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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 복음묵상]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12-04 조회수703 추천수6 반대(0) 신고

12월4일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대축일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마르16,15-20)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다음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

 

    옛날 중국 초나라의 장왕은 말을 몹시 좋아하였답니다. 그는 자기가 가장 아끼는 말에게 화려한 비단 옷을 입히고 서늘한 침상에서 재우며 휘황찬란하게 금칠한 벽으로 둘러싸인 궁전에 재우면서 맛있는 대추를 먹였습니다. 그런데 말이 너무 살이 쪄서 그만 죽고 말았는데 초나라 왕은 모든 대신들에게 애도하도록 명하고 관을 마련해 염습할 준비를 갖춰 모든 것을 대부(大夫)의 장례에 따라 융숭하게 거행하도록 명령했다고 합니다.

 

이에 대신들이 안 된다고 말렸지만 오히려 왕은 이렇게 명령했습니다. “말의 장례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하는 사람은 사형에 처하겠다.” 하지만 이 말을 들은 우맹이라는 사람이 왕궁으로 달려가 목 놓아 통곡하며 말했습니다. “그 죽은 말은 왕께서 가장 아끼시는 말입니다. 우리 초나라가 이렇게 당당하고 큰데 겨우 대부의 장례로 말의 장례를 치르다니요. 마땅히 왕의 장례에 따르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자 왕이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되겠소?” 우맹이 대답하기를 “제 생각에는 백옥으로 관을 만들고 마호가니(검붉은 색깔의 티크 원목)로 곽을 짜고 많은 군사를 파견하여 커다란 구덩이를 파게하고 성 안의 남녀노소를 동원하여 흙을 다지도록 해야 합니다. 출상하는 날에 조나라, 제나라의 사절들을 앞세워 북과 징을 치며 길을 인도하게 하고, 한나라, 위나라의 사절들로 하여금 뒤에서 기를 들고 따르며 초혼하게 하십시오. 그래야만 왕이 사람은 경시(輕視)하면서 말은 무척 중시(重視)한다는 것을 보여 주실 수 있습니다.”   왕이 다시 물었습니다. “내 잘못이 그렇게도 크단 말이오? 좋소, 그럼 어떻게 해야 하겠소?” 그러자 우맹이 “부뚜막으로 곽을 삼고 무쇠 솥으로 관을 삼아 고추와 후추와 생강과 마늘을 넣어 맛있게 푹 삶아 모든 사람들이 실컷 잘 먹도록 하십시오.”


  모든 하느님의 피조물을 잘 관리하도록 명을 받은 우리는 이에 합당한 사랑과 보살핌을 베풀어야 합니다. 자연을 관리하고 보호하고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며, 아름답게 보존할 책임이 있는 우리는 더욱 잘 보살피고 관리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애완동물을 아주 귀하게 여기고 사람보다 융숭한 대접을 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개에게 주는 껌 값만 하여도 아프리카의 난민들의 양식이 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구체적으로 따져보지 않았으나 비슷하게 맞아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아주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애완동물의 엄청난 대접을 그림의 떡처럼 먼 나라의 꿈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경시하고 애완동물을 중시하는 것은 옛날 초나라 장왕의 얘기가 아니라 오늘 날의 우리들 얘기입니다. 사랑은 차별이 없고, 상하가 없으며, 평등하고 공평하다고 항상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빈부의 격차는 사랑을 상대적으로 차별의식을 갖게 합니다. 또한 많은 것들이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대접을 받습니다. 그렇다고 잘사는 사람들을 못살게 하고, 못사는 사람들을 잘살게 하는 일을 인위적이고 강압적으로 만들라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 북한의 인권문제가 국제적인 문제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그 문제에 대하여 우리에게도 전적인 책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과 나라에서도 그보다 더 심각한 인권문제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사랑의 문제와 인권의 문제와 복음의 문제는 절대로 별개일 수 없습니다.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말씀은 모든 민족들과, 모든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주님의 말씀에 따라 살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모든 동식물들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본래의 목적대로 각각의 분수와 격에 맞게 대접하고 아끼며 서로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구원은 믿고 세례를 받으며, 주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대로 살아야 하는 전제조건을 붙이십니다. 그렇게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는 주님께서 표징으로서 그 복음 선포의 뒤를 다 받쳐 주신다는 것이지요 하느님나라를 이 땅에 세우고 발전시키는데 아무런 장애가 없도록 만들어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그 장애를 극복하는데 필요한 은총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첫 번째의 장애는 악마의 도전일 것입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악마의 도전과 유혹을 주님의 이름으로 물리칠 수 있는 은총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주님의 은총으로 매 순간 악마의 유혹과 끈질긴 도전에 대항하여 싸우며 살았습니다. 두 번째의 장애는 세상의 모든 위험과 부정부패와 권력의 유혹이며 도전입니다. 주님께서는 성령으로 이러한 모든 역경을 이길 수 있는 지혜와 사랑으로 극복하게 이끌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은총으로 올바르게 살 수 있습니다. 그렇치만 매 순간 주님의 은총을 잊어버리고 교만과 방자함으로 다시 그 위험과 부정부패와 권력의 독소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세 번째의 장애는 아픔입니다. 육체적인 아픔과 정신적인 아픔으로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이 견고하면 이 모든 아픔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총으로 우리는 이러한 아픔에서 치유되고 믿음으로 우리는 더욱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복음 선포의 메시지를 주시기 전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고통이 있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들의 행복은 십자가를 통하여만 얻을 수 있으며 십자가를 거부하고, 피하고, 사랑하지 않으면서 평화를 바라는 것은 노력하지 않고 좋은 결과를 바라거나, 씨를 뿌리기만 하고 풍성한 수확만을 기다리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동안 복음을 선포하는데 게으르며 주님의 은총과 평화만 쉽게 얻으려고 어리석게 살았습니다.

 

   저희에게 믿으며 세례를 받고 세상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말씀하시는 좋으신 주님, 당신의 무한한 은총을 받으면서 복음 선포에는 게으르고 무관심하였던 저희를 관용하여 주소서. 저희가 새롭게 결심하고 열심히 살아서 당신의 은총에 보답하고자 하오니 용기와 지혜로 살게 하소서. 평화의 주님!! 

 

 

                                    하느님 내 주시여 / 신상옥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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