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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70) 고요한 밤 거룩한 밤 / 전 원 신부님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6-12-05 조회수854 추천수4 반대(0) 신고

 

 

                                글쓴이 : 말씀지기 주간 : 전 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고요한 밤 성당' 을 아시는지요?

오래전 성탄절 무렵, 어느 일간지에 온통 눈으로 뒤덮인 시골 성당의 밤풍경이 사진에 실린 적이 있었습니다.

 

금방이라도 은은한 풍금 소리가 여린 불빛을 타고 흘러나올것만 같은 이 성당은, 오스트리아의 오베른도르프에 있는 성 니콜라오 성당으로, 다름 아닌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이라는 성탄 캐롤이 처음으로 울려 나온 곳입니다.

 

1818년 이 성당의 요셉 무어 신부는 성탄을 앞두고 성가 연주를 하기 위해 고물 오르간 한 대를 고치고 있었습니다.

그는 문득 창밖 어둠에 싸인 고요한 밤풍경을 바라보면서 맑고 투명한 영감에 빠져 짧은 한 편의 시를 쓰게 됩니다.

 

다음날 그는 곧바로 그 성당의 오르간 반주를 맡고 있는 그뤼버에게 작곡을 부탁하였습니다. 그뤼버는 그날 밤 성당에 혼자 남아, 우리에게 전해진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이라는 아름다운 곡을 탄생시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건반을 두드렸다' 고 그가 나중에 술회했듯이,

하느님께서는 성탄을 기다리던 가난한 시골 신부에게 한 작곡가를 통하여 아름다운 노래를 선물하셨습니다.

 

일간지 귀퉁이에 실린 이런 눈 내린 작은 성당의 사진이 유독 저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사진처럼 찍혀 있는 어린 시절의 추억때문인지 모릅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어머니를 졸라 글을 배우고 첫영성체를 했을 정도로,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대부분의 시간을 성당에서 보냈습니다.

때문에 제가 기억해 낼 수 있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은 거의 대부분 고향에 있는 작은 성당에서의 추억입니다.

 

눈이 하얗게 내린 새벽길을 종종걸음을 치며 미사 복사를 하기 위해 달려가던 일,

종지기가 없는 날 제 몸무게보다 더 무거운 종을 치기 위해 종줄에 매달려 

안간힘을 쓰던 일,

몸이 아픈 형을 낫게 해 달라고 성모상 앞을 서성이며 묵주 기도를 간절히

바치던 일.......  .

 

특별히 성탄이 가까워질 무렵이면 성당에서의 생활은 더욱 바빠졌습니다.

난롯가에 둘러 앉아 성탄절에 할 연극 연습을 하고,

형들이 치는 기타 반주에 맞추어 성탄 노래를 배웠습니다.

늦은 밤까지 언 손을 호호 불며 성탄 트리를 장식하고 구유를 꾸미며

시간 가는 줄 몰라 했습니다.

 

눈이라도 펑펑 내려 준다면 그해 성탄은 참으로 행복한 선물이 되었습니다.

창밖에 눈이 내리고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을 부르며 성탄 미사를 시작할 때면 모두가 천상의 작은 천사가 되어 아기 예수님을 찬미하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도 눈이 하얗게 덮인 작은 성당의 밤풍경을 담은 사진을 보면 금방 그곳에서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노래가 울려 퍼질 것만 같은 설레임이 가슴 속에 일곤 합니다.

 

이렇게 저는 교회 안에서 친구를 만났고,

사랑과 우정을 배웠고,

하느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가슴 밑바닥에 그리움처럼 품고 사는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 '고요한 밤 성당' 같은 추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비록 도시 한복판에 살고 있지만 눈 내리는 밤 작은 성당에서 아이들과 둘러앉아 오르간을 치며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성탄 노래를 부르는 아름다운 그림이 늘 마음속에 걸려 있습니다.

 

어쩌면 내 안에 있는 하느님 강생의 자리는 이런 그림과 같은 풍경 속에 담겨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루 종일 일하느라 지치고 힘들 때,

왠지 하는 일이 실망스럽고 좌절감이 밀려올 때,

어둠 속에 갇혀 허우적거릴 때,

눈 내리는 숲속의 작은 성당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참 많은 위로를 받습니다.

 

숲속에 예쁜 성당을 가진 작은 피정집을 짓고 그곳에 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되뇌는 푸념도 제 안에 담겨 있는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향한 그리움 때문일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아기 예수님 강생의 자리는 이렇게 가장 약하고 어두운 자리,

외롭고 그리운 자리,

마음이 공허하고 텅 빈 자리입니다.

 

그 자리가 때로는 인생에서 벗어날 수 없는 칠흑같은 어둠처럼 몰려오지만,

하느님께서는 이 캄캄한 밤을 고요하고 거룩한 밤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가끔씩 늦은 밤 명동성당 길을 터덜터덜 오르면서 이곳 언덕이 숲길이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청계천을 복원하듯 이곳 남산자락 종현 언덕의 옛 모습을 더듬어 흙을 돋우고 나무를 심고 새들을 불러 모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곤 합니다.

 

하얗게 눈이 내린 종현 언덕 숲 사이로 '뾰족당' 에서 새어나온 불빛이 언뜻언뜻 비치는 성탄절 명동의 밤풍경을 떠올리면 가슴이 설레입니다.

웬일인지 성탄을 기다리는 이번 계절은 유독 이런 생각을 자꾸만 하게 됩니다.

 

지치고 메마른 사람들의 가슴 속에 고요하고 거룩한 밤의 자리를 마련해줄 푸른 명동을 꿈꾸게 됩니다. 경제성과 개발 논리가 온통 세상을 지배하는 틈바구니에서 이런 바보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이 자꾸자꾸 그리워집니다.

 

 

                  ㅡ말씀지기에 실린  편집자 레터 전문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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