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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2월 3일 야곱의 우물- 루카 21, 25-28. 34-36 묵상/ 레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6-12-03 조회수710 추천수1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 그날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루카 21,25-­28.34-­36)

오늘 복음은 주님의 재림을 예고하면서 대림절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주님의 성탄과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가르쳐 준다.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루카 21,28ㄴ).

이번 주부터 대림절이 시작된다. 대림절은 우리에게 오실 구세주를 기다리는 시기로,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어 오신 성탄 축제를 준비한다는 의미이며, 둘째는 이 세상 끝날에 재림하실 그리스도를 기다린다는 뜻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사람의 아들, 곧 세상의 심판관이신 당신이 다시 오실 날을 예고하시면서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다’고 선언하신다. 바로 이 말씀에 우리의 설렘과 기쁨과 기대가 담겨 있다.

 

‘속량’이란 몸값을 지불하고 노예나 포로에게 자유를 주는 행위를 가리킨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누군가 신분상 구속을 받는 경우가 생길 때 가족 또는 친척 가운데 가장 가까운 사람이 그를 속박에서 해방시켜야 할 의무가 있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그러한 처지에 있을 때 하느님께 그 의무가 있다고 믿었다. 이렇게 신앙의 관점에서 ‘속량’은 온갖 형태로 하느님 백성을 구속하거나 억압하는 것에서 해방시켜 주는 하느님의 구원을 가리킨다.

 

이러한 의미에서 ‘속량’이라는 말은 ‘구원’ 또는 ‘해방’이라는 말로 대치되기도 한다. 예수께서는 바로 그러한 속량이 가까웠다고 선포하신다. 당신이 다시 오시는 날, 완전하고 최종적인 속량이 실현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약속된 구원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희망과 용기와 힘을 준다.

 

‘구원’에 대한 말씀보다 더 반갑고 기쁜 소식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물질문명에 익숙해지고 거기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이들에게는 고리타분하고 비생산적인 이야기로만 들린다. 때로는 신앙인들도 영원한 생명이나 천상복락 등에 대한 말씀보다는 세속적인 관심사를 충족시켜 주는 이야기에 귀기울이기도 한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구원 불감증’ 상태에 놓여 있다. 예수께서는 이런 이들에게 당신께서 다시 오시는 날은 ‘속량의 날’인 동시에 준엄한 ‘심판의 날’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신다.

 

예수님은 심판의 냉혹함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예고하신다.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루카 21,26ㄱ). 하지만 구원을 희망하며 충실하게 신앙을 지켜온 사람들은 그날 구원하러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 수 있을 것이다”(루카 21,28ㄱ). 이를 위해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늘 깨어 기도하라”(루카 21,34-­36)고 가르치신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루카 21,`34).


자기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 있는가 하면 남이 해주어야만 하는 일도 있다. 후자를 ‘구원’이라고 한다면, 전자는 구원을 위한 우리의 ‘준비’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라는 표현이 이 점을 분명하게 드러내 준다. 이 말은 우리에게 ‘선택’의 결정권이 있음을 암시한다. 구원을 향해 나아갈 것인지 아닌지,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할 것인지 아닌지는 우리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갈수록 세상은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없게 우리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심지어는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구분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대부분 그렇게 한다’, ‘어쩌다 한 번쯤은 괜찮다’, ‘하느님도 이해해 주실 것이다’라는 식의 핑계나 논리로 자신의 잘못된 판단과 선택을 정당화한다.

 

필자도 그러한 허물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고백한다. 여하튼 그러한 사고방식의 신앙생활에 젖어 있는 이들을 신앙인이 아닌 종교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종교인이 아닌 참 신앙인이 되라고 가르치신다.

 

오늘 복음에서 제시되는 참 신앙인의 첫번째 생활방식은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루카 21,34ㄱ)이다. 일상의 근심이 전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는 일이 있고 삶의 목표가 있고 계획이 있으면 크고 작은 생각(근심·걱정)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근심이 깊어지면 때로는 방탕으로, 때로는 자포자기로 표출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일상(현세)’의 근심이 ‘영원(내세)’의 행복을 위협해서는 안 된다.

 

두번째 생활방식은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36)이다. 우리 신앙인에게 기도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기도 없이 일할 수 있다면 그것은 신앙인의 일이 아니라 종교인의 일일 뿐이다. 주님과 함께하기 위한 기도, 그분과 하나 되기 위한 기도가 삶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일상의 근심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것은 예수께서 제시해 주시는 참 신앙인의 생활방식을 삶에서 실천하는 일이다.

묵상과 기도

▷ 주님의 성탄과 재림을 잘 준비하는 삶이란 어떤 것인가?
▷ 늘 깨어 기도하는 삶이란 어떤 것인가?

주님, 저희는 때로 의무감으로, 때로는 타성에 젖어 당신 축제를 준비하고 맞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번 대림절에는 저희가 ‘무엇 때문에’ 성탄과 당신의 다시 오심을 정성껏 준비하고 기쁘게 기다려야 하는지 생각하고 준비하도록 이끌어 주소서. 그리하여 정말로 기쁘고 행복한 마음으로 성탄과 다시 오시는 당신을 맞이하게 하소서.

김정훈 신부(전주교구·로마 유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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