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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진리를 듣는 충직한 종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6-11-22 조회수636 추천수4 반대(0) 신고

 

<진리를 듣는 충직한 종>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왕권을 받고 돌아와 그들을 불러오라고 분부하였다

“잘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

“이 악한 종아, 나는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심판한다.”

“내가 냉혹한 사람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되찾았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그리고 내가 저희들의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은 그 원수들을 이리 끌어다가, 내 앞에서 처형하여라.” (루카 19,11-27)


  루카저자는 마태오의 달란트 비유와 달리 미나의 비유를 예루살렘 입성 직전에 위치하여 왕이신 예수님과 재물의 올바른 사용을 강조하였습니다.  루카저자는 문맥의 원활한 흐름을 중요시 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 시에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임금님은 복되시어라.’ 하늘에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 영광!”(19,38)이라고 군중들이 외치는 소리를 왕위 즉위식으로 만들기 위해 그 앞 문장인 이곳에다 미리 왕권에 대한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받드는 종(그리스도교 공동체)들과, 왕권을 인정하지 않고 미워하는 원수들(19,39절, 바리사이들)의 대립을 미리 언급하였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들이 잠자코 있으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 (40절)


  많은 학자들은 이 두 비유를 말씀하신 예수님의 의도는 세 번째 종을 꾸짖는데 목적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스스로 경건하다고한 유대인들이 조심스런 율법준수 가운데 개인적인 안전만을 꾀했고, 그 결과 이기적 배타성이 커져 유대종교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즉 세리와 죄인, 이방인들이 율법준수로부터 아무런 과실을 따지 못하게 되었으며, 하느님은 원금에서 아무 이자도 얻지 못하게 된 것을 책망한  비유이랍니다.


  이 두 비유가 초기 공동체에서는 교훈목적으로 재사용되었고,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증거 하는 비유가 되었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진 한 미나를 기회라고 묵상해 봅니다. 주님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 주님과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에 대해서 이상한 소문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고 스스로 확인해 보지 않습니다. 주님께 대해서 알 수 있는 방법은 성경 묵상과 기도를 통한 일치체험이며, 그 깨달음을 이웃과 나누는데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중 하나를 소홀히 하면 큰 열매를 맺기 어려울 것입니다. 주어진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번 사람은 이 기회를 잘 사용하여 열 배의 기쁨을 얻은 사람이며, 수건에 싸서 두기만 했던 사람은 이 기회를 묵혀두고 이용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은행에라도 맡겨두지 못했다는 것은 교회 지도자의 충고도 듣지 않고 엇나가 냉담하여 영적 기쁨이 메마른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진리로 나아가는데 세 가지 길이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 방법은 묵상과 기도를 통해서 깨달음을 얻는 길이요, 두 번째 방법은 남을 모방해서라도 배우는 길인데 이 길이 제일 쉽다고 합니다. 세 번째 방법은 일일이 경험을 통해서 얻는 길이라고 합니다. 이 길은 매우 어렵고 잘못하면 길을 벗어 날 수 도 있습니다. 더 나쁜 것은 아예 진리를 외면하는 것이겠죠.


  요한복음 18,38 절에 빌라도가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진리가 무엇이오?” 그러나 빌라도는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이 있는 곳으로 나가버렸습니다.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진리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박차 버렸습니다. 그는 자기가 진리를 알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자기 곁에 계셨던 영원한 진리를 외면한 어리석은 죄를 범한 자로 기록될 것입니다.

  진리가 무엇인지를 묻기 까지 했으면 듣는 시늉이라도 했어야 하는데 그는 스스로 귀를 닫아 버렸습니다. 이 빌라도와 같은 어리석음을 우리라고 범하지 말라는 경우는 없습니다. 주어진 기회를 선용하지 못하면 그 기회는 다른 사람에게 덧 붙여 주어 질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린 비는 바다로 흘러 들어가기 전에 목마른 뿌리를 흠뻑 적시고 가듯이 말입니다.


  

  하오나 당신을 알려면 어디서 뵈어야 합니까?

  제가 알기 전에는 제 기억에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 제가 주님을 뵙고 아는 데는

  바로 제 위 당신 안이 아니고 어디입니까?

  그러나 곳이 아닙니다.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는 것은 우리일 뿐,

  곳이 아닙니다.


  오, 진리이시여.

  어디든지 당신께 묻는 자 앞에 계시니,

  사람이 저마다 다른 것을 물어도

  한꺼번에 대답을 주시나이다.


  당신은 밝게 대답하시건만

  사람이 다 밝게 듣지는 않습니다.

  사람마다 제 마음대로 묻기는 하여도

  제 마음대로 항상 듣는 것은 아닙니다.


  제 하고 싶은 것을 당신께 듣기보다

  당신께 들은 바를 하고 싶어 하는

  그 종이야 말로 충직한 종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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