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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 복음묵상] 소유와 위탁의 관계 / 박상대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11-11 조회수836 추천수4 반대(0) 신고

 2006년 11월 11일 토요일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


마르티노 주교는 317년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근교 사바리아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생활하였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세례를 받은 그는 성 힐라리오 주교에게서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성인은 선교에 전념하다가 이단들의 미움을 사 추방되기도 하였습니다. 360년 추방 생활에서 돌아온 그는 힐라리오 주교에게서 토지를 얻어 리지외에 수도원을 세웠습니다. 투르의 주교로 재임하다가 80세의 나이로 선종한 그는 프랑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습니다.



 ☆☆☆


세속의 재물로라도 친구를 사귀어라.

그러면 재물이 없어질 때에 너희는 영접을 받으며

영원한 집으로 들어갈 것이다.(루가 16,9)

 

 I tell you, make friends for yourselves

with dishonest wealth,
so that when it fails,

you will be welcomed into eternal dwellings.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재물’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촉구하십니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


어느 때보다 재물의 힘이 강한 시대입니다. 모두가 돈을 벌고자 안간힘을 씁니다. 우리 가운데에서도 하느님보다 돈을 더 선호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하느님 없이는 상관없어도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돈 없이도 하느님을 믿고 일을 추진하는 사람들을 ‘맹신자’로 취급하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라면 우리 가운데 맹신자가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힘이 돈보다 강하다는 것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유와 위탁의 관계


  오늘 복음에는 이해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말씀들이 서로 모여있다. 전체적인 이해를 돕는데는 우선 어제 복음이었던 "부정직한 청지기의 비유"를 떠올려야 한다. 그 비유가 오늘 복음과 바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청지기의 편법적인 부정직함을 알면서도, 그러나 약삭빠르게 일을 처리하는 슬기로움을 칭찬한 부자주인의 입장을 은근히 동조하시면서, "세속의 자녀들이 자기네들끼리 거래하는 데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약다"(8절)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입장에서 청지기가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실직의 위기에 직면한 상태에서 신속하게 자신의 미래를 위한 대책을 마련했다는 점에 있다. 청지기의 부정직함은 접어두고라도, 그의 행동은 곧 심판의 위기에 직면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즉각적인 회개촉구의 모범이 될만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는 청지기의 부정직함이다. 이 부정직함이 오늘 복음의 세속과 재물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의 말씀에 비웃음을 보인 이유를 먼저 보자. 그들이 예수를 비웃은 이유는 예수께서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 ...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13절)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 말씀에 비웃음을 보였다면,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사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재물을 통한 자신들의 넉넉한 생활을 그들의 정직함에 대한 하느님의 보상이라고 믿었다. 그들이 야훼 하느님의 전통을 보호하고 전수하며, 율법을 글자 그대로 착실하게 지키는 대가로 재물을 보상받았다고 믿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재물과 하느님을 일치적 관점에서 보고 있으며, 보상으로 받은 재물의 소유권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속적 재물과 하느님을 철저하게 따로 떼어 생각하고 계신다. 예수님의 생각에 의하면 재물과 하느님은 각각 서로 다른 주인이다. 이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한 편을 미워하고 다른 편을 사랑하거나 또는 한 편을 존중하고 다른 편을 업신여기게 마련이다."(13절) 거듭 말하지만 재물은 세속적이며, 부정직함과 온갖 탐욕을 반영하고 있다. 돈이 있는 곳에 부정부패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세속의 재물과 하느님에 대한 문제에서 어떤 답을 얻을 수 있는가?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재물과 하느님에 대한 일치적 관점의 태도는 일단 답에서 제외된다. 그것은 그들의 태도가 하느님께 가증스럽게 보이기 때문이다.(15절) 또,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보상으로 주어진 세속적 재물의 주인을 자기자신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답은 소유(所有)와 위탁(委託)의 철저한 구분에 있다. 세속의 재물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느님에 의해 위탁된 것으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이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주어진 재물은 하느님에 의해 맡겨진 종속적인 관계를 유발시키는 것이다.

 

  세상의 주인은 하느님뿐이시다. 하느님 외에 어떤 무엇도 인간의 주인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세속의 재물 또한 하느님의 것으로서 인간은 자신의 삶 속에서 이를 잘 관리하도록 불림을 받은 셈이다. 사람은 적게 맡았던 많이 맡았던 맡은 것에 대한 자신의 소명(召命)과 책임을 잘 완수해야 한다. 여기에는 늘 "지극히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은 큰 일에도 충실하며, 지극히 작은 일에 부정직한 사람은 큰 일에도 부정직할 것이다"(10절)는 원칙이 적용된다. 맡은 것이 많을수록 비리와 부정부패가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기 때문에 이를 항상 조심하여야 한다. 아울러 이 땅에 기아(饑餓)에 허덕이고, 재물 때문에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지며, 인권(人權)을 팔아야 하는 일이 있는 한, 우리는 각자의 소명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마음 깊이 깨닫고 뉘우쳐야 할 것이다.

-박상대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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