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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e : 송무백열(松茂栢悅)과 혜분난비(惠焚蘭悲), 백아절현(伯牙絶絃)과 문경지교(刎頸之交)
작성자배봉균 쪽지 캡슐 작성일2006-12-01 조회수385 추천수7 반대(0) 신고

 

 

 

 

 송무백열(松茂栢悅)과 혜분난비(惠焚蘭悲), 백아절현(伯牙絶絃)과 문경지교(刎頸之交)


 

 송무백열(松茂栢悅)은 소나무가 무성(茂盛)하게 자라는 것을 옆에 있는 잣나무가 기뻐한다는 뜻으로, 벗이 잘되는 것을 즐거워 한다는 말입니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상록교목(常綠喬木)으로 겨울이 되어도 푸른 빛을 잃지 않아 예로부터 선비의 꽂꽂한 지조(志操)와 기상(氣像)의 상징(象徵)으로 함께 어울려 쓰였습니다.


 송백지조[松栢志操 : 송백(松栢)의 푸른빛처럼 변하지 않는 지조(志操)]

 송백지무[松栢之茂 : 언제나 푸른 송백(松栢)처럼 오래도록 영화(榮華)를 누림]

 등이 그 예(例)입니다.


 이런 이야기도 전해 내려옵니다. 옛날 중국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때, 초(楚)나라의 백아(伯牙)는 자신(自身)의 거문고 소리를 알아주던 절친(切親)한 벗 종자기(種子期)가 죽자, 거문고 줄을 끊어 버리고 다시는 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유래(由來)해서 사람이 살아가면서 진정(眞正)한 벗 하나를 사귀기가 힘들다는 뜻의 백아절현(伯牙絶絃)이라는 고사성어(故事成語)가 생겼습니다.


 송무백열(松茂栢悅)과 대비(對比)되면서 같은 뜻으로 쓰이는 사자성어(四字成語)로는

 혜분난비(惠焚蘭悲)가 있습니다. 혜란(惠蘭)이 불에 타니 난초(蘭草)가 슬퍼한다는 뜻으로

 벗의 불행(不幸)을 슬퍼한다는 말입니다.

 

 

 

 

  문경지교(刎頸之交)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의 신하(臣下) 목현(穆賢)의 식객(食客) 중에 인상여(藺相如)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에게 빼앗길뻔 했던 천하명옥(天下名玉)인 화씨지벽(和氏之璧)을 원상태로 찾아 가지고 돌아온 공(功)으로 일약(一躍) 상대부(上大夫)에 임명(任命)되었습니다.


 3년 후(B.C. 280), 소양왕(昭襄王)이 혜문왕(惠文王)을 말로 욕보이려는 것을 인상여(藺相如)가 가로 막고 나서서 오히려 소문왕에게 망신(亡身)을 주었습니다. 그 공로(功勞)로 인상여는 종일품(從一品) 상경(上卿)에 올랐습니다. 마침내 인상여의 지위(地位)는 조(趙)나라의 유명(有名)한 명장(名將) 염파(廉頗)보다 높아진 것입니다.


 염파(廉頗)는 분개(憤慨)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싸움터를 누비며 성(城)을 빼앗고 들에서 적(敵)을 무찔러 공(功)을 세웠다. 그런데 입밖에 놀린 것이 없는 인상여(藺相如) 따위가 나보다 윗자리에 앉다니.....내 어찌 그런 놈 밑에 있을 수 있겠는가? 언제든 그 놈을 만나면 망신(亡身)을 주고 말테다.


 이 말을 전해들은 인상여(藺相如)는 염파(廉頗)를 피했습니다. 그는 병(病)을 핑계대고 조정(朝廷)에도 나가지 않았으며 길에서도 저 멀리 염파가 보이면 옆길로 들어가곤 했습니다. 이같은 인상여(藺相如)의 비겁(卑怯)한 행동(行動)에 실망(失望)한 한 부하(部下)가 작별(作別)인사를 왔습니다.


 인상여(藺相如)는 떠나는 것을 만류(挽留)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는 염파(廉頗)장군과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과 어느 쪽이 더 무섭다고 생각되는가?” 그 부하(部下)가 대답(對答)했습니다. “네 물론 소양왕(昭襄王)이 더 무섭지요.” 그러자 인상여(藺相如)가 “나는 소양왕(昭襄王)도 두려워하지 않고 많은 신하(臣下)들 앞에서 혼내준 사람이야. 그런 내가 염파장군을 두려워하겠는가?”


 “생각해보면 알겠지만 강국(强國)인 진(秦)나라가 우리나라를 쳐들어오지 않는 것은 염파와 내가 있기 때문일세. 이 두 호랑이가 싸우면 모두 죽게 돼. 그래서 나라의 위기(危機)를 생각하고 염파장군을 피하는 거야.”


 이 말을 전해들은 염파(廉頗)는 부끄러워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그는 곧 윗통을 벗은 다음 태형(笞刑)에 쓰이는 형장(刑杖)을 짊어지고 인상여(藺相如)를 찾아가 섬돌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제가 미욱해서 대감(大監)의 높은 뜻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어서 저에게 벌을 내려 주십시오.” 염파는 진심(眞心)으로 사죄(謝罪)했습니다. 그날부터 두 사람은 문경지교(刎頸之交, 친구를 위해 목을 베어 줄 수 있을 정도로 절친한 사귐)를 나누며 오래도록 같이 살았습니다.


 

     

          [출처]  <史記 廉頗藺相如 列傳>  (네이버 백과사전을 참조 작성하였습니다.)

 

 

 

 

                                                              - 끝 -

 

                                       

                          

 

사랑과 정이 흐르는 올드 팝 l 펌
 
신희상
 

 

 

 

출처;야후블로그<우정,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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