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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월 25일 야곱의 우물- 루카 20, 27-40 묵상/ 부활을 준비하는 삶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6-11-25 조회수518 추천수2 반대(0) 신고

부활을 준비하는 삶

그때에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 아내를 남기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둘째가, 그 다음에는 셋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일곱이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마침내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그러면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그러나 저 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떨기나무 대목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주었다.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그러자 율법학자 몇 사람이 “스승님, 잘 말씀하셨습니다” 하였다. 사람들은 감히 그분께 더 이상 묻지 못하였다.
(루카 20,27-­40)

◆몇 해 전 아버지께서 간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평상시 술·담배도 하지 않으시고 매일 등산을 하시면서 철저히 자기 관리를 해온 터라 당신은 물론 가족들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가족들 모두 나름대로 하느님의 뜻을 찾고 애써 의미를 부여하고자 노력했지만 이런 일이 왜 우리에게 일어나야 하는지에 대해서 쉽게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사제인 저조차도 내 아버지의 문제이기에 쉽게 마음을 열고 하느님께 다가가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중 병세는 빨리 진행되어 1,2년은 사실 것이라는 병원의 예상과 달리 4개월 뒤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 임종을 준비하셔야 했습니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 병실에 들렀을 때 아버지께서는 제 손을 잡으시며 결국은 유언이 된 두 가지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는 ‘신자들과의 약속’을 잘 지키는 사제가 되라는 말씀이셨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께서 나를 왜 이렇게 빨리 데려가시나 했는데, 아마도 이곳에서보다 그곳에서 나를 더 필요로 하시기 때문일 것’이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이 말씀이 부활에 대한 신앙고백이라고 믿습니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루카 20,38). 참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우리가 어느 곳에 존재하든 부활을 믿는다면 우리는 모두 산 이들로 하느님 앞에 있는 것입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부활을 준비하고 살아가는 것이 부활 신앙의 시작입니다. 저는 지금도 미사 때마다 기쁜 마음으로 하느님과 교우들 그리고 아버지와 ‘평화의 인사’를 나눕니다. 이미 아버지는 제 신앙 안에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재화 신부(의정부교구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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