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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월 4일 야곱의 우물- 루카 14 1.7-11 묵상/ 자연스럽게 받아들임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6-11-04 조회수548 추천수4 반대(0) 신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임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가시어 음식을 잡수실 때 일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초대받은 이들이 윗자리를 고르는 모습을 바라보시며 그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누가 너를 혼인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 너보다 귀한 이가 초대를 받았을 경우, 너와 그 사람을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이분에게 자리를 내드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너는 부끄러워하며 끝자리로 물러앉게 될 것이다.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여보게, 더 앞자리로 올라앉게’ 할 것이다. 그때에 너는 함께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루카 14,1.7­-11)

◆수련기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는 겸손·이탈·희생 같은 것이었다. 또한 교만은 사람이 죽고 나서 조금 후에 죽는다는 말도 들었다. 그리고 겸손하게 순명한 수도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많다. 순명정신으로 나무를 거꾸로 심었는데 기적적으로 살았다든가, 계단을 아래에서 쓸어 올라가라고 했다든가 하는 이야기다. 지금 이런 말을 듣고 실행할 사람이 있을까마는 그 당시 어린 마음이었지만 웃어넘기기보다 나도 그들처럼 겸손하게 순명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인간이 하느님을 닮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겸손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니사의 그레고리오는 말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겸손에 대한 가르침을 누구보다 자세하게 펼쳤다. 그에게 겸손은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이고 참된 자기 인식이었다. 사막의 성자 샤를 드 푸코는 세상 맨 끝자리에서 가장 겸손한 자가 되고 싶어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맨 끝자리를 이미 예수께서 차지하셨으니 자신은 맨 끝에서 두번째 자리에 만족해야겠다고 농담삼아 말했다고 한다.

예수께서는 지상생활을 하시는 동안 자주 별것 아닌 것처럼 취급되셨다. 30대 청년인 그분을 마을의 목수 이상으로 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관심이 부족한 것에 대해 결코 불평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분은 이러한 관심 부족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셨다.
겸손은 내가 별것 아닌 것처럼 취급받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한다. 내 경험으로도 다른 사람들 눈에 어떻게 보이는가를 지나치게 염려하면 미묘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예수님은 우리의 서열이나 외모보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사랑에 더욱 관심을 갖고 계신다. 겸손은 하느님을 향해 나를 열게 한다. 나 자신을 주위의 관심을 끄는 흥미있는 존재로 만드는 것, 나를 중요한 존재로 여기는 것, 나를 중심적인 존재로 세우는 것을 모두 포기하기 위하여 나의 진면목을 살펴보아야 한다.

 

성 바오로의 말씀을 잘 기억하자.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1코린 1,27).

김희자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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