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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43 > 오까 신부님 l 강길웅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11-10 조회수915 추천수8 반대(0) 신고

                

 

 

                              오까 신부님


                               

   신학생 때 멕시코 신부님이 성서학 교수로 오셨는데 우리말이 대단히 서투르셨다. 담당교수를 구하지 못해 사람을 물색하던 중 마침 서울 명도원에서 우리말 공부를 두 달째 하고 계신 분을 모셔 왔기 때문에 우리말이 서툴러 그분이나 우리나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벙어리 냉가슴 앓듯 답답할 때가 참으로 많았다.


   그분이 강의 도중 자주 쓰시는 말에는‘기가 막혀서....’ 라는 우리말과 ‘오까’라는 멕시코 말이 있었는데 ‘오까’란 영어로 치면 ‘오케이’라는 뜻으로 우리가 그분 말씀을 못 알아듣는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의 이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강의 시간이면 수십 번씩 “오까?”를 연발하셨다. 그래서 신부님의 별명이 ‘오까 신부님’이었다.


   비록 우리말은 서투르셨지만 학생들에 대한 그분의 사랑은 아주 남다르셨다. 당신 방에는 항상 사탕과 담배와 껌을 준비하셔서 신학생들이 무단으로 출입할 수 있게 하셨는데 이것은 교수신부님으로서는 아주 파격적인 일이었다. 그래서 많은 신학생들이 그분에게 고해성사와 영적인 지도를 받기 위해 몰려들곤 했었다.


   신부님은 당신 과목에 대한 평가를 항상 구두시험으로 하셨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해도 개념에 대한 근본적인 공부가 서툴렀던 우리는 시험 때마다 낭패를 자주 당하곤 했다. 어느 땐 질문의 요지를 전연 파악하지를 못해서 재시험을 치르는 일이 많았고 1차 시험으로 어물어물 넘어갈라치면 또 학점이 신통치 않았다.


   언젠가 구두시험을 칠 때의 일이었다. 신부님이 사탕부터 주시면서 대뜸 “모세가 뭐냐?” 하고 물으셨다. 순간 나는 당황했고 질문의 요지가 잡히지를 않아 모세의 출생 배경부터 장황하게 설명하자 신부님은 계속 웃으시며 그게 아니라고 하시고 저렇게 얘기해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중엔 얼마나 답답한지 시험을 보다가 화가 나서 그냥 뛰쳐나와 버렸다. 이건 사실 신학교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시험장에서 일종의 퇴장인데 이건 말할 것도 없는 ‘똘레’(퇴학)감 이었다. 그런데 신부님은 다른 신학생을 내게 보내서 재시험에 응하도록 설득하셨고 나는 신부님의 사랑에 감복하여 다시 그분 앞에 앉게 되었다.


   그러나 같은 질문에 대해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으니까 신부님이 직접 여러 가지 힌트를 내게 주셨다. 그래도 내가 못 알아듣자 종이 쪽지에 ‘중개’라는 말을 Tm시고는 나에게 살짝 보여 주셨다. 그때 비로소 내가 감을 잡아서 “중개자!” 하고 답을 하자 신부님이 “오까!,오까!”하시며 기뻐하셨다. 그리고 학점은 ‘비 플러스’였다.


   신부님은 욕심이 없으셨고 또 모든 이에게 너그러우셨다. 그후 소록도에 3년 동안 계실 때는 만나는 사람마다 사탕을 나눠 주심으로 아예 ‘사탕 신부’로 유명했으며, 미사가 끝날 때마다 신자들에게 “한 신부, 집에 간다!”라고 하셔서 사람들을 곧잘 웃기셨다. 피아노도 잘 치셨고 운동도 잘하셨으며 또 몸이 불편한 와중에도 술을 좋아 하셨다.


   소록도를 떠나신 후에는 순천에서 과달루페회(멕시코 선교회)지부장 일을 보셨으며 간에 오랫동안 이상이 있던 것이 암으로 악화되어 수원 성빈센트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정말로 놀라운 충격이었다. 진작 찾아뵙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되어 버렸다.


   언젠가 신부님 축일에 소록도를 방문했을 때 낙화암이라는 서쪽 끝 벼랑으로 나를 끌고 가시더니 마침 해가 떨어지는 낙조를 바라 보시면서 당신을 위해서 소주를 딱 한 잔만 하자고 나를 꼬시던 일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그리고 내가 바로 그 소록도의 다음, 그다음 주임신부가 되었으니 감회가 그저 클 뿐이다.


- 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 중에서/강길웅 요한 신부 (소록도 본당 주임)

 

 Merchi Cherie / Frank Pourc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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