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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 복음묵상]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이기락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11-05 조회수712 추천수12 반대(0) 신고

  2006년 11월 5일 연중 제31주일 나해


오늘 하느님의 말씀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방법과 이유를 가르쳐 줍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유이며, 사람답게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사랑은 하늘 나라에서 하느님과 함께 영원한 삶을 살기 위한 입장권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그리스도인에게 첫째가는 중요한 계명입니다.


 ☆☆☆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르코 12,28ㄱㄷ-34)


"The first is this:
Hear, O Israel!
The Lord our God is Lord alone!
You shall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with all your soul,
with all your mind,
and with all your strength.
The second is this:
You shall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예수님께서는 계명 중에 가장 큰 계명은 마음과 목숨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과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하는 일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


 오늘 예수님께서는 가장 큰 계명은 단순한 감정만의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십니다. 마음뿐만 아니라 정성과 힘을 다하는 사랑이라고 하십니다. 그 사랑은 자기중심적이거나 이기적인 것과도 거리가 멉니다. 목숨까지도 다해야 할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만큼 이웃을 생각하고 배려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웃을 자신만큼 사랑하려면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존중할 줄 모르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존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요즘 성북동 산책길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그동안 익숙했던 풍경들이 모습을 바꾸면서 그 모습에 어디라 눈 둘 곳이 없습니다. 매번 오가는 가을이지만 또 다시 처음인 듯합니다.

서울 성곽의 돌계단을 하나하나 올라가며 오늘 제1독서의 말씀을 묵상합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4) 옛 이스라엘 정통 신앙 전승을 요약하는 말씀이며유다인들이 아침과 저녁 기도 시간에 반드시 기도로 봉헌하던 첫 문장인 신명기의 이 말씀들을 이렇게 한 자 한 자 떠올려봅니다.

그 순간 어디선가 보았던 유다교 회당 모습도 떠오릅니다. 기원전 587년 유다 왕국이 바빌론에게 멸망하기 이전에 북왕국 이스라엘은 이미 아시리아 손에 넘어갔지요. 이스라엘 온 민족이 뿔뿔이 흩어져 세계 곳곳을 유랑하며 살아갈 때 유배지 디아스포라의 회당에서 유다교 랍비가 예배드리러 모인 사람들 앞에서 두루마리를 펼쳐 이 구절을 읽어주었겠지요. "셔마(너는 들어라) 이스라엘 …" 시간이 지날수록 이 모습이 참으로 처연하고 감동적으로 다가옵니다. 오늘 마르코 복음의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어 사두가이들과 논쟁을 벌이고 계십니다. 그 토론을 지켜보던 율법학자 한 사람이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 가는 계명이 무엇입니까?"(마르 12,28) 하고 묻자 그때 예수님은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신명기 말씀의 삼중 표현에 네 번째 요소를 더하여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굳이 율법학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 말씀은 신명기 말씀의 완성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몸소 당신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심으로써(히브 7,27 참조)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모범을 우리에게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보이는 이웃은 아마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겠지요. 그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할 때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구체적인 실체로 드러나며 스스로 입증이 되겠지요. "하지만 이렇게 말처럼 쉬울까?" 이런 생각을 하다 문득 바라보니 저 멀리 남산 서울 타워가 보입니다. 조금씩 저물어가는 늦가을의 하늘 속에 서울 타워의 조명이 아득하게 빛을 발합니다. 무심히 바라본 타워는 낯설고 또 낯설어서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익숙해져 있던 시각에서 벗어날 때 문득 본래의 모습이 보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의미에서 예수님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해 사랑하라"는 신명기의 말씀을 인용하시지요. 생각해보면 이렇게 하느님을 사랑한 적이 있었나 싶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지극함과 진실함으로 어느 대상을 간절하게 생각하고 '사랑'의 정의에 맞는 그 무엇으로 상대를 생각해본 적이 있었는지… 그 상대가 더더욱 하느님이라니! 저분께는 참으로 죄송하지만 아주 오래전 까마득한 일 같습니다.

이 생각에 묶여 걸음이 더는 옮겨지질 않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아주 진지하고 다정하게 또 조용히 나를 바라보시는 것 같습니다. 복음서에서 늘 그러셨던 것처럼.

아마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한 그런 완전한 사랑은 불완전한 우리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때 하느님께서 우리의 부족함과 모자람을 채워주시면서 그분께서 친히 완성시켜 주실 것 같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들은 사랑의 의무를 강요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세파에 시달려 저만치 밀쳐놓았던 어쩌면 밀쳐놓았는지도 몰랐던 예전의 순수한 사랑을 다시 기억하라고 주님께서 건네시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조용히 그러나 힘 있게 우리를 근원으로 부르시는 말씀.

17세기 성인 빈첸시오 드 폴 사제는 충고합니다: "사랑은 모든 규칙에 우선하며 만사는 무엇보다 사랑으로 행해져야 합니다."
20세기 성녀 소화 데레사는 고백합니다: "어머니이신 교회의 마음속에서 저는 '사랑'이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되겠습니다. 제 성소는 '사랑'입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단편에서 19-20세기 문호 톨스토이는 '사랑'으로 살아간다고 서슴없이 말합니다.

깊어가는 가을 저녁 이런 상념에 잠긴 채 600년 도성 성북동 성벽 길을 내려옵니다.

서울대교구 이기락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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