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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58) 신부님은 울었다 / 박보영 수녀님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6-11-14 조회수972 추천수11 반대(0) 신고

 

 

                                    <신부님은 울었다>

 

 

                                               글쓴이 :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 박보영 수녀님

 

 

 

어둑신한 죽음의 기운이 스민 남루한 방에서 종부성사의 경문을 읊던 목소리가 일순 그치고 허공에 펼쳐진 두 손이 가늘게 떨리는가 싶더니 후드둑 굵은 눈물이 그 무릎 위로 떨어졌다.

하느님 앞에서 죽음을 정돈하는 기도문 어디께에선가 깊은 슬픔과 조우한 신부님은 거기서 멈추었다.

 

침묵이 흐르던 그 5분여 시간은 길었다.

종부성사를 받는 할아버지의 쇠약한 숨소리만 미미하게 이어졌다.

 

시골본당은 종부성사와 장례미사가 많다.

하늘가는 길,

혼자 가면 심심하다고 오늘 한 분,

그 다음 날 한 분,

그렇게 연이어 상가의 등이 밝혀지곤 했다.

 

익숙한 애도의 말과 손길로,

익숙한 순서로 그렇게 장례미사를,

연도를,

종부성사를 다녔다.

 

그것은 무성의하다거나,

습관적이라거나 그런 의미가 아니다.

평화롭고 영적인 잔잔함이 배인,

거룩하고도 온당한 순례의 길을 다녀오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시골마을에는 유독 연도꾼들의 구성진 노랫가락이 마음을 서늘하게 쓸어주곤 했다.

따라하기 수월찮은 연도가락의 흐름을 타고 무연히 몸을 맡기노라면 바로 내가, 저 오동나무관 안에 누워 이승도 저승도 떠난 자유의 이름으로 흥얼흥얼 그 노래를 듣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열 일을 제치고 연도 때마다 얼굴을 보이시는 어르신들은 이미 하루 목숨에 얽매인 집착의 냄새라곤 없었다.

내가 어쩌다 어느 피정시간에 한순간 맛보던 활연한 기쁨의 면면들은 삶도 죽음도 다 벗은 듯한 그 어르신들의 헐렁한 바지춤에 이미 속속들이 밴 것 같았다.

 

그런데도.....

젊은 보좌신부님이 혼자 울음을 쏟던 그 장면은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사제수품을 받기 몇 해 전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마음 북받치는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신부님의 대답은 달랐다.

죽음이 바로 임박한, 일점 기력도 남지 않은 그 가냘픈 목소리로 하느님을 모른다고 말하는 영혼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다고 했다.

 

설명할 수 없었단다.

 

하느님은 당신을 사랑하신다고,

하느님을 믿고 용서를 청하면 천국에 든다고,

당신의 생은 여기가 끝이 아니라 다음 세상에 하느님이 기다리신다고.....

 

동공에 마지막 힘마저 풀린 쇠약한 노인의 귀에 신부님은 오랫동안 얼굴을 대고 고해성사를 주셨다.

강요할 수 없었다.

마지막 꺼져가는 심지를 붙들고 애달프게 사죄경을 하고 하느님께 간구했다.

그리고 일순, 하느님의 심경을 알것만 같아 가슴이 먹먹했단다.

 

죽음이 있어 우리는 삶에서 거룩함을 찾는다.

장례 많은 시골본당에서,

나락의 생육을 지켜보며 생명에 또 다른 눈을 떴고,

수없는 죽음을 갈무리하고 떠나보내며 내 안에 참으로 깊고 넉넉한 생(生)의 우물이 생긴 것이다.

 

                             ㅡ출처 : 가톨릭 다이제스트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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