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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일 복음묵상]예수님, 그분은 과연 누구이신가?ㅣ 이기락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11-26 조회수784 추천수6 반대(0) 신고

2006년 11월 26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


오늘은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이심을 경축하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며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라는 죄목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의 사형을 바라던 유다교 지도자들이 ‘자칭 메시아’라고 주장했다는 뜻으로 조롱하려고 붙인 이름입니다. 그런데 조롱하고자 붙였던 이 명칭이 진실이 되었습니다. 온 세상이 그분의 탄생을 원년으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로부터 임금이 즉위하면 그 순간부터 햇수를 계산하였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가 예수님의 탄생을 원년으로 계산하여 올해를 서기 2006년으로 헤아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은연중에 예수님을 세계의 임금으로 인정하는 셈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다윗이나 솔로몬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기대하던 종래의 임금으로서의 메시아가 아니십니다. 정치권력을 장악하여 백성을 내리누르는 자가 아니라, ‘수난 받는 야훼의 종’처럼 자신의 생명까지도 희생하며 백성을 섬기는 메시아의 모습을 실현하셨습니다.
스스로 낮추심으로써 높아지신 것입니다. 1925년 비오 11세 교황은 연중 마지막 주일을 그리스도 왕 대축일로 제정하였습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1985년을 시작으로, 오늘부터 시작되는 연중 마지막 주간을 ‘성서 주간’으로 정하여 성경 읽기 운동과 성경 보급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등불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전례]
오늘은 연중 마지막 주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리의 왕으로서, 세상 마지막 날에 심판하실 분이심을 묵상합니다. 그때는 가난하고 비천한 목수의 아들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당신을 분명하게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분의 진리와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모두 그분의 다스림 속에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부터 성서 주간이 시작됩니다.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우리를 진리의 길로 인도하여 영원한 삶에 이르게 합니다.

  
 ☆☆☆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 ( 요한 18,33ㄴ-37)

 

"You say I am a king.
For this I was born and for this I came into the world,
to testify to the truth.
Everyone who belongs to the truth listens to my voice."





빌라도는 예수님께 유다인의 임금인지를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답변하십니다


 ☆☆☆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물을 가지신 분께서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에게 마실 물을 청하십니다. 영원히 다스리실 분께서 잠시 권세를 지닌 빌라도 앞에서 재판을 받으십니다. 빌라도는 진리이신 분을 눈앞에 두고 진리가 무엇인지 묻습니다. 온 민족과 나라를 영원히 다스릴 만왕을 앞에 두고 ‘유다인들의 임금’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심오한 진리를 암시하는 장면이 아닐까요? 깊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청합시다. 그러면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에게서 임금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분의 가시관에서 왕관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 그분은 과연 누구이신가?

-서울대교구 이기락 신부-


전례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연중 33주일과 새해가 시작되는 대림 1주일 사이에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지내는 이유는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축으로 하여 종말, 곧 완성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고백하고 또한 요한 묵시록에 계시된 대로 ‘처음과 마지막’이신 그분의 왕권을 전례 안에서 고백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세모의 끝자락에서 세상은 저마나 분주하고 화려하지만 교회는 조용히 한 해를 마감하고 태어나실 아기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그 한 해의 마지막에 그리스도왕 대축일이 있습니다.

시청 앞에서 광화문에 이르는 길, 청계천을 따라 걷는 길 곁으로 들어선 건물들 앞에 서있는 키 작은 나무와 가로수 거기에 촘촘하게 켜져 있는 꼬마전구들이 한 해의 끝자락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반짝이며 색색으로 켜져 있는 크고 작은 꼬마전구들. 날이 추울수록 또 아무 한 일도 없이 한 해를 보냈다는 후회와 자책이 클수록 그 작은 빛들은 남루한 우리를 조용히 그리고 다정하게 위로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향하여 오늘 독서의 말씀은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다니 7,14)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분 … 세상 임금들의 지배자인 예수 그리스도 … 보십시오. 그분께서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 모든 눈이 그분을 볼 것입니다.”(묵시 1,4-5.7) 하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복음에서 예수님은 빌라도 앞에서 초라하게 신문을 받으셨습니다.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요한 18,33)

예수님의 일생은 독서의 말씀이 암시하는 ‘영광과 권세의 임금’ 하고는 너무나 거리가 먼 삶이었습니다. 베틀레헴에서 소박하다 못해 초라하게 태어나셨고 극악무도한 사형수를 처형하는 형구인 십자가 위에서 인생의 마지막 최후의 순간을 넘기신 그분께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요한 19,19)라는 조소 섞인 명칭이 주어졌을 뿐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가시관을 쓰시고 피와 물을 몽땅 쏟으시는 그분의 마지막 모습은 인간적인 측면에서 볼 때 완전한 실패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계획은 우리 인간의 계산과는 완전히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1코린 1,18.24-25)

아주 오래 전에 어떤 자매님이 ‘예수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시(詩)를 저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예수는 가난 속에서 살다가 죽었다. 그에게는 자기 소유의 집도, 보험증서도, 사회보장제도 카드로, 은퇴 계획도 없었다. … 그러나 예수는 그의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죽도록 사랑했다. 그의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죽도록 신뢰했다. 그의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죽도록 봉사했다. 예수에게는 하느님이 모든 것, 전부였다. 그런데 나는 어떠한가?”

메시아, 임금 중에 임금이 전혀 아닌 것처럼 보이는 그런 예수님을 구세주 메시아, 참 임금으로 우리는 믿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물질적인 것에 최고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여 금전 만능주의 맘몬(Mammon)을 섬기면서 탐욕과 쾌락, 권력과 문란한 생활을 탐닉하여 명예와 긍지, 봉사와 희생 그리고 사랑의 실천 등이 상대적인 가치로 전락해 버린 우리에게 십자가에 달리신 연약한 예수님께서 임금, 메시아, 주님이시라는 사실은 믿기 어려우면서도 놀랍기만 한, 그야말로 역설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메시아 임금으로 모시는 기준을 이미 말씀해 주셨고 당신 친히 몸소 실천에 옮기시어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너무 뜻밖에 일로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부러진 양은 싸매 주고 아픈 것은 원기를 북돋아 주시는”(에제 34,16) 참 목자처럼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가장 보잘것없는 이웃에게 온정을 베푸는 것입니다(마태 25,31-46). 아주 거창하면서도 어려운 것을 요구하실 줄 알았던 성서학자들은 물론 신학자들도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나 쉬운 것을 그러나 실천하기 가장 어려운 것을 요구하시는 주님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임금, 최후 심판관, 절대 진리이신 그분을 뵙기 위해서는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겸손한 회개가 필요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곁의 두 강도 가운데 하나는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카 23,42) 하고 간청합니다. 마지막 숨을 넘기는 순간 지난 일생을 뉘우치면서 자기 자신에게 진실했던 강도가 예수님의 왕권을 최초로 고백했다는 사실도 역설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도 최초의 왕권을 가시적으로 행사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3,43)

자신의 한계를 느끼면서 하루하루를 고단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추운 겨울날 색색으로 빛나는 꼬마전구들의 작은 불빛은 연약하신 평화의 임금 예수님처럼 ‘평화와 위로, 화해와 용서, 신뢰와 사랑 …’으로 우리를 감싸주고 또한 초대하는 것 같습니다. 오시기로 되어있는 분, 메시아를 기다리면서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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