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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69) 등짝을 후려쳤다 / 박보영 수녀님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6-12-04 조회수827 추천수6 반대(0) 신고

 

 

                       < 등짝을 후려쳤다>

 

                                     글쓴이: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박보영 수녀님

 

 

엄마는 월 5만 원에 하루 종일 대추를 까서 말리는 작은 공장에 다녔다.

초등학교 2학년이던 나는 걸어서 한 시간인 학교를 오가며 이런 저런 공상들로 잔뜩 부푼 마음을 안고 항상 빈 집이던 단칸방 좁은 부엌문을 혼자 밀고 들어가곤 했다.

 

하늘이 조금 흐렸던 그날,

나는 무슨 생각인지 부엌 한 구석의 빨래 보퉁이를 풀어 공동 수돗가에서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문득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들만 셋을 둔 이웃 아줌마는 착하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퇴근하자마자 저녁상을 보기 위해 쌀을 안치던 엄마는 빨랫줄에 헐렁하게 널린 빨래를 발견했다.

비눗물도 덜 빠진 채 둘둘 말린 듯이 널려있는 그것을 바라보는 엄마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나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칭찬을 기대하며 수줍게 서있던 내 등짝에 한순간 불벼락이 쳤다.

발을 동동 구르며 빗자루로 어린 딸을 때리는 엄마는 울고 있었다.

"비누 한 장이 얼만데, 이걸 다 닳게... 물만 버리고.... ."

소리를 지르는 엄마가 나는 정말로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처음으로 가출이란 걸 했다.

그날 밤 11시쯤에 집 앞 공터를 서성이다가 아버지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 엄마 나이 서른 중반,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어리고, 아직은 세상이 분홍빛이어야만 할 그런 나이인 것이다.

 

모처럼 긴 추석연휴에 가족방문을 했다.

엄마의 질긴 생활력으로 번듯하게 공부시킨 자식들이 다들 모여 이제 제 자식들의

사교육비를 걱정하는 밥상머리에서

"그래 이렇게 살면 얼마나 좋아, 이렇게 다 모여서...."

하시다가 당황해서 엄마는 말씀을 삼켰다.

 

나는 조용히 웃으며

"내가 지금 엄마랑 살면 애물단지지, 꿀단지라도 될까봐?"

하고는 일부러 눈을 맞추었다.

 

가난한 집의 맏이들은 대개 이렇듯 세상과 인간에 대해 다층적 이해력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예수님이 만약 지금 당신에게 오신다면, 당신은 구석구석에 숨겨둔 게으름의 빨래들을 엉성하게 치대어 대략 눈가림으로 황급히 세탁할 것인가,

읽고 있던 삼류잡지를 덮을 것인가,

컴퓨터와 핸드폰에 기재된 바람직하지 못한 메시지들을 지울 것인가,

먼지 두텁게 내려앉은 성경을 펼쳐둘 것인가,

한번도 불을 댕기지 않은 초를 서둘러 밝힐 것인가,

불우이웃재단을 위해 ARS 전화를 돌릴 것인가.....  .

 

오늘 당장 나의 예수님이 내 문을 두드리신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늘 그 흐리던 오후의 지친 얼굴보다,

진심 어린 침묵과 눈 마주침으로도 넉넉히 하루를 채우고

생을 채우던 더 많은 날의 오후들을 기억한다.

 

사랑하는데 정녕 무엇을 해야 할까?

 

                  ㅡ출처 : 가톨릭 다이제스트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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