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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의 나라 공동체-----2006.11.16 목요일 성녀 제르트루다 기념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6-11-16 조회수642 추천수5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6.11.16 목요일 성녀 제르트루다 기념

                                        

필레7-20 루카17,20-25

                                                  

하느님의 나라 공동체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특히 나이 들어 갈수록 여행 다녀온 후,

이구동성으로 “집보다 편한 곳이 없다.”, “집이 제일이다.” 라고 말합니다.

 

바로 지금 여기 내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가 하느님 계신 곳을 암시합니다.

‘외출한 분은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인데,

  하느님을 집에 놔두고 어리석게도 밖에 외출하여 하느님을 찾는다.’고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지금 여기 내 몸담고 있는 공동체가 하느님 나라이며,

하느님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대로,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습니다.

또 ‘보라, 여기에 있다.’, 혹은 ‘저기에 있다.’하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바로 우리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누가 ‘보라, 저기에 주님이 계시다.’, 또는

‘보라, 여기에 주님이 계시다.’

라고 말해도 절대로 부화뇌동하여 나서지도 말고 따라가지도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내 이름으로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 나도 그들과 함께 있겠다.’고

분명 주님도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의 공동체에서 펼쳐지는 하느님 나라요, 체험하는 하느님입니다.

이런 공동체내에서 하느님 체험이 평범하면서도 안전하고 건강한 신비체험입니다.

 

그래서 나무처럼, 지금 여기 내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 안에,

공동체 안에 깊이 뿌리내리는 정주(定住:stability)의 삶이 그토록 중요합니다.


1독서에서 바오로가 필레몬의 노예였던 오네시모스에 대한 형제애가

구구절절 참 감동적입니다.

몇 구절 그대로 인용합니다.


“이러한 내가 옥중에서 얻은 내 아들 오네시모스의 일로

  그대에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나는 내 심장과 같은 그를 그대에게 돌려보냅니다.”
“이제 그대는 그를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종 이상으로,

  곧 사랑하는 형제로 돌려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그대에게 손실을 입혔거나 빚을 진 것이 있거든 내 앞으로 계산하십시오.

 내가 갚겠습니다.”


표현들은 어색하고 서툴러도 공동체의 형제들을,

말 그대로 사랑하는 형제들로 대하는 바로 그 공동체가 하느님의 나라요,

바로 그 공동체에서 만나는 하느님입니다.

 

이 거룩한 매일 미사의 은총이

형제애가 넘치는 하느님의 나라 공동체를 만들어 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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