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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난한 과부의 헌금'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6-11-27 조회수770 추천수3 반대(0) 신고

<가난한 과부의 헌금>(루가21-1-4)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20장을 시작하면서 예수님께서 어늘 날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고 계셨는데,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이 원로들과 함께 다가와, "당신이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또 당신에게 그런 권한을 준 이가 누구인지 말해 보시오."하고 예수님께 물었다.

 

나는 예수님이 무슨 권한으로 나를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고 계시는지 알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과 대답할 수 없는 사람이 살아가는 삶은 자세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예수님이 누군이지, 무슨 권한으로 가르치는지 잘 모르는 사람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더러 웃읍게 여길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또 무슨 권한으로 나를 가르치시는지를 아는 사람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이며 그분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할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부자란 수석 사제와 율법학자 그리고 원로들로서 이들은 아직까지도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또 무슨 권한으로 당신 백성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하고 게시는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고 가난한 과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고 그분의 가르침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인간적으로 볼 때 "가난한 과부"는 불쌍한 사람이다. 거기에다가 가난하기까지 하니 얼마나 불행한 사람인가? 만일 이 여인이 가난한 과부라는 자신의 불행한 처지만을 바라보고 살아간다면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원망하고 절망과 고통 속에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이 여인은 불행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할 모델로서 제시되고 있다. 왜냐하면 이 가난한 과부는 우리가 누구를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히 이 가난한 과부를 묵상하자.
 
"과부"라는 것은 남편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즉 의지하고 보호받을 사람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인생의 동반자를 잃어버리고 외롭고 쓸쓸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한마디로 짝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사랑에 굶주린 사람이다. 과부인 것만도 불행한 일인데 더욱 불행한 것은 가난하기 때문에 물질적인 것을 통해서도 외로움과 쓸쓸함을 달랠 수 없는 초라한 사람이다.

 

복음은 "가난한 과부"를 통해서 무엇을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가? 이 가난한 과부가 누구인가? 또 이 가난한 과부가 행복한 삶을 살려면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를 가르쳐 주고자 한다.

 

이 가난한 과부가 바로 우리 인간이다. 사랑을 주고 받아야할 사랑할 대상을 잃어버린 인간,  든든한 보호자이시고 피난처이신 하느님을 잃어버린 인간이 곧 가난한 과부이다. 가난한 과부로 남아 있는 한 인간은 결코 행복할 수 없고 자신의 외로움과 쓸쓸함과 허전함을 채울 수 없다. 그 어떤 물질적인 것으로도 이 무한한 욕망 그리움과 사랑을 채울 수 없다. 그러니까 하느님을 만나지 못한 인간은 늘 가난한 과부로 외롭고 슬쓸하고 고통스런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그리스도인은 잃어버린 신랑을 되찾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분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사는 애인처럼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맞아들이고 그분만을 위해서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바치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잃어버렸던 행복을 되찾고 굶주린 사랑을 채우고 신랑의 든든한 보호를 받으며 서로 사랑하고 사랑하는 사랑의 나눔을 나누며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다.

 

이 가난한 과부가 행복한 것은 가난한 과부이기 때문이 아니라 영원한 남편을 만났고 오직 자기가 가진 것이 렢톤 두 닢밖에 안 되는 작은 것이지만 자기의 전부를 사랑하는 님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삶을 살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부자란 누구인가? 부자란 수석사제들, 율법학자들 그리고 원로들이다. 이들은 예수님을 신랑으로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에게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자기의 능력, 지식, 물질, 지위, 명예이다. 그들은 이런 것들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바치면서 정작 자기들의 신랑이신 예수님을 위해서는 자기네들의 가진 것 중에 일부를 마치 선심쓰듯이 바친다. 예수님이야말로 자기들이 맞이해야 할 신랑이신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이 바치는 예물에는 정성도 사랑도 없다. 그들이 헌금궤에 예물을 넣는 것은 신랑을 사랑하기 때문에 신랑을 위해서 바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한테 보이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긴 예복을 입고 나다니기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며,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 잔치 때에는 윗자리 차지하기를 즐긴다.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루가 20, 46-47)라고 말씀하셨듯이 모든 것을 오로지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행동하는 것이다.

 

우리가 단지 인간적인 관점으로 볼 때에는 가난한 과부와는 달리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사람들이다. 그들은 명예가 있고 돈이 있고 지위가 있고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행복하다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불행하다고 말씀하신다. 행복과 불행은 인간적인 판단에 달려있지 않다.

 

또 외적인 것을 얼마나 갖추었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 행복은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느냐? 누구를 위해서 살아가느냐? 어떤 자세로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가난한 과부처럼 예수님을 신랑으로 맞아들이고 그분을 위해서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바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가난한 과부란 바오로 사도처럼 "나의 간절한 기대와 희망은 내가 무슨 일에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늘 그러했듯이 지금도 큰 용기를 가지고 살든지 죽든지 나의 생활을 통틀어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필립1,20)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율법학자들과 원로들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오직 자기들의 영광과 안일을 위해서 사용하였다면 가난한 과부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오직 신랑이신 예수님께 드리기 위해서이다. 율법학자들과 원로들은 많은 것을 가짐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는 점점 작아지고 자신들은 더욱 더 커졌다면 가난한 과부는 세례자 요한처럼 그리스도는 점 점 더 커지고 자기는 점점 더 작아지는 삶을 사는 삶이다. 율법학자들과 원로들은 가지면 가질수록 자기들로 가득채워지고 가난한 과부는 가지면 가질수록 그리스도로 채워지는 삶이다.


우리가 이 복음을 묵상하면서 율법학자들과 원로들의 모습에서 가난한 과부의 모습으로 바뀌어져야 한다. 가난한 과부는 우리의 모델이요, 그리스도의 향기이다. 가난한 과부란 어느 남자에게 속했던 삶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다. 즉 이제는 하느님의 사람이 된 사람이다. 그래서 하느님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인의 모델인 것이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바치는 가난한 과부는 모든 인간적인 것 물질적인 것에서 해방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모델이다.


오늘 복음에서 "넣다. 또는 바치다"라는 말이 여러번 나오는데 누구를 위해서 넣는가? 또는 바치는가? 즉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누구를 위해서 소모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 또 어떤 마음으로 넣는가? 또는 바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다 주님을 위해서 바쳐져야 한다. 즉 주님을 위해서 사용되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분의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님께 바친다는 것은 많은 것을 가졌기 때문에 바치는 것이 아니다. 이 가난한 과부처럼 "궁핍한 가운데" 바치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이 가난한 과부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즉 사랑하는 님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내놓는 삶이다. 마음이 있는 곳에 재물이 있다. 가난한 과부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바쳤다는 것은 과부의  마음이 오직 주님께만 두었다는 것을 말한다. 

 

오늘 화답송에서 "주님의 산으로 오를 이 누구인고? 거룩한 그 곳에 서 있을 이 누구인고? 그 손은 깨끗하고 마음 정한 이, 헛군데에 정신을 아니 쓰는 이로다."( 시편 23,3-4)이라고 말한 사람이 바로 이 가난한 과부이다.

 

오늘 하루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주님께 바치는 행복한 하루가 되자.

 

                                                      -유광수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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