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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여, 오늘의 나의 길에서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6-11-13 조회수731 추천수6 반대(0) 신고

 

 

<주여, 오늘의 나의 길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그러한 일을 저지르는 자!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것보다,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낫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라.”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그가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 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루카 17,1-6)


  요즘은 초등학교에서 운동회를 자주 여는 편입니다. 저도 제 아이들 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운동회를 연다면 즐겁게 참석한 적이 몇 번 있습니다. 그때 점심을 먹고 난 뒤에 꼭 빼놓지 않고 하는 행사가 있습니다. 홍군 백군이 마지막 줄다리기를 합니다. 지금까지 팽팽했던 홍군 백군 진영의 점수가 마지막 판가름 나는 중요한 시합이라면서 사회자는 잔뜩 바람을 잡습니다. 그러니 힘센 아빠들이 꼭 나오셔서 참석해야 된다고 너스레를 떱니다. 그러면 저도 한번 힘 좀 써 봐하는 마음으로 나서게 됩니다. 온 식구가 나서게 되지요.


  그런데 막상 줄다리기를 하다보면 이상한 현상이 나타난다고 심리학자들이 말합니다. 개개인이 줄을 당길 때보다 여럿이서 당길 때 각각 한 사람이 내는 힘이 더 약해진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다수가 동시에 내는 힘은 개개인이 내는 힘을 모두 합한 것보다 적어진다고 합니다. 심한 경우는 그 힘이 낼 수 있는 힘의 반이하로 떨어지기도 한답니다. 나 한사람쯤이야 하는 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랍니다. 익명성이 가져다주는 피해라고 합니다.  이런 것을 ‘링게르만 효과’라고 부른답니다. 그리고 “사회적 일탈현상”을 설명하는데 적용됩니다.


  한 공동체가 목표를 정하고 나가는데 꼭 이런 사람들이 생겨서 이웃을 맥 빠지게 만듭니다. 우리 교회에도 이런 현상들이 생겨납니다. 그 결과 서로 반목하게 되고 편 가르기, 책임 떠넘기기 같은 좋지 않은 결과가 일어나게 됩니다. 자기는 큰 죄를 지었는지도 모르는 새 알게 모르게 분란을 일으키게 만든 장본인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일수록 더 군말을 많이 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이런 결점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개인 실천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책임감을 부여하는 것이겠죠. 또 일에 들어가기 전에 개개인에게 기대하고 있다는 칭찬과 응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답니다.


  그리고 지도자는 반드시 만장일치를 유도하지 말고 반대의견이 나와서 충분히 토의를 거친 뒤에 일을 추진해야 뒤에서 군말하거나 뒤로 빼는 일이 없어진다고 합니다. 각종 사목회의나 모임에서 장으로 일하시는 분들은 이점을 잘 알아야하겠습니다. 회의석상에서 반대의견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분위기를 평소에부터 잡아놔야 하겠습니다.


  또 공동체 생활을 하다보면 불평불만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어디서나 있게 마련이고, 내 스스로 불평불만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 때 용서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묻어 둔다고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때 적절한 해결 방법을 모색하지 않으면 그 공동체는 안으로 곪게 마련입니다. 누가 용서해주고 용서 받는 것이 아니라 서로 문제를 없애려는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심리학자 케빈 케네디는 이렇게 말합니다. 절대 화 내지 말라고 합니다. 그것은 초점을 흐리는 원인이 될 뿐이랍니다. 먼저 불만이 되는 점만 간략하게 그러나 얼버무리지 말고 분명히 이야기해야 된답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무슨 잘못을 했다는 식의 표현은 하지 말아야 한답니다. 다 그런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양해한다는 의사를 전달해야 한답니다. 그리고 미리 해결 방법을 생각해 놓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상대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 대신 절대 무리한 요구는 하지 말고 최소한의 요구만을 청하는 모습을 보여 나도 이만큼 양보했다는 의사 표시를 해주어야 한답니다.


  물론 신앙이 개인적인 구원을 목표로 하는 것이긴 하지만 우리는 교회에 속해 있습니다. 교회는 공동체로 현세에서 순례하는 나그네입니다. 여러 가지 곤경과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야합니다. 개인들 못지않게 교회 전체가 하느님의 백성으로 구원을 받아야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겨자씨 같은 믿음입니다. 공동체가 하나이라는 사실을 입으로는 잘 알고 있지만 막상 그런 사실을 곧잘 잊곤 합니다. 아주 비근한 예로 기껏 미사를 거룩하게 참례하고 나서 주차 문제로 얼굴 붉히며 언성을 높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누구누구와 성격이 맞지 않아 못해먹겠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닙니다. 나는 이러저러하게 기도와 봉사 열심히 하는데 신부님이 무시한다고 섭섭해 합니다.

  이런 행동이 바로 겨자씨만한 믿음도 없는 행동입니다. 자기만 구원 받으려 노력한들 주님께서 즐겨 받을 리가 없습니다. 저 돌 무화과나무더러 바다에 심겨라 하고 말하는 것은 바로 교회가 이 보잘것없는 사회에서 뿌리를 든든히 내리는 것을 두고 말한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개인의 기적을 바랄 것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가 전 인류를 구원하는 기적을 바라야 할 것입니다.


   

            주여, 오늘의 나의 길에서

                                  - 최 민순


      주여,

      오늘의 나의 길에서

      험한 산이 옮겨지기를

      기도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에게 고갯길을 올라가도록 힘을 주소서.


      내가 가는 길에 부딪히는

      돌이 저절로 굴러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 넘어지게 하는 돌을

      오히려 발판으로

      만들어 가게 하소서.


      넓은 길, 편편한 길

      그런 길을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좁고 험한 길이라도

      주와 함께 가도록

      더욱 깊은 믿음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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