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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47 > ‘산’을 모르면 인생은 노동이다 l 강길웅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11-22 조회수1,306 추천수18 반대(0) 신고

                             

            ‘산’을 모르면 인생은 노동이다

                           

   남자는 흔히 군대에 다녀와야 사람이 된다고 한다. 왜 하필 군대에서 사람이 되는가. 군대 사회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상식이 통하지 않는 특수사회인 것이다. 때리면 억울해도 맞아야 하며 기합을 주면 피눈물을 쏟으면서도 받아야 한다. 그것이 유일한 살 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험이 짧은 젊은이들은 대개 지적인 사고(思考)로써만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그런 지식의 사고만으로 인간은 자신의 ‘산’을 넘기 어렵다/ 오히려 부당한 대우나 억울한 희생을 겪을 때 비로소 ‘산’을 얻게 되는 지혜의 눈을 뜨게 된다. 그래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고통은 악(惡)이다. 가난이나 병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성서를 보면 그것들은 필요악(必要惡)이다. 좀 애매한 표현이지만, 더 큰 선을 드러내기 위해선 악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것이다. 인간은 맞을(?)때 제정신을 차리는 지혜를 얻게 된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을 때리는 자들도 있다.

 

   나는 이외수라는 작가를 좋아한다. ‘벽오금학도’나 ‘황금비늘’같은 그의 작품을 읽어보면 다른 작가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어떤 맑으면서도 깨끗한 영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사실은 그 주옥같은 말마디가 그냥 아무렇게나 나오는 것이 아니다. 막말로 피를 토한 뒤에 나오는 것이다.


   그가 작품을 쓸 땐 교도소의 문과 똑같이 만들어 작업이 끝날 때까지 그 속에서 나오질 않는다든지, 또는 추운겨울에 밥을 한 솥 가득 지어 차디차게 얼렸다가 그것을 망치와 못으로 깨뜨려 어적어적 씹어 먹는다든지, 그는 멀고도 긴 고행에서 ‘글 눈’을 틔웠기 때문 이었다. 그래서 아마 그를 ‘기인’이라 부르는 지도 모른다.


   위인과 천재들의 75% 이상이 육체적으로 또는 정신적인 어떤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들 중에는 정신병자도 있고 장님이나 귀머거리도 있으며 소아마비나 간질병을 앓은 자도 있었고 또한 거세를 당하거나 다리를 잘린 죄인이나 노예도 있었다. 가난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불가(佛家)에서는 ‘고난은 보리(菩提: 불교에서 수행 결과 얻어지는 깨달음의 지혜 또는 그 지혜를 얻기 위한 수도 과정을 이르는 말.)’라고 한다. 고난의 아픔을 체험하지 않고는 인간은 아무도 자신의 산을 넘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자기 자신과 치열하게 싸우는 피눈물 나는 전쟁이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십자가가 은혜인 까닭도 바로 거기에 있다.


   인생은 노동이 아니다! 가난이 어렵고 병이 어려워 때로는 그것이 높은 산처럼 보이지만 절대로 그것은 진정한 산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산에 오를 수 있는 어떤 힘과 에너지다. 그렇다면, 인생의 여정에서 불행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인생은 정말 모든 것이 축복이다.


   언젠가 ‘산은 산이 아니다‘라는 글에서, 인간이 자신의 ’산‘을 넘기 위해선 가난이나 병 등의 도움이 절실하게 요청된다는  글을 썼는데, 이 글이 잡지사의 실수로 엉뚱하게도 ’가난과 병이 인간의 산 이다‘ 라는 내용으로 둔갑해 버렸다. 솔직히 말해 이건 보통 사건이 아니다!


   ‘가난과 병이 산이다’라는 것과 ‘산을 넘는데 가난과 병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말은 내용자체가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런데 독자들이 잘못 나간 글을 보고 오히려 감동 받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는 내 자신에게 이상한 모멸감을 느꼈다. 그렇다면 인생은 노동이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산’을 아는 이에겐 등산이야말로 즐거운 심신 운동이 된다. 그러나 ‘산’을 모르는 이에겐 등산 자체가 엄청난 노동이 된다. 이것을 바꿔 말하면, 인생을 노동으로 사는 사람과, 그리고 인생을 축복으로 받아  들이는 사람하고는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에 커다란 수준 차이가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등산길에서 자주 듣는 인사말에 “수고 하십니다”라는 것이 있다. 내가 좋아 산에 올라가는데 왜 저쪽에서는 등산을 노동이나 고역으로만 바라볼까. “좋은 날씹니다”. “좋은 시간 되십시요”라는 인사는 왜 하질 못하는가. 산아 뭔지도 모르면서 등산을 하는 자들을 보면 정말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소록도에서 손님을 맞을 때도 마찬가지다. 가장 듣기 싫은 소리가 “고생 하십니다”라는 소리요, 심지어는 “몇 년 참으시면 신부님도 좋은데 가실 겁니다”라는 아주 치졸한 인사들이다. 어느 땐 신부님들도 그럴 때가 있다. 한마디로, 노예의 근성을 가진 자는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세상에는 이유 없이 얻어맞는 아픔이나 억울함이 많이 있다. 이것은 인간의 지혜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다 소중한 뜻과 의미가 있다. 하느님께서는 아무런 뜻도 없이 인간에게 아픔을 허락하시지 않는다. 이를테면 산을 오를 수 있는 발판을 주신다는 것이다.   

 

   산을 모르면 인생은 노동이다.


   - 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 중에서/강길웅 요한 신부 (소록도 본당 주임)

 

  

                             

                                 

           Avec mon oie sauvage d'amour ensem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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