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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음을 다하고'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6-11-04 조회수608 추천수3 반대(0) 신고

<마음을 다하고>(마르 12, 28-34)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영혼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우리가 누군가가 사랑할 대상이 있고 그 대상을 자기의 모든 마음을 다하고 영혼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매일 매일 삶이 즐겁고 기쁘고 행복할 것이다. 사실 우리의 불행은 온 마음과 영혼과 정신과 힘을 다하여 사랑할 대상을 찾지 못하는 데 있다. 사랑할 대상을 찾았다 하더라도 그럴만한 대상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실망하고 괴로워하는 것이다.

 

온 마음과 영혼과 정신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고 싶은 데 그럴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거이다. 아무튼 온 마음과 영혼과 정신과 힘을 다해서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을 찾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럴만한 분은 오직 한 분이신 주님뿐시다.

그럼 온 마음과 영혼과 정신과 힘을 다하여 사랑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살아간다. 그래서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다. 부모와 지식관계이든 이웃관계이든 선후배 관계이든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인간관계를 맺고 있다. 이런 "관계" 사회에서 우리가 빼놓지 말아야할 관계가 있다. 그것은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이다.

 

인간과의 관계에서는 인간적인 일들을 서로 주고 받지만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는 인간의 것과 하느님의 것을 주고 받는다. 인간은 인간적인 관계에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또 아무리 인간 관계가 좋더라도 인간의 욕망을 채울 수가 없다. 인간은 인간 그 이상의 것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이다. 따라서 원형이신 하느님을 그리워하고 있고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만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하기 시작할 때부터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나 인간은 늘 신 즉 절대자와의 관계를 맺어왔다.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라는 말은 바로 우리가 섬겨야할 분은 오직 한 분 즉 "야훼 하느님뿐이시다."라는 것이다. 야훼 하느님이외의 그 어떤 다른 신도 하느님이 될 수 없고 따라서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관계를 맺어야 할 하느님은 오직 "야훼 하느님 한 분뿐이시다."라는 것은 하나의 원칙이다.

 

네 마음을 다하고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는 도구는 "마음, 영혼, 정신, 힘"이라는 것들이다. 이것들은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는 수단들이며 우리는 이것들을 이용하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것들을 하느님을 사랑하는 데에만 사용해야 한다. 왜냐하면  매번 ".....을 다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다하라"는 말은 어떤 부분적으로가 아닌 전부 모든 것을 다 동원하라는 것이다.

 

"마음, 영혼, 정신, 힘"을 전부 하느님을 사랑하는데 사용하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해 주신 순서에 따라서 하나 하나 묵상하도록 하자.


첫 째" 네 마음을 다하라"는 것이다. 즉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할 때 마음으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전통을 핑계삼아 하느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에게 이사야 예언서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여도 마음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 있구나 ! 그들은 나를 헛되이 에배하며 사람의 게명을 하느님의 것인 양 가르친다." (마태 15, 7- 9) 사랑은 머리로 또는 이론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랑은 마음으로 한다. 가슴으로 한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생각하면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이지 머리가 지끈 지끈 거리지 않는다. 하느님은 우리를 마음으로 사랑하셨다. 우리를 뜨겁게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예수 성심"이라고 하고, 마리아의 마음을 "마리아의 성심"이라고 한다. 

 

하느님은 우리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셔야 할 분이시다. 우리가 마음으로 사랑하지 않고 머리로만 혹은 교리로만 계명으로만 사랑한다고 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사랑을 가슴으로 느끼지 못한다. 우리의 마음은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 만들어 졌다. 하느님은 우리 마음이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우리 마음 안에 당신 사랑을 부어 주셨다. 하느님은 우리를 마음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괴로워할 때 아파하시고 병들고 고통을 겪을 때 함께 괴로워하시고 아파하신다.

 

이 세상에 사랑한다는 사람이 마음으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마음으로 사랑하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이름아래 상대방을 이용하는 것일 뿐이다. 사랑은 마음으로 할 때만이 정말로 사랑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분은 하느님이시고 그 사랑은 말로만이 아닌 마음으로 가슴으로 사랑해야 한다. 하느님의 뜨거운 사랑을 느끼기 위해서 우리도 마음으로 사랑해 보라. 그러면 하느님의 뜨거운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가?  사랑은 상대적인 것이다.

 

일방적인 사랑은 서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또 서로 나누지 못하기 때문에 외로운 사랑이요, 서글픈 사랑이다. 하느님과 나와의 사랑은 하나되는 사랑이요, 서로 나누는 사랑이다. 우리 마음이 하느님을 사랑할 때만이 우리의 마음은 행복을 맛 볼 수 있고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고 기쁨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목숨을 다하고
두 번째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수단은 목숨을 다하는 것이다. 이 말의 본래의 뜻은 " 네 온 영혼으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되어 있다. 육체만도 아니고 영혼만도 아닌 육과 영이 결합된 존재이다. 따라서 우리 안에는 육을 따르는 본성이 있고 또 영을 따르는 힘이 있다. 육으로도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겠지만 영혼이 또한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육체는 영혼이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영혼을 섬겨야 한다. 육체는 일정 기간동안뿐이지만 영혼은 영원하다. 따라서 인간의 모든 신체기능은 영혼이 늘 하느님을 찬미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봉사해야 한다. 영혼에 해를 끼치는 육체적인 그 어떤 행위도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육체는 죽어도 영혼은 살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 삶을 가리켜 영성생활이라고 한다. 즉 육적인 본능을 쫓아 사는 삶을 육적인 삶이라면 영혼을 살리는 영적인 삶을 사는 생활을 영성생활이라고 한다.

 

생각을 다하고
세번째 "생각을 다하라"는 말은 " 네 온 정신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말이다.

 

정신을 갖고 있는인간만이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의 위대한 점은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빠스칼은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표현했다. 생각한다는 것은 하느님이 인간에게만 주신 선물이다. 하느님이 인간에게만 주신 이 정신을 무엇을 위해서 사용해야 하는가? 즉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본능대로 살아가는 짐승들과는 달리 생각할 수 있는 이 위대한 기능을 누구를 위해서 또 무엇을 위해서 사용해야 하는가?  오늘 복음은 그 해답을 가르쳐 준다. 즉 "네 온 정신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데 사용하라"는 것이다.


하느님을 마음으로 사랑해야 하겠지만 또한 "정신"이 동원된 마음이어야 한다. 생각이 없는 마음만으로의 사랑은 쉽게 변하기 쉽다. 금방 뜨거웠다가 금방 식어진다. 그래서 변덕스러운 사랑이 되어 버린다. 우리는 지속적인 사랑, 인간다운 사랑을 해야 한다. 짐승들처럼  본능적인 사랑이 아니라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지성인다웁게 사랑해야 한다.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위대한 힘이다. 생각을 통해서 이 사회는 발전되고 과학이 발전된다. 하느님이 인간에게만 주신 위대한 능력이다.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이 세상을 다스리라고 인간에게 맡기신 것이다. 


"오, 하느님!" 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하느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셨지만 사람들은 그분이 하느님이신 줄을 알아보지 못한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하느님을 알아볼 수 있겠는가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를 여러 모로 생각한 끝에 얻은 결론은 "하느님을 생각합시다"였다. 사람들아 "하느님을 생각하며 살아가자."는 것이 그 영화의 메시지였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는 두 번째 방법은 하느님을 생각하는 것이다.

 

언제 어디에서나 하느님을 생각하는 사람만이 하느님을 사랑 할 수 있다. 우리의 정신은 오로지 하느님을 사랑하는 데에만 사용되어져야 한다.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는대로 모습이 변해간다. 과학자는 끊임없이 무엇을 발명하는 것을 생각하는 새로운 것을 발명해낸다. 남을 죽이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점차 살인자로 변해간다.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할 것만 생각한다. 바둑 두는 사람은 바둑판만 생각한다.  내가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그렇게 내 모습이 변해져 간다.

 

우리의 정신은 하느님만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사실 누구를 사랑하는 사람은 앉아서나 서서나 늘 사랑하는 사람만을 생각한다.  나는 무슨 생각으로 가득차 있는가?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네 번째 방법은 우리가 갖고 있는 힘을 다하는 것이다.  힘은 에너지이다. 에너지는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에너지가 없으면 아무것도 움직일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자동차라도 자동차에 에너지가 없으면 단 1 km도 갈 수 없다. 사람에게 힘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병원에 가 보라. 힘없이 병상에 누워있는 수 많은 환자들의 모습을 보라. 한편 힘이 펄펄 넘치는 젊은 이들을 보라. 얼마나 활력이 넘치는가? 젊은이들은 두려움이 없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힘이 넘치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힘을 주신 것은 당신을 사랑하라고 주신 것이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힘을 주신 것은 당신을 닮으라고 주신 것이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힘을 주신 것은 당신을 따르라고 주신 것이다. 사랑하는데 온 힘을 다하지 않는 사랑이 있는가? 사랑은 온 힘으로 하는 것이다. 즉 모든 에너지는 사랑하기 위해 소모되어져야 한다.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 온  힘을 쏟는 사람은 성인 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평범한 삶을 살다가 평범한 인생을 마치게 될 것이다.

 

한번도 하느님이 주신 위대한 힘을 주신 하느님을 위해 한번도 최선을 다해 사용해 보지 않은 사람이 하느님 앞에 나서게 될 때 무엇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 얼마나 힘을 쏟고 있는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힘 즉 에너지를 무엇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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