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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시집살이의 첫날밤 . . . . . . . [故 오기선 신부님]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6-11-17 조회수1,079 추천수11 반대(0) 신고

 

 

 

 

 

내가 신부가 되어(1932년) 지금의 중림동 성당(약현성당)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다.

사제들 사회에서는 보좌신부로 가는 것을 [시집간다]고 하고...

본당 신부를 [시에미]라고 부른다.

 

휴가를 끝내고 1933년 1월10일 시집으로 가야겠는데,

데리러 오는 이가 한 사람도 없었다.

다른 친구신부들은 회장들이 다 모시고 동서남북으로 제 갈길을 찾아

나섰는데도 말이다.

 

[아! 첫날부터 재수 더럽구나!]

 

혼자 중얼거렸다.

거의 저녁이 다 되었을 무렵 키가 장승같이 크고 비쩍 마른 영감님이

문을 여밀었다.

 

"신부님이 오 요셉 신부십니까?"

"네, 전데요!"

"저, 미안한 말씀이지만 본당신부님이 종부 좀 가시랍니다."

"네? 종부요?"

"네, 참 딱하기는 하오나, 본당 신부님의 명령이시니....,"

 

그 영감님은 말끝을 흐렸다.

 

'과연 재수 한 번 더럽게 됐구나!  애기신부에게 종부성사를 가라니!

 내 첫 부임지가 병자의 집이라니...!'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나 고민하다가 이판사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습니다, 가십시다."

 

그때는 서울 명동,중림동,혜와동(백동) 이렇게 세 곳에만 성당이 있었다.

가는 곳은 영등포였다.

전차를 차고 내려서는 골목골목으로 들어간다.

석탄 쌓인 옆 땅굴길을 지나 기어서 들어가니 땅굴 집이었다.

부엌도 새까맣고, 방문도 방바닥도 이불도 석탄빛이다.

 

콜록콜록 기침하는 환자의 얼굴까지 새까맣다.

병자는 숨이 턱에 까지 차올라 있었다.

 

[아이구! 맙소사!]

 

폐병 3기에 눈만 감으면 송장이다.

35년 동안 첫 고해도, 첫 영성체도 견진도 받지 않았다.

물론 혼배도 없이 그냥저냥 만나서 사는 거다.

이런 판국에 죽을 병이 들은 것이다.

 

애송이 사제가 이런 여러 성사를 한꺼번에 한 자리에서 어떻게 하나?...

걱정이 태산같고 눈앞이 캄캄했다.

 

[에라! 이왕 내친 걸음이다!]

 

이를 악물었다.

집을 안내했던 회장님은 어느사이에 나를 혼자 두고 가버렸다.

 

"영감님, 고해성사를 보십시오."

"뭐요?"

"고해 말예요!"

"난, 그런 거 몰라요!"

 

난감했지만 휘어 잡고 해내고 말리라.. 마음 속으로 다시 한번 다짐을

하고 내가 말하는 것에 "예" 또는 "아니오" 라고만 대답하라고 했다.

일일이 물어가며 해야 하는 것이다.

 

[젠장! 죄는 지가 짓고 , 고백은 내가하는 팔자로군!]

 

마음 안에서 타령이 절로 나왔다.

페병 3기라서 입에다 귀를 바짝 갖다 대고 겨우 무슨 소린인지

짐작해 가는 고해성사였다.

 

그나마도 [울컥]할 때면 급히 요강을 갖다 대고 각혈을 주먹덩이만큼씩

받아내야만 했다.

어디 그뿐인가, 얼굴, 입, 수염에 묻은 새빨간 피를 내 흰 손수건으로

닦아줘 가며 주는 고해성사였다.

 

사제의 첫 걸음이 이렇게 재수가 좋은 첫 걸음인가..

아니면 기구한 운명의 첫 발자국인가..

이 두가지가 다 어우러졌다.

 

거의 한 시간이 넘도록 내가 그 병자에게 고백을 한 셈이 되었다.

그리고 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노자 성체로 첫 영성체를 해주고 나니

내 등에는 식은 땀이 흘렀다.

 

혼배성사가 유효하도록 바로잡아 주고,

이어 병자 성사를 주었다.

마지막으로 임종전 대사, 즉 그냥 죽어도 연옥에 안들리고 바로 천국으로

가라는 전대사를 주고.. 강복을 주고나니..

 

그 해골같던 얼굴에서 주루룩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내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앞자락까지 흘러 내려 옷을 적셨다.

 

"신부님, 나 좋아요, 참 즐거워요!

 내가 먼저 천당엘 가요.

 가서 우리 신부님 자리 내 옆에 준비해 놓고 기다릴께요.

 그럼 신부님, 다시 천당에서 만나....,"

 

말끝을 흐리더니 내 손을 꼭 쥔채 한많은 이 찬류(竄流) 세상을 떠나갔다.

그의 장례준비를 영등포 공소 최 회장님에게 부탁하고는 [시집]으로

저녁때 들어왔다.

 

[시집]와서 첫날밤이었다.

이불을 덮고 드러누웠다.

김 바오로의 해골 같은 앙상한 얼굴이 아롱거린다.

 

내 뼈 마디마디에 결핵균이 기어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벌떡 일어나 세수를 세 번, 네 번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겨우 27살 난 애기신부였기에 그럴만도 했지만

우습기만 하다.

 

다시 누워 신학교에서 배운 성사를,

그것도 한 자리에서 대 여섯 가지나 잘 했는지 손가락을 꼽아가며

이리저리 뒤치닥거리며 더듬어 보니

다행아 모든 성사를, 오로지 책으로만 배운 것을 난생 처음 적용하는데

성공을 한 셈이었다.

 

한숨을 [후- -] 내쉬다가 문뜩 한 생각이 떠올랐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고해성사를 받는 바오로에게 너무 오랜 시간에 걸쳐

성사를 주다보니 그만 끝에 보속을 주는 것을 깜박 잊어버렸던 것이다!

 

[젠장! 죄는 지가 짓고, 보속도 내가 해야 되는군!]

 

속으로 몇마디 하고는 내가 대신 보속을 해 주었다.

 

만약 그 시각에 내가 없었더라면 김 바오로의 영혼은 어찌 되었을까?

생각하며 [시집]에서 첫날밤의 등불을 밝힐 때.

 

[그래... 나는 다시 태어나도 또다시 사제의 길을 가련다!]고

내 사제 생활의 모토를 굳혔다.

 

그의 눈물, 내 눈물이 교차되던 그 찰나에...

나는 사제가 된 행복감을 느꼈다.

 

 

 

- [다시 태어나도 사제의 길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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