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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산 이들의 하느님 ----- 2006.11.25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6-11-25 조회수589 추천수5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6.11.25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요한 묵11,4-12 루카20,27-40

                                                        

 

 

 

 

 

산 이들의 하느님



수도원은 하느님의 집이요,

수도자는 하느님의 사람이요,

수도자의 일은 하느님을 찾는 일이요,

수도자의 기도는 하느님의 일(Opus Dei)이라 부릅니다.

 

하느님 빠지면 아무것도 아닌 허무일 뿐입니다.

새삼 하느님은 우리의 존재이유이자 평생 탐구 대상임을 깨닫습니다.

 

비단 수도자뿐 아니라

믿는 모든 이들의 존재이유이자 탐구 대상인 하느님입니다.


하느님 체험은 결코 비상하지 않습니다.


평범한 일상에서 깊이의 하느님을 체험합니다.

 

어찌 보면 살아있음 자체가 놀라운 신비요 하느님 체험입니다.

 

지금 여기서 얼마나 깨어 살아 찬미와 감사의 삶을 사느냐가 관건입니다.

 

살아있음 자체를 당연시 하여 살아있음을,

생명의 하느님을 까맣게 잊고 지내는,

살아있으나 실상 죽어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겠는지요?

 

하느님 생명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들이요,

하느님 생명에의 참여가 깊어질수록 활력 넘치는 삶입니다.

그렇습니다.

살아있음 자체가 축복이고 하느님 체험이요,

하느님 사라지면 우리의 생명도 끝입니다.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기 때문입니다.

 

막연하고 추상적인 철학의 하느님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삭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그리고 지금 여기 나의 하느님입니다.

 

이런 자각이 투철해야 샘솟는 활력에 기쁨이요, 찬미와 감사의 삶입니다.

사실 사람 눈에 죽음이지 하느님께는 모두가 살아있습니다.

1독서에서 보디시피

지하에서 올라온 짐승에게 살해된, 충실한 신자들을 상징하는 두 예언자들,

사흘 반 지난 뒤에 하느님에게서 생명의 숨이 나와 그들에게 들어가자

제 발로 일어섰다하지 않습니까?

 

새삼 모두가 생명의 하느님께 속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다음 복음의 묘사는

꼭 수도자들이 보여주는 천상적 삶의 예표와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 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천사들과 같아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아니 이미 세례로

주님의 부활에 동참하여 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된 모든 신자들,  

죽음을 넘어 영원한 삶을 살고 있음을 봅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은 당신의 말씀과 성체를 통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사하십니다.


“주님께서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눈여겨보아라.

  행복하여라, 주님께 피신하는 사람!”(시편34,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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