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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44 > 얻어맞은 얘기 l 강길웅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11-15 조회수1,013 추천수9 반대(0) 신고
                            

                    

                         얻어맞은 얘기


   지금도 그런 기질이 다분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상당한 개구쟁이였다. 고집도 세고 장난도 심한 요란한 아이였는데 그러나 집에서만은 그렇지 않았다. 호랑이 같은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에 뭔 일을 “하라!” 하시면 해야 했고 또 “하지마라!” 하시면 하지 말아야 했다. 그래서 집안의 잔일은 주로 내게 맡겨졌었다.


   어느 땐 나만 집중적으로 부려먹는(?) 어머니가 정말 싫었다. 왜 형이나 동생은 안 시키고 나만 시키느냐고 물으면, 어린것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안하고 싸가지 없이 말대답한다고 오히려 나만 혼내곤 하셨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며 저 분이 정말 나를 낳아 주셨는지 의심도 했다.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수업이 끝나고 학교에서 놀다가 늦게 집에 갔더니 화가 나신 어머니께서, 이놈의 자식이 때도 모르고 돌아다닌다면서 사정없이 후려치시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지만 그러나 사람들이 볼까봐  너무 창피해서 얼른 대문부터 잠그고는 때릴 수 있는 데 까지 때리시라고 가만히 서 있었더니 한 스무 대쯤 해서 어머니는 그만 지치셨다.


   그때 나는 맞으면서 구차하게(?) 잘못했다느니 또는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느니 하는 용서는 빌지 않았다. 나는 사실 맞는 것은 아프지 않았기에 다리에 피멍이 들어도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였다. 어머니께서 당신이 방금 때리신 내 다리를 붙들고는 아프지 않느냐고 울상을 지으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후로 어머니는 나에게 매를 드신 적이 없었다.


   얻어맞은 얘기를 하자면 군대 얘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그때 논산 훈련소를 졸업하고 의정부에 있는 101보충대를 거쳐 부대배치를 받은 곳이 포천 낭유리에 있는 병기중대였다. 그날이 마침 토요일이었는데 오후가 되자 중대장이 전 사병에게 갑자기 외출 금지령을 내리는 것이었다. 물론 일요일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일요일 외출이 안 되니 나한테는 갑자기 큰 일이 생겼다. 부대에 성당이 없어서 주일미사에 참석하려면 일동이라는 면 소재지에 나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요일 아침에 겁 없이 중대장을 찾아가서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성당에 다녀오라고 쾌히 승낙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만 외출증을 끊어서 성당에 다녀왔는데 그 날 저녁이었다.


   부처 선임하사가 나를 부르더니, 너는 언제부터 중대장과 상대했느냐고 ‘엎드려뻗쳐’를 시킨 뒤에 곡괭이 자루로 한 삼십대를 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기합자체를 순교(?)로 간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맞으면서도 아픈 줄을 몰랐으며 오히려 묘한 감동(?)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건 이후로 선임하사는 왠지 나를 때리지 못했다.


   나는 누가 때린다고 내 뜻을 굽히거나 또는 겁을 준다고 해서 쉽게 타협하지 않는다. 하느님 앞에 걸릴 것이 없으면 누구도 나를 꺾을 수 없는 기질이 내게는 있는데, 그게 내가 가진 단점이라면 큰 단점이요 또 장점이라면 큰 장점이었다. 말이 어폐가 있겠지만, 가끔 억울하게 맞는 것은 결코 불행도 아니요 수치도 아니다. 찾아보면 깊은 뜻이 잇다.


   각설하고, 나는 본래 신자들의 믿음과 척도를 교무금으로 가늠하곤 했었다. 꼭 올바른 판단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봉헌에는 그 사람의 믿음이 솔직하게 담겨 있었다. 그래서 연말 면접 때만 되면 신자들에게 수입을 묻고 십일조를 권하는데 이때는 또 신자들한테 말로써 얻어맞는 일이 자주 있게 된다. 신부가 돈만 안다는 것이요 또 그런 신부는 처음 본다는 것이다.


   어떤 땐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까지 시끄러운 적도 있었다. 한 형제가 나를 욕하는데 도가 좀 지나쳤었다. 그 때 사람들이 내 체면과 품위를 염려했지만 그러나 나는 조금도 그 사건에 대해 걱정을 하지 않았고 또 마음이 상할 이유도 없었다. 그것은 사제로서 내 소신이요 또 신앙인으로서 확고한 믿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얼마 후였다. 성당은 다시 조용해졌으며 갈등이 있었던 것만큼 신자들의 신앙은 많이 성장하게 되었다. 그런데 갖은 비방으로써 나를 쳤던 그 사람만은 성당에 나오질 못했다. 불미스런 그의 사생활이 바로 그 자신을 덮쳤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그래서 함부로 때릴(?)일도 아니다. 때리고 보면 결국은 매가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그나저나, 천주교 신자들은 왜 십일조를 안 하는가?


- 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 중에서/강길웅 요한 신부 (소록도 본당 주임)

 

                         

                                                         
        
                    

                                                

                                 

                                       Avec mon oie sauvage d'amour ensem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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