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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초겨울에 만난 사람" / 이인주 신부님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6-11-24 조회수993 추천수10 반대(0) 신고
“초겨울에 만나고 싶은 사람”

일본 동경에서 신학을 공부할 때였다. 한 주에 한번 나를 설레게 하는 시간이 있었다. 화려한 외출, 공부와 기도의 터를 떠나 배운 것을 세상에 접목시켜 보던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아마도 사람은 이래서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하나보다. 진짜 예수님을 닮는 것은 공부와 기도이기도 하지만, 그 배운 공부와 기도를 세상 사람들과 연계시킬 때 거기서 참 그리스도의 모습이 배어 나오는 것이라고 느꼈기에 한 소절 적어보는 것이다.

동경의 초겨울 날씨는 서울만은 못해도 나름대로 살을 파고든다. 아마도 바닷바람이 그 원인이 아닐까. 초겨울의 비나 눈발이라도 날리면 그날은 참 서글프다 못해 눈물이 흐른다. 거리에 사람들은 이런 날씨에 많이 죽어 어디론 가로 간다. 누가 울어 주는 이 하나 없이 천국을 향해 슬픈 자신의 영혼을 억지로라도 맡겨야 하는 그 시간이 나를 더 서글프게 하는 것이다. 주님! 이 쓸쓸한 영혼을 기쁘게 받아주소서 하며 돌아서는 우에노, 산야의 공원은 너무 서글프다. 이것이 인생의 종착역인가?

거리의 사람 중에 특이한 분을 만났다. 늘 혼자이고 어울릴 줄 모르고, 양보를 잘하던 안경테가 두꺼운 50대 초반의 아저씨, 한 결 같이 같은 전주 밑에 철학 원서를 들고 늘 읽던 그 아저씨, 말을 시키면 좀 귀찮아하며 답을 안 해 주던 그 아저씨, 몇 날 몇 칠을 말을 걸다 포기할까 하다. 아니지 오늘은 저 아저씨와 대화를 하는 것이 몇 개의 오니기리(김밥)와 미소시루(된장 국)를 나눠주는 것보다 더 나을 것이라 생각해서 집요하게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물론 대화를 터는 대는 역시 뇌물이 있어야했기에 오징어에 소주를 한잔 준비를 했다. 그때는 아직 담배를 피우던 때라, 우선 담배를 한데 권하니 그런대로 받아 피우신다. 그리고 잠바의 안주머니에서 소주와 오징어를 꺼내니 눈길이 따라옴을 느낀다. 당신은 한국 사람이 아니오, 그런데 왜 일본 사람인 나에게 이렇게 신경을 쓰는 것이오. 힘들고 어려울 땐 일본 한국이 있나요. 그냥 벗하며 사는 것이지요. 하늘아래 나누면 나눌수록 좋은 것이 아니겠어요. 그러니 이렇게 아저씨와 나눌 수 있어 좋은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그 아저씨가 동경대학 철학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 철학과 교수도 역임했음을 알게 되었다.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만나는 듯 야릇한 기분이 들어 이상타 했다만, 그것도 잠시 몸을 힘들어 하시기에, 좀 따뜻한 곳으로 옮겨 대화를 나눴고, 그래서 우리 둘은 서로 많은 대화 가운데서 친구처럼 되었고, 하늘의 벗이 됨의 차원까지도 나누게 되었다. 그날은 그분과 함께 밤을 지새웠다.

아! 말로만 듣던 노숙자(홈리스)가 되어보았던 것이다. 참 환장하고 죽을 것 같았다. 살을 에는 추위 속에 오로지 새벽을 기다리며, 하느님 세상은 참 불 공평하네요. 하며 하늘을 향해 원망 아닌 원망을 했던 그때가 그립다. 사실 그리운 건 아니지만 그때는 젊음이 있어 그런 용기가 있었나 보다. 우리는 노숙자들을 보면 왜 저들은 저렇게 사나하며 이상하게 생각도 하겠지만, 그분들이야말로 그러고 싶어서 그러겠는가? 인생이 꼬이다 보니 그렇다싶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참 따뜻한 분들임을 그 디오게네스를 닮은 옛 동경철학교수와의 노숙의 하룻밤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 다음 주 다시 그 전주 밑에 갔더니, 보는 순간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전주 밑엔 국화 한 송이가 놓여있었다. 그분은 나와 몇 대의 담배와 오징어에 소줄 나누고 천국행 열차를 탄 것이다. 망자 앞에 부어줄 소주를 미리 한잔 나눴다 생각하니, 하느님께서 기뻐하시겠다는 생각으로 위로를 삼았고 거리에 사람들이 훈훈한 날이 오길 기도할 뿐이다.  

 

 

                                                            <예수회 홈 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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