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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49 > 산은 ‘산’이 아니다 l 강길웅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11-27 조회수825 추천수10 반대(0) 신고

            

 

 

                   산은 ‘산’이 아니다

                            

    등산은 혼자 다녀야 산에 대한 음미를 할 수 있다. 누군가 쓸데없는 잡담을 걸어온다든지 혹은 동행이 있어 걸음의 템포를 맞추기 위해 괜한 신경을 쓰다보면 심신이 그만큼 피곤하게 된다. 산에서는 역시 산보다 더 다정한 친구도 없다.


   산은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다. 그리고 산은 어떤 옷이라 해도 그 몸에 항상 잘 어울리게 된다. 그래서 똑같은 산이라 해도 오를 때마다 맛이 다르며 찾을 때 마다 그 운치가 다르게 된다. 비가 올 땐 비가 와서 좋고 바람이 불면 바람 때문에 산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사범학교 시절에는 무던히도 산을 좋아 했었다. 그때는 가정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풍파가 삶을 온통 혼란에 빠뜨렸던 어지러운 시기였다. 바로 그런 때, 물론 지금도 가끔 그렇지만, 어려운 때에 나를 정답게 받아 줄 대상은 하느님과 산 밖에 없었다. 하느님과 산은 공통점이 있었으니 이를테면, 오를 때는 몸이 무거워도 내려올 땐 마음이 가벼웠다!


   어느 날이었다. 어느 날은 오후 늦게 대전의 보문산에 올라갔다가 한밤중에 미친놈처럼 혼자 내려오는데 보문사라는 절을 지나서였다. 어떤 소복차림의 여자가 내 뒤를 밟는데 아무래도 뭔가 수상했다. 내가 걸음을 멈추면 거기서도 멈췄고 내가 잰걸음으로 걸으면 그쪽에서도 역시 빠른 걸음으로 쫓아왔다. 별일이었다.


   누굴까? 귀신 얘기가 갑자기 머리를 스쳤지만 그러나 두렵지는 않고 오히려 어떤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래서 산허리를 돌아 내리막길이 나왔을 때 얼른 몸을 숨겼더니 흰옷이 바로 그 자리에서 멈칫하더니만 아래로 달려가더니 저 아래 쪽에서 “악”하고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내가 뛰어가서 누구냐고 물었더니 젊은 부인이었다. 혼자 절에 다녀오는 길에 너무 무서워서 내 뒤를 따라왔던 것인데 내가 없어지자 겁이 덜컥 나서 얼른 뒤쫓아 오다가 넘어 졌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달빛도 없는 한밤중에 만난 그녀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산에서 만난 사람은 장소가 산이라서 그런지 간혹 이쪽에서 애절한 느낌을 갖게 된다. 물론 일방적인 생각이겠지만, 저쪽도 삶의 어떤 여정에서 고달픔이 있는가 싶어 오히려 더 슬픈 것은 내 과거가 그랬고 또 내 현실이 그 수준에서 맴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장흥에 있는 천관산에서의 일이다. 천관산은 산이 마치 관을 쓴 것처럼 웅장하게 생긴 바위들이 정상에 우뚝 솟구쳐 있는 모습도 장관이지만 산을 오를 때에 만나는 크고 작은 바위들도 신기한 모습들이 많아 작은 월출산을 방불케 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정상에서였다.


   혼자서 바위 위에 앉아 점심을 먹는데 갑자기 뒤쪽에 이상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얼른 고개를 돌려보니 언제 왔는지 웬 젊은 부인이 보따리를 머리에 인 채 아이를 걸리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등산객도 아닌 자가 그 길에 서있다는 것이 이상했다.


   여자가 관산읍 가는 길을 물었다. 실은 나도 하산 길을 그 쪽으로 잡아야 했기에 동행을 했는데 길이 험해서 아이를 걸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이는 내가 업고 여인은 보따리를 이고 산에서 함께 내려오는데 기분이 좀 묘했다. 이게 도대체 잘하는 일인지 잘못하는 일인지 분간을 할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우리는 내려오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묻고 싶은 것도 없었고 하고 싶은 얘기도 없었다. 한 시간을 함께 내려오면서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웬지 여인의 입장이 자꾸 측은하게 느껴져 아이를 업으면서도 무겁지가 않았다. 그리고 읍내 버스터미널에 도착했을 때였다.


   기다리고 있었던 듯  한 여인이 달려오더니 그 자매와 붙들고 한참을 울었다. 나는 마침 광주행 버스가 오는 바람에 얼른 차에 올랐는데 울면서 손을 흔들던 그 자매도 영 잊혀 지질 않는다. 산다는 게 뭔가. 곳곳에서 펼쳐지는 삶의 고달픈 모습들을 보노라면 슬픈 마음이 마냥 내 쪽에서 더 크게 된다.


   지난여름이었다. 도시에서 사는 자녀 내외가 소록도에 홀로 계신 아버지를 뵙고 떠나는 모양인데 서로 붙잡고 우는 모습에서 많은 이들이 눈시울을 적시게 되었다. 이쪽은 무엇이고 저쪽은 또 무엇인가. 무엇이 우리를 그토록 슬프게 갈라놓은 것인가.


   누군가 말했단다. 인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고(思考)의 능력만으로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언덕이 있는데 거기서 절실하게 요청되는 것이 바로 슬픔이나 가난이나 병 같은 아픔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고통과 눈물을 통해서 인간은 넘을 수 없는 산을 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산’을 넘고 있는 자들은 과연 누구인가. 산타는 사람들은 ‘산’을 넘고 있는가.


   아픔을 모르는 이에겐, 산은 ‘산’이 아닌 것이다.


- 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 중에서/강길웅 요한 신부 (소록도 본당 주임)

 

 

                                                

                                 

                               Avec mon oie sauvage d'amour ensem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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