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260) 음미하면서 천천히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6-11-16 조회수642 추천수5 반대(0) 신고

 

 

 

지난 일요일 둘째 형님댁에 혼사가 있어 시내에 나갔다.

멀리 충청도에서 올라온 큰형님, 셋째형님, 조카네 식구들이 기차시간에 맞춰 떠난 후에 남편과 함께 전철역으로 가는 길이었다.

 

길가의 가게 앞에 다기(茶器)들이 진열되어 있고 책자와 선전문귀에 차 주전자까지 있어 들여다보니 중국차를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가게에서 주인이 쫓아 나와 한 잔 시음해보라고 하더니 가게로 들어와서 돌아보라 하길래 따라 들어갔다.

 

사실은 그 차가 전에 들어본 이름이었고 한 번 마셔본 일도 있었다.

전에 어느 신부님의 사무실에 갔을 때, 중국차라고 직접 끓여 주신 그 차를 마셔본 적이 있었다. 중국의 유명한 차라고  했지만 여느 차와 특별히 다른 점은 느끼지 못했었다.

남편 역시 산사에 갔다가 스님으로부터 아주 귀하고 좋은 차이니 많이 마시라고 해서 그 차를 여러 잔 마셔본 일이 있었다고 한다.

 

넓은 가게 안은 수많은 다기가 진열되어 있었다.

주인은 조그만 다기에 데팔주전자에서 끓는 물을 붓고 우려낸 찻물을 찻종지에 계속 따라주며 그 차의 탁월한 효능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선생님같은 분이 마시면 이뇨작용이 뛰어나 내일 아침 일어나면 얼굴에 부기가 쏙 빠진다고 해서 졸지에 내가 선생님이 되었다.  남편보고는 지금 어깨가 아주 많이 뭉쳐있는데 이 차를 마시면 뭉친게 풀어지고 유연해지며 혈액순환이 잘 되고 속도 아주 편해진다고 한다.

 

어깨가 뭉쳐있는 걸 어떻게 만져보지도 않고 아냐고 하니까 그냥 보면 안다고 한다.

쿡 웃음이 나왔다.

의사가 하던 말들이 생각나서였다.

 

아이가 어렸을 적에 다리가 아프다고 해서 정형외과에 갔는데, 사진을 찍어봐야 알지 어떻게 겉만 보고 아느냐고 하던 말,

한의원 할아버지가 아랫배가 아주 나쁜 상태라고 해서 겁이 나 병원에 가서 얘기했더니 검사도 안해보고 어떻게 아느냐고 화를 내던 산부인과 의사의 얼굴이 생각나서였다.

 

양의사는 철저하게 검사결과에만 따라 콕 집어 진단한다면, 한의사는 맥짚어보고 속에 어혈이 있다느니, 차다느니, 체기가 있다느니 하는 식으로 두리뭉실하게 병을 진단한다.

그런데 양의도 한의도 아닌 가게주인은 사람 얼굴만 보고도 신장이 나쁜지 방광이 나쁜지 어깨가 뭉쳐있는지 어찌 그리도 잘 아는지 참 용하기도 하다.

 

가끔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해서 말문이 막히면  얼렁뚱땅 말머리를 돌려 정말 좋은 차라고, 가짜가 하도 많아 그렇지 진짜 OO차만 마실 수 있다면 건강이 좋아진다는 게 문헌으로 증명되고 있다면서 마치 그 차만 장기적으로 마시면 모든 병이 없어진다는 투였다.

 

그리곤 쉴새없이 찻잔에 차를 부어주었다.

실컷 드시고 그 느낌을 실감하라고, 그 자리에서 증명해보이려고 그런다고, 마셔봐야 좋은 걸 느끼지 아무리 말로만 해선 안된다고 하면서....

속이 아주 편해집니다. 아주 편해집니다......

마치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되뇌인다.

실내엔 중국음악인지 은은한 선율이 흘러  최면에 걸린듯한 분위기였다.

 

실은 난 위장이 안좋아서 가끔 얼굴이 붓는 것이지 콩팥은 별 이상이 없는 것 같은데 마치 콩팥과 방광이 나쁜 것처럼 몰고 간다.

오히려 비뇨기과 약을 복용하고 있는 건 남편인데  웬 어깨뭉침? 잘못 짚어도 한참 잘 못 짚었다.

 

사실 신부님이 그 차를 어디선가 마셔보고 너무 좋아 살 기회가 있었는데, 어째 그전에 마셨던 OO차와 맛이 다르다고, 가짜인가 하시던 말이 생각나서 진짜 OO차라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 주인이 따라주는 대로 마셔보았다.

그윽한 향은 느껴졌다.

그렇지만 엽차도 끓이면 구수한 향내가 나지 않는가.

 

책자에 실린 다기 한 세트가 얼마나 하냐고 물으니 천만원이라고 한다.

에구머니나!

기암을 하고 좀 싼 건 얼마나 하냐니까 천만원부터 그 이상의 값이라고 한다.

제기랄!

찻잔 세트가 무슨 고려청자인가!

이조백자인가!

무슨 명품 골동품이라고 참 오지게도 비싸다.

 

낱개로 파는 뚜껑달린 아주 작은 그릇은 한개에 15만원 짜리도 있고 5만원짜리도 있었다

무슨  다(茶) 애호가라고 집에 고급은 아니지만 다기세트도 두어개 있는데 신경 끄고, 따라주는 차만 붕어처럼 홀짝홀짝 마셔댔다.

주인은 쉴새없이 차를 따라 주었다.

 

인간은 물 하나만 잘 마셔도 건강해진다고, 맑은 물 오염되지 않은 물만 마시면 그런데 요즘 그런 물이 어디 있냐고 그래서 이런 차가 필요한 거라고 하면서 하루에 이 차를 2리터정도씩 마시면 분명 몸이 좋아질거라고 아마 좀 있으면 화장실에서 쉴새없이 부를거라고, 노폐물은 모조리 배출되고 피가 맑아질거라고.....

 

그런데 아닌게 아니라 좀 지나니까 화장실이 불러 두 세번을 갔다.

하지만 나중 생각해보니 추운 날씨에 그렇게 물을 마셔댔으니 그런 것이지, 그 차가 특별하게 이뇨작용이 뛰어나서는 아닌 것 같았다.

 

OO차는 발효시킨지가 7년 이상된 차에서부터 30년된 차도 있다고 하며 오래된 것일수록 값이 비싸다고 했다.

정말 그렇다면 그 차는 정말 대대손손 대내려가며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발효시키며 판매한다면  어떻게 수지타산을 맞출까! 속으로는 괜한 걱정까지 들었다.

 

주인은 자신있게 모든 병이 그 차만 마시면 금방 나을것 처럼 말한다.

주둥이가 달린 아주 작은 다기에 차잎을 넣고 데팔주전자에서 끓고 있는 물을 넘치게 붓고는 주둥이에서 뽀글뽀글 넘치는 물을 가리키며 숨을 쉬는 그릇이라서 물이 넘친단다.

 

그릇이 넘치도록 끓는 물을 붓는데 그럼 주둥이에서 물이 뽀글대며 넘치지 않고 배길 수가 있겠는가.

요는 그런  특수한 흙으로 만든  숨쉬는 다기라서 값이 비싸다는 것이리라.

 

주인의 말은 전적으로 신뢰할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사전에 그 차에 대한 지식이 있어서, 더욱이 신부님과 스님을 통해 알게 된 차라서 한참을 앉아 따라주는대로 연신  마셨다.

 

너무 많이 차를 얻어마신지라, 그리고  중국에서 가져온 진짜 OO차라니 한 번 마셔보자 싶어서 두 봉지를 샀다. 7년간 발효시켰다는 100그램 짜리 한봉지가 5만원이었다.

직장에 한 봉지 집에서 한 봉지 끓여 마시자고  두 봉지에 십만원을 주고 샀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부기가 개뿔이 빠지기는커녕(내가 개뿔이란 말을 쓸 때는 몹시 실망했을 때임) 평소에 물을 많이 먹지 않는 체질인데  붕어처럼 마셔대서인지 오히려 얼굴이 부었다.

이거 가짜 OO차 아냐?

 

아무리 좋은 차라고 한들 차가 차이지, 만병통치약이 아닐진대, 약장수가 동네에 들어오면 노상 몸에 좋다는 약을 사던 어머니가 생각났다.

약장수 말에 속지 말라고 그렇게 주의를 주던 내가 차 장수한테 속았나부다.

하긴 누굴 탓하랴!

차는 그저 차로서만 마실 일이지 약으로 생각한 게 잘못이지.

 

나는 다도(茶道)를 모른다.

차를 마시며  음미할 줄을 모른다.

 

녹차는 맛이 없어 안마시고, 커피는 식으면 맛이 없어 뜨거울 때 후다닥 마셔버린다.

차를 마시며 분위기도 즐기고 명상도 하고 차의 깊은 맛도 음미할 줄 알아야 그게 차를 마시는 본연의 모습일텐데.......

 

딸 아이가 엄마처럼 커피를 허겁지겁 마셔버리는 사람은 없을거라고 한다.

천천히 음미하며 마셔야지 그렇게 마셔버리면 어떡하냐고 한다.

녹차도 자꾸 마시다보면 그 참맛을 알게 된다고 하는데,

혀끝에 남는 은은한 향기를 느끼게 된다고 하는데,

그동안을 기다리지 못하고 참지도 못한다.

 

원두커피 역시 오래 마시다 보면 그 구수한 맛을 알게 된다고 하는데, 그동안을 참지못해 일명 옛날식 다방커피로 돌아가고 만다.

그래서 프림 넣고 설탕 넣은 옛날식 다방커피 아니면 맛없어 안 마신다.

 

야생차를 재배하는 어느 차 애호가는 차잎새가 가장 보기좋고 따고 싶은 것은 따지 말라고 했다. 두 번째로 따고 싶은 것도 참으라고 한다.

세 번째의 것을 따서 입에 마시는 것으로 삼으라 한다.

 

가장 실하고 보기좋은 잎은 차나무의 성장을 계속하게 하는 것으로 그것을 따버리면 차나무가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항상 곁가지에서 따야한다고 한다.

 

첫 번째도 따지 마라,

두 번째도 따지 마라,

세 번째의 것을 따서 입에 마시는 것으로 삼아라.....

그러면 그것이 경귀처럼 되어간다고 한다.

 

그래서 차를 따는 것은 곧 참는것을 배운다는 것이다.

차 따는 것이 수행이 된다고 한다.

차잎을 말려서 가마솥에 적어도 여섯번을 볶아서 말린 차잎은 연한 녹색 빛깔이 된다. 햇차의 그윽한 향은 입안을 감미롭게 하고 혀끝에 햇차의 참맛이 느껴진다고 한다. 

 

차의 맛을 음미할 줄 모르는 나에겐 그런 말들이 마치 말장난처럼 느껴졌다.

별것도 아닌 것에 그럴듯한 미사여구를 붙여놓는 것처럼 느껴졌다.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라는 책에 보면 일본사람들은 넓은 안채를 두고도 일부러 뒷쪽에 있는 좁은 별채를 돌징검을 딛고 지나 좁은 공간에 앉아 차를 마시는 별난 취미가 있다고 한다.

 

다도를 즐기는 일본인은 좁은 공간을 좋아하고 작은 것을 좋아한단다.

그래서 산천초목을 축소시켜 옮겨놓은 분재가 발달했고, 공기밥을 먹고 도시락이 일찌기 발달했으며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만들었단다.

사발밥을 먹던 우리도 이제 일본을 많이 닮아가는지 요즘은 어디고 공기밥이다.

아주 작은 핸드폰도 잘 만들고 ......

 

한 번 다도에 도전해보면, 줄기차게 음미하다보면 그 참맛을 알게 된다고 하니 정말인지 거짓말인지 시험해보고도 싶지만 역시 그 과정이 지루하고 귀찮아 쉽게 살려고만 한다.

느리게 사는 법, 인내하는 법이 아무래도 어렵게만 느껴지니 늘 빨리빨리에만 익숙해져 음식도 손 덜가는 조리법으로 손쉽게 할 수 있는 것만 하게 된다.

 

그래서 스스로의 참을성 없음을 합리화시킨다.

아무리 마셔본들 차가 무슨 맛일까보냐?

아무리 마셔봐도 그맛이 그맛이지 별거 있을라구...

그건 그저 차를 마시며 인내하는 법, 수행하는 법, 분위기를 즐기려는 옛사람들의 지혜로서 다도예법도 다도문화도 생겨나지 않았을까! 하고.....

 

차장수 말대로  상시 복용하던 약을 끊고  OO차만 하루종일 마시며 며칠을 보내던 남편이 오늘 아침 드디어  하는 말.....

차만 마시고 약을 끊으니까 도저히 안되겠어. 하기야 하루 이틀 마셨다고 그렇게 나으면 이상하지...

그 말에 나는 픽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차와 약을 함께 병행해보라고 했다.

 

차는 그냥 차일뿐이다.

약이 아니다.

그러나 이 참에 한 번 다도를 배워볼 참이다.

나는 오늘도 이 OO차를 마신다.

진짜라는 주인의 말을 믿고 싶다.

그렇게 큰 가게에서, 더우기 체인도 몇 개 있던데, 진짜 중국의 OO차일 거라고 믿는다.

 

나는 진정 차맛을 알게 되기를 바란다.

그것은 곧 기다리는 일이기에....

다도를 배우며 인내하는 법도 배우고 기다릴 줄 아는 법도 배우고 싶다.

 

다도를 익히며 차의 깊은 맛을 조금씩 혀끝에 알아가듯, 어쩌면 신앙의 여정도 오래 참고 기다리며 고통을 이겨내며  그 신앙의 참맛을 가슴속으로 느끼고 알아가는  과정이 기다려야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이렇게 글을 길게 써 본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끝까지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은 참으로 인내심이 많으신 분들이라고 생각됩니

     다. 두서없는 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