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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껍질을 벗는 아픔 없이는 . . . . . . [장덕필 신부님]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6-11-27 조회수984 추천수9 반대(0) 신고

 

 

 

 

 

< 판자집 철거시킨 속죄의 길 >

 

73 5 22일은 나에게 신부로서의 중요한 변화와 기대를 준 날이다.

피동적이던 보좌 생활을 끝내고 본당 신부로 발령받은 날이기 때문이다.

 

본당 신부라는 친밀감과 부푼 야망(?)을 가지고 부임지로 향했다.

그러나 그곳엔 성당 건물도 성당 부지도 보이지 않았다.

잘못 들어섰나하고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헛일이었다.

 

그 때, 차림이 초라한 한 노인이 물었다.

 

"누구십니까?"

 

나는 권위있고 약간 무시하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새로 부임한 본당신부요."

 

"그러십니까죄송합니다. 저는 여기사는 백 바오로입니다."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본당 신부를 맞이할 환영 신자들은 있으리라 생각했었고,

적어도 축하의 꽃다발쯤은 준비돼 있을 줄 알았는데...

가난한 노인뿐이라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성당은 어디에 있습니까?"

 

노인을 대답이 없었다.

 

"발령받은 본당을 묻고 있소."

 

나는 다그쳤다.

 

"죄많은 이 늙은이를 용서하십시오. 여기가 신부님 성당입니다."

 

"....,"

 

성당 부지에는 한 평도 남은 자리라곤 없이 판자집 백여 채가 지저분하게

들어서 있었다.

집도 절도 없다는 말을 실감케 하였다.

 

[전대에는 금이나 은이나 동전을 넣어 가지고 다니지 말라](마태오 10.9)

는 성경 말씀이 떠올랐다.

 

교구의 처사를 이해할 수가 없었고,

교구와 상의 한다고 해도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성체 앞에 무릎을 꿇고 스승 그리스도께 해결해 주십사 기도했다!

해답은 파견된 자는

[가서 일하라, 일하는 사람은 자기 먹을 것을 얻을 자격이 있다]

(마태오 10.10) 는 평범한 복음뿐이었다.

 

우선 찾은 곳이 복덕방이다.

전세를 얻으려고 전전하니 복덕방 주인은 신혼 남편으로 보이는지

단칸방을 소개해 준다.

결국 성당 부지 옆에 열두 평짜리 전세집을 얻었다.

 

방 셋에 부엌 하나였다.

우선 살 수는 있는 집이었다.

책상을 제대로 삼아 제단을 꾸미고 지붕 위에 성당 간판을 내걸음으로써

본당이 신설된 것이다!

 

첫 주일미사 참례자는 어린이까지 35명이었으며,

그 다음 주일에는 92명이 참례했다.

 

아랫목에서는 미사를 올리고,

웃목에서는 교리 공부를 했다.

미사 중 가끔 부엌의 뜸북장 냄새는 제사의 만찬을 실감케 했다.

한 방에서 본당의 모든 사목생활이 이루어졌던 현대판 초대교회였다.

 

문제는 성당 신축과 부지 확보를 위해 가난한 자의 판자촌을 철거하느냐,

아니면 교회가 나눔의 사랑으로 가난한 자에게 양도하느냐 하는 것이다.

 

가난한 자에게 양도한다면 교회 재산을 손해보는 것이며 동시에

나를 보낸 주교님의 권위에 실책의 책임을 전가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가난한 판자촌을 철거하자니 사제적 양심이 나를 괴롭혔다.

 

갈등 속에 한참을 고민한 끝에 결단을 내렸다.

남에게 능력(?)있는 신부로 인정받고

보다 큰 하느님의 영광과 교회의 발전을 위한다는

합리적(?)인 판단으로 철거를 하기로 한 것이다.

 

신부가 아니라 땅 주인인 사장으로 돌변하였고,

철거를 위해서는 어떠한 타협도 흥정도 설득도 매수까지도 가리지 않았다.

이것이 본당을 위한 사목이라고 생각했다.

 

그들 중에 한 신자의 집을 선정해서

그로 하여금 주민들에게 자진 철거하도록 강요하여

사람들에게 죽도록 매를 맞게 했던 일!

 

그들 사이에 이간질을 시켜,

철거하자는 파와 상주하자는 파 간에 싸움이 일어나게 했던 일!

 

더욱 잊을 수 없는 일은

집달리가 몇 집을 헐었을 때 사람들이 죽기 살기로 성당안으로 들이닥치던

일 등이다.

 

교회가 위협적인 상황에 처해 있는데도 회장이나 사목위원은 고사하고

교구에서 파견된 직원 한 사람도 없었다.

죽어도 본당에 뭍혀야 할 본당 신부이기에 주민들 앞에 나섰다.

 

그들은 나를 보고

 

"너무 어리다."

"당돌한 놈이니 죽여라!" 하고 소리쳤다.

 

맞아 죽더라도 본당에서 순직해야 한다는 소명에 버텼다.

 

그들은 나중에 나를 불쌍하게 보았는지,

아니면 용서해 주고 싶었는지,

성당에서 철수해 주었다.

 

다음 해인 74 5 1,

일 년 만에 1 6세대의 판자집과 530명의 이재민을 밀어 내고

성당 정지 작업에 착수했다.

 

이것이 신부가 할 일이며 본당 사목이었던가!

 

가난한 자를 위한 교회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을 마친 젊은 신부의 허탈감은 무엇으로 채워야 할 것인가?

 

교회의 발전을 위해 정당하고 합법적인 권리를 행사했다지만

가난한 자에게, 형제인 이웃에게 한 행동은 복음서(마태오 25,40)

최후심판 기준을 범하였다고 생각한다.

 

교회는 진정 현실적인 발전을 하여

신자들에게 천당가는 표를 마련해 주는 곳인가?

 

아니면

가난한 자에게 생명의 복음을,

묶인 자에게 해방을,

눈먼 자에게 보게 됨을,

억눌린 자에게 자유를(루가 4,18)주는 해방자의 모습인가?

 

지금 고백자는 그 해결을 기다리며 살고 있다.

 

가난한 자를 때려 잡은 신부는...

지금도 갈등 속에서 속죄의 길을 찾고 있다...

 

 

 

                - [치마입은 남자의 행복]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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