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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의 입김 그리고 영혼
작성자이종삼 쪽지 캡슐 작성일2006-11-09 조회수676 추천수3 반대(0) 신고
 

하느님의 입김 그리고 영혼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모습대로 흙을 빚어 만드시고

코에 입김을 불어넣어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인간의 육체는 이렇듯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갑니다.

하느님의 입김은 하느님께로 돌아갈 것입니다.


하느님의 입김은 하느님의 숨결이라고도 합니다.

하느님의 입김은 저에게 오셔서 영혼이란 것을 만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순수한 영혼은 세상의 삶을 통하여 성숙해집니다.


영혼은 끊임없는 하느님의 입김으로써 살아가며

입김(숨결)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그 숨결을 거두시면 우리는 숨을 거두게 되지요.


본질이 순수한 영혼은 세상의 삶을 통하여

하느님을 깨닫고 하느님의 의로운 자가 되기도 하고, 

유혹에 넘어가 타락한 영혼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본질이신 하느님을 알지고, 듣지도, 깨닫지도 못한 체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영혼들이 생기지 않도록 선교해야할 사명도 우리에게 있습니다.


순수한 영혼이 의로운 자가 되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우리의 영혼은 세례를 통하여 성령을 받아들이고,

성령께서는 우리를 본질이신 하느님께로 이끄시고,

하느님의 뜻을 깨우쳐주시고, 무수한 은총으로 능력을 주십니다.


그러나 세례를 받은 하느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모두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영혼이 성령의 터전이 될 때, 우리의 영혼에서 활발히 활동하실 때,

성령과 영혼이 일치를 이룰 때 우리는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열매를 맺고

우리는 겨자나무가 되고 누룩이 되어 부풀어 오를 것입니다.

이렇듯 성령하느님께서 우리의 영혼 속에서 영혼의 전부가 될 때

진정한 하느님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의로운 사람은 의로운 사람을 알아봅니다.

그것은 한 분이신 성령하느님께서

서로에게 각기 다른 모양으로 활발히 활동하시어 성령을 통하여 알 수 있지요.

즉, 성령께서 서로에게 다른 모양으로 함께 작용하므로 기뻐 춤을 추시는 것이죠.

프란치스코 성인과 도미니꼬 성인은 한번도 본적이 없음에도

첫 만남에서 의로운 분, 하느님의 도구임을 알아보았습니다.

우리가 진정 하느님의 자녀라면 의로운 자가 되기 위하여 노력해야합니다.


하느님께서 숨결을 우리에게서 거두실 때 우리의 영혼은 부활하여

불사불멸의 옷을 입고 완전한 사랑이신 하느님의 품으로

영원하고 완전한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타락한 영혼은 영원한 벌을 통하여 단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쉽게 성령과 일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영혼이 쉽게 일치할 수 없는 이유는

세례성사를 통하여 원죄의 굴레에서 벗어났다하더라도

원죄를 통해서 세상은 죄와 고통 속에서 시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한 죄의 유혹은 존재하며, 고통 또한 있습니다.

오염된 우물을 모르고 마을 사람이 마셨다면

착한사람에게는 단물이 되고, 못된 사람에게는 독약이 될 수는 없겠죠.

죄로 오염된 세상으로 인하여 고통이 왔는데 피할 수는 없겠죠.


고통이 우리에게 어떤 모양으로 오더라도 피할 수 없다면

이겨내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고통”

고통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도 무지무지 싫습니다.

악인들은 자신의 이기주의로 세상을 죄로 오염시킵니다.

이로인해 선량한 사람은 고통을 받습니다.

욕심은 가난한 사람을 더 절망으로 몰고 있고,

병들게 하고 죄짓게 하며 죽음으로 내몰기도 합니다.

이렇듯 빈곤과 질병의 고통, 그리고 죽음

이러한 사람에게 공평이 무엇이며, 정의는 무엇입니까?

만일 이것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빈곤과 질병의 고통, 죽음, 그리고 지옥만이 존재할 것입니다.

욕심 많은 부자는 어떤 예언자가 오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부와 기득권에 안주하여 죽는 그 날까지 그렇게 살 것입니다.

가난과 질병의 고통은 부족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깨닫고

영혼의 본질이신 하느님께 온전히 자신을 맡기죠.

이때 우리의 영혼은 성령과 일치를 이루게 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 영혼은 나자로와 같이 하느님의 영원한 행복으로 가게 되지요. 



주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죄악과 고통을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이겼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영혼과 일치한다면

우리의 고통은 이미 주님께서 이기셨으므로

우리에게는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이제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만 남아있겠죠.

그 고통을 의롭게 참아 이겨내고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함으로써

죄로 오염된 세상을 정화시켜 바른 세상으로 만드는 일에 동참한다면

이것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고,

우리가 존재하는 하느님의 뜻이 아닐까요?


과일나무가 자신의 결실인 과일을 다른 피조물에게 내어 놓을 때

그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느끼고 기뻐하며,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자신을 만들어주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고,

하느님께서는 더욱더 풍성한 은총으로 열매를 맺게 해주시는 사랑의 열매.

다른 피조물 또한 열매를 준 나무를 사랑하며

나무를 만들어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사랑의 전이.

이것이 주님이 우리를 만든 뜻이고 순리라면

우리도 나눔의 삶을 살아야 존재가치가 있지 않을까?


우선 나를 통해서 죄 짓는 사람과 고통 받는 사람이 없어야합니다.

그리고 나의 고통을 주님 십자가의 고통을 생각하며 이겨내야 하고,

다른 사람의 고통을 분담할 수 있어야 진정한 하느님의 자녀일 것입니다.


“나” 만이 의로운 자 되기 위하여 산으로 간다면

가정은 파산될 것이고, 고통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뜻에 역행하는 일일 것입니다.

우선, 주님께서 주신 가정을 성가정으로 본인의 역할을 다할 때

세상도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고통을 없애야합니다.


주님의 완성된 계명은 한 분이신 하느님을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공경하라는 것과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의 계명은 결코 다른 것이 아닙니다.

고통 받는 사람 역시 하느님의 입김(숨결)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분을 통해서

주님이 시름하고 있는 소리를 들어야합니다.

그러면 어찌 주님의 고통에 대하여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공동체의 모든 사람이(일부라도) 이러한 마음과 행동이 자리한다면

우리공동체는 공동의 행복을 위하여 나아갈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 하느님을 사랑하고 공경하는 참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형제님, 자매님 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소중한 단어입니다.

만일 지금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서 하느님을 중심으로 친교를 이룬다면

형제님, 자매님 간의 친교는 온전히 사랑으로 뭉쳐 있지 않겠습니까?

내 것이 무엇이며 너의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러한 사랑의 친교가 고통 받는 세상에서 이루어지고

우리의 공동체가 사랑의 친교로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다면

이것이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고

기도하는 주님의 기도의 참의미가 아닐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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