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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스스로 열어 보이시는 분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6-11-03 조회수649 추천수5 반대(0) 신고

 

 

<스스로 열어 보이시는 분>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합당 하냐, 합당하지 않으냐?”

“너희 가운데 누가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일지라도 바로 끌어내지 않겠느냐?” (루가 14,3.5)


  율법에 아무리 안식일이라도 목숨이 위태로운 경우는 도움을 베풀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무엇보다도 사람을 살리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인간들은 세월이 지나고 점점 종교의식에 무게를 두어왔습니다. 종교절차와 질서는 일사분란하게 지켜질 때 산뜻하고 아름답게 보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전례행위는 점점 복잡해지고 갖가지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점차 전례를 잘 알고 의미를 해석하는 일이 권위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이 갖는 여러 욕망 중에 명예욕도 그 뿌리가 깊습니다. 명예를 손상당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는 일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심지어 개명됐다고 여기는 요즘도 일부 종교에서는 명예살인을 공공연히 저지를 정도입니다. 그 이유를 묻지 않고, 집안 망신 시켰다는 것 때문에 결과만 가지고도 신체적 위협을 받을 만큼 명예는 중요한 것입니다. 타인의 손가락질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라는 것이죠.


  유대인들에게 점차로 율법을 지키는 일이 그 사람의 인격을 알아보는 척도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율법을 더 중시한다는 과시가 되어버렸습니다. 진리는 아는 것 못지않게 지키는 법도 더 어렵습니다. 그 점을 악용하여 남보다 우위에 서서 젠체하려는 심리는 누구나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남들에겐 접근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특별한 것이 감추어져 있는 양 지키기 어렵게 만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먼저 질문을 하십니다. 그것도 아주 대답하기 쉬운 질문을 하십니다. 평범하고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것을 통해 그가 답을 선택하게 만드십니다. 평범하고 낯익은 것을 통해 누구라도 그렇게 대답하도록 만드십니다.

  

  초자연적이고 비범한 것에 이끌리는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란 과연 무엇인가요?


  예수님께서 하신 독특한 방법은 먼저 당신의 부서지기 쉬운 마음을 열어 보이시는 것입니다. 바리사이든 세리이든, 누구의 초대에도 기꺼이 응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합당 하냐, 합당하지 않으냐?”는 질문은  당신 마음을 열어 보여 당신의 심정이 지금 어떤지를 알게 만드신 것입니다. 나는 지금 이 아파하는 환자를 치료하고 싶다. 그러니 네 생각은 어떠냐? 네 마음에도 이 사람이 불쌍해 보이지?

  그 자리에 합석하고 예수님의 모습을 본 누구라도 공감했을 것입니다. 그 수종병 환자는 아마도 이런 분위기에 휩싸여 자신이 병에서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어느 때보다 강하게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치유하실 때도 먼저 나서서 손으로 나병 환자를 만져 주셨습니다. 그것은 그 나병환자로서는 아주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고 공동체에서 쫓겨나야했던 그들로서는 그자체로 감격이었습니다. 이렇게 당신을 열어 보이시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나타납니다.


  우리는 얼마나 스스로 숨기고 살아가는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잘 압니다. 손가락질 당할까 얼마나 두렵습니까? 겁쟁이라 놀림 받을까 얼마나 걱정합니까? 자기의 부족한 모습이 들어 날까 얼마나 감추었던가요? 실수하면 안 된다. 실수하면 나는 웃음거리가 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스스로 마음을 여는 법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잘 났건 못 났건 자기 마음을 닫는데서 모든 병이 생기는 법입니다. 마음을 열어 이웃에게 보일 수 있는 사람은 자기도 치유되고 이웃도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 받게 됩니다. 어느 신부님께서는 이런 것을 Compassion 이라고 부르시더군요. Passion(연민, 사랑) 을 공유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의미겠죠.


“하느님께 맞갖은 제물은 부서진 영. 부서지고 꺾인 마음을 하느님, 당신께서는 업신여기지 않으십니다.” (시편 51,19)

“주님께서는 마음이 부서진 이들에게 가까이 계시고 넋이 짓밟힌 이들을 구원해 주신다.” (시편 34,19)


  이웃에게 자신의 상처를 열어 보이고 부족한 점을 보여야 상처를 치유 받을 수 있고 자신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감추면 감출수록 더 고통 속으로 들어갈 뿐입니다. 또 자신을 열어 보여주는 모습을 통해 상대도 얼음 같았던 마음을 녹이고 부드럽고 따뜻한 피가 도는 마음을 회복시켜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열어 보임으로써 서로 서먹했던 거리가 좁혀집니다. 우리가 서로 남처럼 느껴졌던 벽이 허물어 졌습니다.


  예수님. 당신은 내게 부셔진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내게 보여 주신 따뜻한 마음이 이렇게 전해 옵니다. 저라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아무 대답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당신이 보여 주신 사랑에 녹아들었을 것입니다.


      



        당신이 나를 여기에 부르신 것은

                            - 토마스 머튼

    

    당신이 나를 여기에 부르신 것은

    내가 특정 범주에 속하는 자로 자처할 수 있는

    꼬리표를 달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나로 하여금

    내가 누구인가를 생각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수도생활을

    큰 연극으로 꾸미지 않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모든 것을 원하셨으므로

    나는 모든 것을 버렸다.” 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제부터는

    당신과 나 사이에 거리를 내포하는 것을

    일체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의 하느님,

    나를 죽이는 것은 바로 그 간격, 거리입니다.

    피조물들은 당신과의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기에

    나는 모든 피조물과 아울러 온갖 피조물에 관한 지식에

    죽은 자가 되려는 것입니다.


    당신이 나를 가르치시고 나를 위로해 주셨기에

    나는 또다시 희망하고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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