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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 나라는 그 안에 있다.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6-11-16 조회수676 추천수5 반대(0) 신고

 

<하느님나라는 그 안에 있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날을 하루라도 보려고 갈망할 때가 오겠지만 보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에게 ‘보라, 저기에 계시다.’, 또는 ‘보라, 여기에 계시다.’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나서지도 말고 따라가지도 마라. 번개가 치면 하늘 이쪽 끝에서 하늘 저쪽 끝까지 비추는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날에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아야 한다.” (루카 17,20-25)


  사람들은 제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의 현상도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아 해석하나 봅니다. 겨울에 눈이 올 때 강아지가 깡충깡충 뛰는 것이 사실은 발이 눈에 빠지고 시려서 뛴다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강아지들이 눈을 보고 좋아서 뛴다고 생각합니다.


  등에 업은 아이 3년 찾는다는 속담이 바로 그 말이겠죠. 제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찾으려 우왕좌왕하는 모습입니다. 아마 그가 눈을 감고 있었다면 등에 업은 아이가 곧 생각이 났을 것입니다.


  본다는 것은 제 사고를 통해서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명확하게 말합니다.

  “자기가 걷고 있는 길을 확신하고 싶으면 눈을 감고 어둠 속을 걸어라.”라고 말합니다. 인류의 첫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눈이 열려 선과 악을 제 기준으로 판단하여 하느님의 금령을 어긴 것을 염두에 두고 한 말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인간의 지성을 사용하여 모든 것을 재단하려는 습성을 없애라는 말입니다.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라고 말하는 것은 온 우주에 계시지 않는 곳이 없으신 그분을 두고 거짓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T.V.에서 고수 열전이라는 시리즈물을 보았습니다. 거기서 약초 캐는 심마니를 소개하였습니다. 그분이 수행 제자와 대화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습니다.

  “저 앞산에 가서 약으로 쓸 수 없는 풀을 뽑아 와라.”하고 제자에게 명령합니다. 제자가 산에 올라갔다가 한 등짐 지고 내려오니 일일이 들어 약효를 설명하였습니다.

 “자 그럼, 이제 약으로 쓸 수 있는 풀 한포기를 가져 와라.” 그제야 그 제자는 발밑에 있는 풀을 뽑아 들어 스승께 내밀었습니다. 이에 그 스승은 “맞다. 이 산에 있는 모든 초목은 모두 약도 되고 독도 된다. 진정 이 풀은 한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그 도인이 말하는 바는 분별 있는 자세로 모든 초목, 뿌리, 열매에 담겨있는 자연의 지혜를 배우라는 뜻이겠지요. 같은 한 가지 약효도 누구에는 독이 되고 또 치료약이 되니 삼가서 배우라는 가르침이겠죠.

  단지 육안의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하느님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 심마니 도인의 눈에 모든 산천초목이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약초로 보이듯이 예수님의 눈을 우리가 새롭게 갖는다면 온 세상이 다 하느님나라로 보일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라고 말하십니다. 영적인 깨달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하느님나라가 바로 여기 이 순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바람이 불듯 영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해도 우리에게 불현듯 찾아 올 것입니다. 우리가 노력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으로 모시기만 하면 된다는 말씀입니다. 저절로 찾아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머무시며 말씀과 행동으로 가르쳐 주신 모든 것을 그대로 따르는 자라야 예수님을 믿는 자입니다. 말 따로 몸 따로 인자는 결코 하느님나라를 차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실존 전체가, 우리 존재 전체가

   지붕 위에서 복음을 외쳐야 합니다.

   우리의 품성이 예수의 모습을 풍기고,

   우리의 모든 행위와 생활 전체는

   우리가 예수에게 속한 자들임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적 삶의 이미지를 지녀야 합니다.

   복음의 살아 있는 설교가 되고,

   예수를 반영해야 합니다.

            - 예수의 샤를르 작은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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