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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내 얼굴이 그렇게도 쌀쌀맞게 생겼나요? [박건순 신부님]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6-11-29 조회수973 추천수14 반대(0) 신고

 

 

- 기(氣)를 받으러 많이 찾아오는 세도나의 진흙산에 지은 작은 성당 -

 

 

 

 

몇 해 전,

어느 시골 본당에서 통반장을 다해 먹으며 생활하던 때가 있었다.

통반장 신세를 막 벗어나 사무장을 한 사람 두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그때의 기분은 무슨 큰 회사의 사장이라도 된 듯했다.

 

좋으나 나쁘나,

쓸개와 간을 빼놓고,

주님을 위해서 세인의 비위를 맞추는 기생 생활이

사제들의 생활이라고 하는데 여하튼 기생 노릇을 잘 하려면

먼저 점수를 따야하는 것이 첫인상인 것 같다.

 

모자라는 것 밖엔 없는 내 주제에 첫인상마저 불합격이고 보니...,

사제 생활이 뻔했다.

 

내 인상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차고 쌀쌀맞게 보여

접근하기에 큰 부담이 앞선다고 하니...

그러나 하느님께서 주신 얼굴이니

인자하고 자상한 성 요셉상으로 바꿀 수도 없지 않은가!

 

그래서 그런지,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 생활하는 사무장도 나를 어려워하며

별로 말이 없었던 것이다.

 

언젠가 가을 판공이었다.

그 날 따라 제일 먼 공소를 가는 날이었다.

일찍 서둘러 오토바이 시동을 걸어 놓고 사무장을 찾았다.

 

그러나 찾지 못한 나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꾹 참고

혼자서 주섬주섬 미사 짐과 교적을 챙겨서 오토바이 뒤에 매달았다.

두 번이나 오토바이 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있지만

화가 풀리지 않는 나는 정신없이 달렸다.

 

공소에 도착해서는 혼자서

성가, 교리, 교무금, 고해성사. 미사를 다하고

미사 끝에선 할머님들과 어울려 고전무용(?)까지 추고서야

그날 공소 판공이 끝났다.

 

아침부터 개운치 않았던 하루 일과에

멀고 힘들었던 공소 판공이었기에 말할수 없이 피곤했다.

너무 피곤하니까 밤에 잠이 제대로 오지 않았다.

 

새벽 1시 반 정도 되었을까?

밖에서 요란하게 사제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드렸다.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는 사람인지,

종부성사를 청하는 사람인지,

무섭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계속되는 공소 일정에 짜증스러워졌다.

억지로 일어났다.

 

"누구요?"

 

"신부님, 죄송합니다.

 한 잔 했습니다.

 그런데 신부님께 꼭 한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사무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급한 일 아니면 내일 오라고 하고 싶지만,

기생의 신세인지라 일단 반겨 맞이했다.

 

"아, 사무장님이시군요!"

 

얼굴은 홍당무였고 말은 더듬거리며 술냄새를 풍겼다.

 

"신부님, 죄송합니다.

 이것만 신부님께 드리고 그대로 떠나겠습니다."

 

"이것이 무엇인데?"

 

"사무장 생활.. 오늘로써 졸업한다는 사표입니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참고 참다가 용기가 안나서 술을 한 잔 하고,

 너무나 큰 무례인 줄 알면서도 밤중에 찾아왔습니다.

 오늘도 신부님 혼자서 먼 공소에 가서 고생하실 줄 알면서도...

 하루 종일 괴로워 집에 누워 있었습니다."

 

사무장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무슨 고민이 있나?

 이러지 말고 방에 들어가서 조용히 들어 봅시다."

 

방 안으로 들어와 음료수를 한 잔 들면서 말을 건넸다.

 

"그래, 왜 그러지?"

 

"신부님, 제가 오늘로써 사무장 생활 3년 6개월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날까지 신부님께서는 왜 그렇게 저에게 냉정하고 쌀쌀하게

 대하시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제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이 날 이 때까지 신부님께서는 저에게 칭찬 한 번, 따뜻한 말 한 마디

 해 주시지 않고 찬바람 나듯 대하시니...

 제가 못마땅하신 것 같아 더 이상 신부님 밑에서 일을 할 수가 없습니

 다."

 

나는 사무장의 손을 꽉 잡고 한참 만에 말을 꺼냈다.

 

"사무장! 정말 미안했소.

 내 인상이 좀 쌀쌀하지?

 그러나 사무장, 사랑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하지 않소.

 겉으로 들어나는 '외적 사랑'과 보이지 않는 진실된 '내적 사랑'말이오.

 

 아무리 차고 험한 모습의 인상이라도 속마음에 깊은 사랑을 지닌 사람의

 사랑이 진실되고 오래 사귀고 싶은 사랑아니겠소?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으며 희생 봉사하는 마음으로 고생하는 사무장을

 볼때마다 늘 미안하고 늘 고맙기만 했소.

 들어내지는 않았지만 진정 깊이 감사하고 있었소."

 

그 순간, 그는 큰 소리로 흐느끼며 말했다.

 

"신부님, 죄송합니다.

 제가 신부님 마음을 더 아프게 해드렸습니다."

 

"아니오,

 내 인상이 차가웠다면 말이라도 더 따뜻하게 했어야 했는데...,"

 

나도 가슴이 뭉클하여 사무장의 손을 잡고 지난 일들을 더듬었다.

 

그 후,

더 충실한 사무장의 모습은 마냥 고맙기만 했다.

 

 

 

 

 - [치마입은 남자의 행복]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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