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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묘비명(墓碑銘)에 대한 묵상
작성자이복선 쪽지 캡슐 작성일2006-12-01 조회수742 추천수6 반대(0) 신고

 

 


묘비명(墓碑銘)에 대한 묵상



 

나는 언제나 묘지(墓地)에 가면 참 묘한 생각이 든다.

 

‘이곳에 묻혀 계시는 한 분 한 분에게마다 무지 많은 사연들이 있을텐데,

그들의 행적과 이야기들은 다 어디가고 '  ○○○  之 墓' 라는 한 줄만 남기고 가는 것인가.

자신이 살아온 한평생의 결론으로 남기고 싶은 이야기며,  아직 해결하지 못한 사람과의

이야기며, 나는 이랬지만 너희는 그러지 말아라...등 얼마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텐데.

혹시 이 보이지 않는 창공에는 여기 묘지에 안장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흩날리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야, 각 영혼들이 응애~ 하고 태어나서 시작한 인생 이야기들은  하늘로 돌아갈 때

각자가 다 싸서 하느님께 갖고 가는 걸거야. 자기가 머물었던 자리를 깨끗이 치우고 가듯

말이지.

그래야 새로운 영혼들이 태어나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며 살아 갈 수 있을 테니까... ’  


 

얼마전 친정부모님이 안장되어 계신 선산을 다녀왔다.


우리 친정어머니는 중풍을 10년 정도 앓다 돌아가셨다.

중풍에 걸린 초기에는 그 병을 받아들이지 못하시고, 자식들 키우느라 온갖 고생을 하셨던 

당신이 이제 편히 살만 하니까 이런 몹쓸 병이 들었다고 신세한탄을 하시며 자주 우셨다.

그러다가 영세를 받으시고는 매일 시간을 정해서 아침 6시, 10시, 12시, 낮 3시 5시...5차례씩

묵주기도를 꼭꼭 바치셨다.

일주일에 한번, 돌아가면서 목욕 당번이 되어 가보면 예수님 고상과 성모상을 모신

기도상앞에서 자식들을 위해 묵주기도를 드리시던 뒷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머니는 목욕후엔  애기분 냄새 향긋한 손으로 내손을 잡고 이런얘기 저런얘기를 하시며,

당신이 살아온 지난날을 소설로 엮으면 10권으로도 부족하다는 말씀을 꼭 덧붙이셨다.

아주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시고 홀어머니와 남동생과 온갖 고생을 하던 이야기며, 

입 하나 덜어야 하는 집안사정으로 13살 어린나이에 시집와서 모진 동서 시집살이 했던

얘기며,  전란(戰亂)통에 자식을 잃은 얘기...외에도 내가 철들기 시작하여 알고 있는

희노애락의 가정사들만 다 적어도 그리 되고도 남을 것 같았다.

그런 어머니가 돌아가시며 남긴 흔적은 소설책 10권이 아니라, 달랑 묘비 하나뿐이었다.  

 


소설 10권 분량중에 가장 기억나는 어머니 이야기 하나.

 

내가 어릴때에는 나라 전체가 어려워선지 특히 동냥하러 오는 이들이 많았다.

어머니는 내 기억에 단 한번도 그들을 맨손으로 보내는 법이 없었다.

밥을 달라는 이는 단촐하게나마 밥상을 차려주고, 쌀을 달라는 이는 쌀자루에 됫박쌀을 

담아주고, 돈을 달라는 이는 적은 돈이라도 쥐어 보냈다.

더러운 차림새를 한 그 사람들에게 꼭꼭 챙겨주는걸 못마땅해 하는 우리들에게 

"배 고플때 밥 한그릇이, 배 부를때 쌀 한가마니 보다 큰 거다."

라며 나무래셨던 그 말씀이 지금도 내 마음에 새겨져  남아 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있다. 그래서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하면,

온 세상이라도 그렇게 기록된 책들을 다 담아 내지 못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요한복음 21장 25절)


위의 성경말씀에서 보듯, 예수님께서는  지상생활을 하시는 동안 

그 행적을 낱낱이 기록할 수 조차 없을 만큼, 온 세상이라도 담아내지 못할 만큼의

큰사랑'을 행하심으로서,

우리가 찾고자만 한다면,  모든 만물에 새겨 놓으신

‘구원의 말씀’, '사랑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하셨다.

 

 

이러한 사실들을 볼 때,

우리가 아무리 많은 이야기를 만들며 살다가 간다하더라도,

‘사랑’의 모습으로 산 것만이 사람들 마음속에 새겨져 

‘진정한 묘비명’으로  남을 수 있겠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이 아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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