수를 통해서 우리는 아버지의 품 안에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의 생명은 빛나고 있다. 영지주의가 갈망했던

것이 바로 예수 안에서 실현되고 있다.

예수를 통해서 우리는 영원한 사랑이신 하느님을 바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일찍이 아무도 보지 못했던 하느님의 영광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예수 안에서 우리는 인간이 영원의 순간부터 줄곧 갈망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바라본다. 그것은 예수의 인격과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계시된 참된 하느님이시다. [...]

 

예수, 생명의 문 / 안셀름 그륀 지음/분도출판사 p.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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