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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 복음묵상]너와 나의 참된 만남의 길 l 석찬귀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11-21 조회수813 추천수3 반대(0) 신고

2006년 11월 2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이 축일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8세기경 콘스탄티노플의 제르마노 주교의 강론에 이 축일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9세기경 니코메디아의 그레고리오 주교도 이 축일 전례가 있었던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9세기경에는 남부 이탈리아 수도원에서, 14세기경에는 영국에서도 이 축일을 기념하였습니다. 1472년 식스토 4세 교황에 의해 이 축일이 로마 전례의 모든 교회에 보편화되었습니다. 그 뒤 잠시 중단되었다가 식스토 5세 교황이 다시 도입하였습니다. 이 축일에는 복되신 동정녀의 영광을 찬양하며, 우리도 그분의 충만한 은총에 참여할 수 있게 전구를 청합니다.
자케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루가 19,5)

 

 “Zacchaeus, come down quickly,
for today I must stay at your house.”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예수님께서는, 키가 작아 나무에 올라가 당신의 모습을 보려는 자캐오를 보시고 구원을 약속하십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


많은 군중이 에워싸고 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려고 발돋움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키가 작은 것이 안타깝게 느껴지겠지요. 예수님을 보려고 나무에 올라간 자캐오만 키가 작은 것일까요? 우리 곁을 지나가시는 주님을 보지 못하는 우리 역시 자캐오처럼 키가 작은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예리코의 소경처럼 눈먼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눈이 멀었다 해도 예리코의 소경처럼 믿음과 용기가 있다면, 또 키가 작다 해도 자캐오처럼 나무에 오르려는 열성이 있다면 주님께서는 우리를 만나 주실 것이고, 또한 구원을 약속해 주실 것입니다.

 

 

너와 나의 참된 만남의 길!!




 한 때는 이 거친 도시가 ‘만두파동’으로 야단법석이더니
며칠 전에는‘김치파동’이 일어나 또 한 번 거친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그렇잖아도 이 회색빛 도시가 불신의 늪에서 허우대는 듯 했는데,
이 번의 ‘기생충 김치’파동은 우리의 도시를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불신의 수렁으로 빠져들게 하지나 않을까 염려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흔히 정의감에 불타는 사람 중에는 자기는 깨끗하고 옳지만
남은 모두 불의하다고 단정해버리는데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나 비판의 잣대를 자기보다도 남에게 먼저 들이 대고, 더욱이 자기가
져야할 책임도 남에게 떠넘겨 버리는 현상을 보면, 그런 사람들은
우리를 더욱 더 불신의 늪으로 밀어 넣는 무리에 불과하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오늘 루가 복음에 나온 예수님과 자캐오가 예리코에서 만난 사건은
우리가 불신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는 실마리를 제공해 줍니다.
자캐오는 에리코에 사는 부자였습니다. 허나 이웃들은 그를‘죽일 놈’으로
단정했습니다. 그 이유는 세관장 자캐오가 유태인들의 원수인 로마에다가
혈세를 바치게 만들었고, 남의 눈을 속여서 부자가 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편 하수구처럼 부패한 자캐오 였지만 예수님이 자기 동네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먼발치에 서서라도 꼭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키가 너무 작아서 도저히 예수님을 볼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나무 위에까지 올라가서 예수님의 얼굴을 보려고 애썼습니다.
그런데 자캐오의 이런 열성이 예수님을 감동 시켰던 모양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사람들의 갖은 비난을 무릅쓰고‘자캐오야, 오늘은 내가
네 집에서 하룻밤을 같이 지내겠다’고 하시면서 격려 하십니다.
그러자 정의감에 불타던 군중들은 예수님에게 방금 한 그 말을 취소하라고
하면서 삿대질을 했습니다. 
그러나 누가 말려도 허사였습니다.   왜냐면 주님의 판단으로는
사랑이 빠져버린 정의는 단맛이 빠져버린 과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뭣보다도 뜨거운 사랑만이 부패한 자캐오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주님의 뜨거운 사랑을 절감한 자캐오는 자기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겠으며, 더욱이 남을 속여서 번 돈의 6 배를 남들과 나누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어느 날은 한 친구신부로부터 이런 내용의 글을 받았습니다.


 제 친구 J 신부는 오랜만에 후배 S 신부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 때 그는 활짝 웃고 있는 한 소녀의 사진을 지갑 속에서 꺼내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왜 그 사진을 품안에 넣고 다니는지를 설명해줬습니다
 s 신부는 지난 여름날 오후 한 교우의 부탁을 받고 초상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 가보니, 망자는 초등학교 4 학년의 소녀였습니다.
그리고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평소에 성당에 나가고 싶어했습니다.
그런데 그 소녀는 혼자 물놀이를 하다가 그만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는 것임
그 후 S 신부는 그 소녀와 애통해 하는 부모를 위해 장례미사를 드렸습니다
비신자인 소녀의 장례미사를 반대하는 신자의 눈총을 무릅쓰고 말입니다
 그러나 딸을 잃고 애통해 하는 부모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며칠 후 S 신부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왜냐면 죽은 소녀와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한 소녀가 ‘실제 물에 빠진 것은 자신이었는데,
자기를 살리고 그 친구는 그만 물에 빠져죽었다’고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저는‘벗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린’ 그 소녀야말로 자캐오에게
따스한 자비심으로 맞아줬던 또 하나의 살아계신 예수님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앞으로 살면서 그 소녀 정도로 자신을 바칠 수 있을까 싶고
또 그 소녀가 부럽기도 합니다.
그래서 S 신부가 소녀의 사진을 넣고 다니는 마음처럼
저도 그 소녀를 제 수호천사로 간직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아멘
.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장 석찬귀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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