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6-11-04 조회수727 추천수7 반대(0) 신고
2006년 11월 4일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


For everyone who exalts himself will be humbled,
but the one who humbles himself will be exalted.

( Lk 14.11)

 

제1독서 필리피서 1,18ㄴ-26

 

복음 루카 14,1.7-11

 

어제는 하루 종일 방에 있으면서 강의 준비를 했습니다. 오늘 서울의 어느 성당에서 강의를 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강의 주제가 제가 이제까지 다루지 않던 주제라 준비하는데 상당히 어렵더군요. 더군다나 오랜만에 방에 앉아서 공부(?)를 하다 보니 점점 머리가 아파왔습니다. 머리도 식힐 겸 묵주를 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묵주기도를 하는데, 문득 이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발한 지가 너무나 오래되어서 제 상태가 상당히 지저분했거든요.

이발을 하고 나오니 시원한 것은 물론 아주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가 있었지요. 그리고 강의 준비를 하는데도 다시 새로운 기분으로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단지 이발만 했을 뿐인데, 이렇게 기분도 좋아지고 외모도 깔끔해지고 좋은 점이 한 둘이 아니더군요.

조그마한 외적인 변화만으로도 이렇게 많은 것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더군다나 주님께서는 이러한 변화를 우리에게 원하고 계십니다. 물론 겉모습만의 변화를 원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자기 자신만을 세상에 드러내려는 욕심을 버리고, 주님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는 마음의 변화를 우리에게 끊임없이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이 보장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위해서는 자기를 낮추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렇게 변화되지 않고 구태의연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말씀하고 계시지요.

예수님께서 한 바리사이의 집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저마다 윗자리에 앉으려고 노력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윗자리에 앉으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가 저 사람보다는 낫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또한 자신의 위치를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그러한 행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 모습이 우리 일반적인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리싸움에 열중하고 있나요? 이렇게 자기 자리를 지키는데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에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이제는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낮아지셨지요. 세상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하느님께서 스스로 낮추셔서 종으로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과연 주인 행세를 하면서 맨 윗자리에 앉을 수가 있을까요?

세상의 지위나 명예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지금 현재는 이런 것들이 중요하게 보이고, 또한 영원한 것 같기도 하지만, 실제로 이런 것들은 한 순간의 기쁨만을 가져다 줄 뿐인 것이지요. 정말로 중요한 것을 쫓는, 그래서 어떤 지위나 명예에 연연하지 않는 예수님의 맘에 꼭 맞는 그런 신앙인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정받으려고 하지 마세요. 주님만 인정해주시면 되잖아요.



돌(톨스토이)



두 여자가 있었다. 한 여자는 자신을 죄인이라 여겼고, 다른 여자는 한 평생 법대로 살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두 여자가 가르침을 받고자 함께 현자를 찾아왔다. 현자는 두 여자에게 지난 삶에 대해 물었다. 스스로를 죄인이라 했던 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자기가 지은 죄를 고백했다. 그녀는 자기 죄가 매우 크다고 생각해서 용서는 기대하지 않았다. 반면 다른 여자는 이렇다 할 죄를 짓지 않았고, 법대로 살았을 뿐 특별히 잘못한 기억은 없다고 말했다. 현자는 울고 있는 여자에게 말했다.

“당신이 들 수 있는 가장 무거운 돌 한 개를 찾아오시오.”

아무런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한 여자에게도 말했다.

“당신은 들 수 있을 만큼 많은 돌을 가져오시오. 단 모두 잔돌이어야 하오.”

현자의 말에 따라 한 여자는 큰 돌을 한 개 들고 왔고, 다른 여자는 잔돌이 가득 담긴 자루를 가져왔다. 현자는 그 돌을 보고 나서 말했다.

“자, 이번에는 돌을 가지고가서 주웠던 바로 그 자리에 놓고 돌아오시오.”

여자들은 돌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큰 돌을 가져온 여자는 돌을 주었던 자리를 쉽게 기억해 그것을 본래 위치에 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잔돌을 한 자루나 주워온 여자는 어떤 돌을 어느 곳에서 주었는지 도무지 생각해 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돌 자루를 그대로 들고 현자에게로 왔다.

“바로 그거요.” 현자가 말했다.

“한 개의 크고 무거운 돌은 쉽게 원래의 자리에 가져다 놓을 수 있소. 돌의 위치를 잘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오. 하지만 잔돌은 너무 많고 작아 제 위치를 기억하기 어렵소. 죄도 그와 마찬가지요. 눈물로 고백한 자는 스스로의 죄를 잘 기억하고 있소. 그래서 자기 양심의 비난을 받으며 겸손하게 살았지. 하지만 그대는?”

현자는 잔돌을 도로 가져온 여자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자잘한 죄를 많이 짓고도 기억하지 못해 뉘우치지 않으면 죄 안에서 사는 것에 길들여지기 쉽소. 우리는 모두 죄가 많소. 우리 모두가 죄를 뉘우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곧 멸망하고 말 거요.”

 

  


 


하얀 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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