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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몸에 가시를 청해야 합니다. - 지금 아파하고 있는 그대에게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6-11-04 조회수635 추천수4 반대(0) 신고

 

 

<내 몸에 가시를 청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루가 14,11)


  신약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서 타르수스의 사울만큼 자기 자신을 높이려고 한 인물도 없습니다. 젊은 시절 사울은 명망 있는 집안 출신이었으며, 최고의 엘리트 교육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요즘으로 치면 대도시에서 부유하며 힘깨나 쓰는 집안에서 자랐을 겁니다. 부모에게서 온갖 사랑과 기대를 흠뻑 받고 자랐습니다. 어린 나이부터 두각을 들어낸 천재 소년이 일류대학을 일등으로 졸업하고, 사법고시와 행정고시 등을 쉽게 따고, 명망 있는 지도 교수 밑에서 박사학위를 위해 공부 중이었을 겁니다. 그를 아는 동류 사람에게서 온갖 기대와 칭찬을 다 받았습니다.

  그는 축복받은 자신의 처지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과 겸허한 마음을 갖기보다는 남들에게 시기 받을 만큼  우월감에 차 있었습니다.

“나는 유다 사람입니다. 킬리키아의 타르수스에서 태어났지만 이 도성 예루살렘에서 자랐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조상 전래의 엄격한 율법에 따라 교육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모두 그렇듯이 나도 하느님을 열성으로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또 신자들을 죽일 작정으로 이 새로운 길을 박해하여,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포박하고 감옥에 넣었습니다.” (사도 22,3.4.)

  타르수스의 사울은 자신을 유대인들의 하느님을 지키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의 하느님을 배반하는 자들을 없애기 위해 그들을 체포하러 온 지방을 찾아다녔습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짐짓 겸손한 체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매우 비판적입니다.

  “나는 다른 자들보다 유능하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그런 능력을 주셨다.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을 가르쳐야하는 의무가 내게는 있다. 그러니 너희들은 내 말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일의 성취나 도덕적 성숙을 으뜸으로 여깁니다. 하느님께서도 상선벌악을 곧이곧대로 지킬 것이라고 여기며 의로운 행동을 한 자에게만 축복을 내리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자신의 실수와 무지를 고백하기를 어려워합니다. 더군다나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 따위는 수치스럽게 생각합니다. 자신이 하느님과 가까이 있으니 하느님의 뜻을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맡고 있는 지도층에 복종하기를 강요합니다. 사회적 규범에 어긋나는 일을 하는 것이 바로 권위에 도전하는 일이라고 여깁니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울을 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사람이 되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스스로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사울도 낫기 어려운 중병에 걸린 환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울의 거만한 행세를 용서치 않으셨습니다. 자기를 높이려 온힘을 기울이는 그를 향해 더없이 밝은 빛으로 눈멀게 하셨습니다. 자신을 높이려는 그에게 말에서 조차 앉아 있지 못하고 떨어지는 보잘 것 없는 인간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그를 3 년간 아라비아 사막에서 지내도록 하셨습니다. 그 사막은 그가 자기를 높이려 애썼던 교만을 허물어 버리는데 꼭 필요한 장소였습니다. 하루하루 연명하는 것마저도 주님의 도움으로 살아간다는 깨달음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동안 그가 저질렀던 죄, 교만을 없애버리는데 눈머는 것과 땅에 내쳐지는 것, 사막에서의 생활도 부족하였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나는 육신의 병이 계기가 되어 여러분에게 처음으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갈라 4,13)

 “내가 자만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 나를 줄곧 찔러 대 내가 자만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것이 나에게서 떠나게 해 주십사고 주님께 세 번이나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2 고린 12,7-9)


  평생을 두고 그 자만하는 중병을 경계하셨습니다. 주님의 길을 바오로만큼 잘 따른 사도도 없습니다. 이방인들에게 그 만큼 예수의 참 모습을 그려준 사도도 없었습니다. 그 큰일을 하기위해서 그는 언제나 부서져야 했던 것입니다. 그 쐐기 역할을 한 것이 바로 병이며, 가시였습니다. 자신을 높이려는 교만이 솟아오를 때 그 가시는 송곳처럼 찔렀습니다. 터무니없는 모함과 시기를 받았을 때 벗어나는 방법으로서 오히려 겸손을 택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C.M. 마르티니 추기경은 바오로 서간에서 들어난 다마스커스 사건을 살펴보면 metanoia(회심)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은데 주목합니다. 그 사건이 바오로 자신의 윤리적 회심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도하신 사건이라는 것을 강조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우리가 회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주님께서 계획하셨다는 섭리를 보여 준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약함과 성장의 필요성을 인정하도록 만드셨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는 주님께 맡겨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시를 심어 달라고 청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가시로 아파하는 그대여, 그 가시는 주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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