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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e:@등꽃 아래서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6-11-24 조회수444 추천수3 반대(0) 신고

 

 

 

 

바실리아님이 올리신 수녀님의 <등꽃아래서>를 읽고 똑같은 제목의 시가 있어 올려봅니다.

수녀님의 <등꽃아래서>는 신앙적인 시로써 마음에 포근하면서도 절실하게 와 닿는 느낌의 참 아름답고 좋은 시네요.

제가 올리는 송수권 시인의 <등꽃아래서>는 수녀님의 시에 비하면 문학적인 느낌에 더 가까운 것 같지만 곰곰히 새겨보면 이 역시 종교적임에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한 번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등꽃아래서

 

                              시 : 송수권

 

한껏 구름의 나들이가 보기 좋은 날

등나무 아래 기대어 서서 보면

가닥가닥 꼬여 넝쿨져 뻗는 것이

참 예사스러운 일이 아니다.

철없이 주걱주걱 흐르던 눈물도 이제는

잘게 부서져서 구슬 같은 소리를 내고

슬픔에다 기쁨을 반반씩 어무린 색깔로

연등날 지등의 불빛이 흔들리듯

내 가슴에 기쁨 같은 슬픔 같은 것의 물결이

반반씩 한꺼번에 녹아 흐르기 시작한 것은

평발 밑으로 처져 내린 등꽃송이를 보고 난

그 후부터다.

 

밑뿌리야 절제없이 뻗어 있겠지만

아랫도리의 두어 가닥 튼튼한 줄기가 꼬여

큰 둥치를 이루는 것을 보면

그렇다 너와 내가 자꾸 꼬여 가는 그 속에서

좋은 꽃들은 피어나지 않겠느냐?

 

또 구름이 내 머리 위 평발을 밟고 가나 보다.

그러면 어느 문갑 속에서 파란 옥빛 구슬

꺼내 드는 은은한 소리가 들린다.

 

 

  

이 시를 처음 읽은 때가 1980년도였습니다.

이 시를 처음 읽고 나는 시인의 가족에 대한 살뜰한 사랑을 느꼈었죠.

두어 가닥 튼튼한 줄기는 부부를, 꽃들은 자녀들을 연상시켰기 때문이죠.

그런데 평론가이며 국문학자인 분의 해설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공동운명체로서 밑바탕에 얼키고 설킨 집단 속의 너와 나의 따뜻한 이해를 넘어선 정서와 힘의 청정한 가락이라는 평을 했습니다.

 

어찌 연작이 봉황의 깊은 뜻을 알았으리!

제비는 고사하고 참새도 못되는 자신의 소아적 식견이 그순간 부끄러웠고 역시 그래서 나같은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시는 쓸 수 없는거라는 생각을 했었답니다.

 

나는 교과서적 시 말고는 시를 그리 많이 읽지는 않는 편이지만 이렇게 한국적 정서가 넘치는 시에는 깊은 애정을 느낍니다. 편식이 좀 심한 편이죠.

그리고 시를 읽을 때는 고집스럽게 자기 편할대로 해석하고 받아들입니다.

받아들이고 느끼는건  읽는 사람의 자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래도 문학 시험을 볼땐 참으로 엄격한 공식과 틀의 정답이 있음에,  느끼는것도 획일적이어야 하는가?를 실감하고 회의를 느낀 적도 있습니다. 

작품을 해체하고 분석하는 것은 학자나 평론가의 몫이고, 독자는 그저 좋은 느낌으로 다가오고 읽는 이의 감성에 어떤 울림을 주는 시가 곧 좋은 시가 아니겠는가? 라는 내 나름대로의 시 감상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편으론 이렇게 무식하니까 난 시를 쓸 수 없는거라는 생각도 들었구요.

 

 

오늘 이해인 수녀님의 시 <등꽃아래서>를 읽으며 모처럼 예전에 따뜻한 이야기방에 올렸던 같은 제목의 시도 다시 함께 읽는 기쁨을 느껴보았습니다.

바실리아님 좋은 시 읽게 해주시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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