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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지막(?) 축일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6-11-25 조회수565 추천수4 반대(0) 신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마지막 학기도 거의 끝나가고 있다.

 

신학원 2년

학부 4년

어느새 6년의 세월을 신학교 품 안에서 꿈결같이 지냈다

 

지난 22일 축일

첫 시간이 끝나고 막간의 휴식 시간에

졸지에 반대표에게 불리워져 앞으로 나가 섰다.

 

축일 축하 노래를 불러드리겠다고 한다.

미래의 사제가 될 신학생들이

숙연하게 불러주는 조용하고 나지막한 축가를 들으면서

가슴 속에서 일렁이는 파도를 가라앉히느라 힘이 들었다.

 

그 시간이 왜 그렇게 길게.... 또 짧게 느껴졌는지....

 

노래가 끝나자, 고개 푹 숙이고,  재빨리 자리로 들어가려는 나를

대표 학생이 붙잡고 놓치를 않는다.

이제 우리와 함께 할 시간도 없는데, 마지막 축일이시니 한마디 해주셔야 한다면서....

 

할 수 없이 마이크를 받았는데 한 마디 끝나기도 전에

눈물 부터 뚝뚝 떨어졌다.

 

그 후로 뭐라 인사를 했는지 ...

자꾸 일그러지는 얼굴이 의식되어 얼른 그자리를 피하고만 싶었다.

 

이렇게 학사님들과 함께 공부하고 함께 생활한 것이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여러분은 모를 것이라고.

나처럼 축복받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길지도 않은 그 두마디가.....

말 배우는 애기들처럼 간신히 목구멍에서 기어나왔다

 

자리에 돌아오자 학생들이 모여들며 한마디씩 하였다.

"축일 축하 노래 하나 듣고 그렇게 감동하는 분은 첨 봤어요."

"자매님, 말씀이 더 감동적이예요."

..........

 

여기저기서 고사리(?)같은 손으로 정성껏 쓴 편지와 카드

그리고 곱게 싼 작은(?) 선물 꾸러미들이 책상에 놓인다.

 

과자, 초코렛, 사탕.....

엽서에 붙인 녹차 티백 하나....

 

반 회비에서 거금(^^)을 꺼내어 산 메모판과 탁상용 디지탈 시계.

4년동안 한반이셨던 수녀님의 정성스러운 선물.

그리고 자기들 책값도 궁하면서,

감동스러운 편지와 함께 도서상품권들을 넣은 분들....

 

너무 감사하고, 너무 송구하고, 너무 행복한 축일 축하 더미에 깔려

다음 시간이 시작되었는데도 주책없는 눈물이 자꾸 뚝뚝 떨어진다.

 

왜 자꾸 눈물이 나와요? 이상하네? 하고

그런 민망한 시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쉬는 시간에 다가와 조그맣게 물어보는 나쁜(?) 신학생도 있다. ㅋㅋ^^*

 

그럼, 학사님도 이 나이 되어봐요.

햇빛봐도 눈물나고, 낙엽져도 눈물나고, 그냥도 눈물이 나와요.

 

아~~ 그렇구나아~~

자매님도 드라마 보면 줄줄 우시겠구나아~~

울 엄마도 그러는데... ㅎㅎㅎ

 

그런 저런 짭쪼름한(^^*) 이야길 주고받으며,

축일 축하에 대한 보답으로 자판기 커피를 뽑아 준다.

 

지각해서 헐떡거리며 들어와 막 자리에 앉으려는데

따듯한 베지밀 한통이 내 방석 위에 올라와 있다.

아무 말 없이, 그걸 놓고 간 학생의 말이다.

 

200원 짜리 커피 한잔으로 마음을 나누고,

간식으로 가져온 사탕, 초코렛, 과자 한개를 서로 챙겨주는

그런 따듯한 젊은이들이 많은 이곳, 신학교.

 

그곳에는 자비로운 하느님만 사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가난하고 따듯한,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 안에서 지낸 행복한 시간들

내 생이 끝날 때까지 생생하게 기억되리라.

그 추억만으로도 이제부터 한 오십년(^^)은 넉근히 버티어지리라.

 

...........

 

축하노래를 들으면서도 많이 찔렸지만

집에 돌아와, 축일 카드와 편지, 엽서를 읽는 순간에도

더 크게 떠오르는 생각.

 

나는 그들에게 해준 것이 별로 없다는.

그러면서도 많은 것을 받기만 했다는.

그런 후회와 부끄러움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편지의 글대로 나는 존경받을 인물인가?

그들에게 정말 모범을 보여준 인물인가?

 

한없이 부끄럽기만 했다.

그들 표현대로, 어머니처럼, 큰 누나처럼?

나이는 그랬지만, 어머니처럼 품어주지도 못했고, 큰 누나 처럼 배려해주지도 못했다.

 

낮은 데로 낮은 데로 흘러가는 물처럼, 털어내고 비워내는 가을 나무처럼

그렇게 여유있고, 넉넉하고, 느긋하게 옆을 돌아보며 살지를 못했다.

매일처럼 코 앞에 쌓이는 산같은 과제들에 쫓기며, 해결하기에 급급했다.

 

이제와서 아쉬워하고 후회해도 어쩔 것인가?

이제 끝이 다가오는데...

 

그렇다.

이제는 소용없다. 신학교 안에서는.

남은 시간도 기말고사다, 뭐다 해서 허덕일 것이 분명하다.

다행히도 우리에겐 앞으로 교회 안에서 만날 긴 시간들이 남아있다.

 

이제 그동안 미처 챙기지 못했던 작은 사랑, 작은 나눔, 작은 섬김, 작은 기도를

이분들을 위해 바칠 것이다.

하나 하나의 품성과 하나 하나의 능력과 하나 하나의 재능을 알고 있기에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드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사람들이 모두 하느님의 사랑받는 종이 되시라고.

이 사람들이  모두 교회의 소중한 일꾼이 되시라고.

이 사람들이 모두 신자들에게 기쁨과 위안을 주는 목자가 되시라고.

 

멀리서 줄곧 기도해 드리고, 조언해드리고, 위로드리는

충실하고 믿을만한 양이  되어 드리자고 다짐을 해본다.

 

 

그동안 이런 축복의 시간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무사히 졸업할 수 있게 해주신 교회에도 감사드리며...

아름다운 인연을 허락하신 교수신부님들과 신학생들께도 감사드리며...

남은 시간들을 못다한 사랑으로 채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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